패션계의 노장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거대 패션 하우스의 왕관이 잇달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전달됐다. 지금 패션계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광고, 마케팅까지 모든 걸 능수능란하게 조종할 수 있는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원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브랜드를 유지해나가는 노장 디자이너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 디자이너,노장,칼라거펠트,세대교체

지난달 마감 중에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빌 커닝햄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그에 대한 추억과 생을 기리는 기사들이 쓰였다. 편집팀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그의 상징과도 같은 파란 점퍼와 자전거, 호기심으로 가득한 깊고 선한 눈을 떠올렸다. 서로 먼저 이슈를 차지하고자 달려드는 치열한 컬렉션장 앞에서 오직 그만은 평화로워 보였다. 빌 커닝햄은 1978년부터 와 작업해왔는데, 부자연스럽거나 과한 설정을 배제한 그의 사진 속 피사체의 매력은 와 무려 40여 년의 시간을 함께하게 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반면 최근 패션계는 디자이너들의 세대 교체가 이슈다. 지난해 디올을 떠난 라프 시몬스가 캘빈 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됐다는 소식을 끝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옮겨 갔다. 덕분에 꿋꿋이 자신의 브랜드를 유지해나가고 있는 노장 디자이너들을 돌아보게 됐다. 가장 놀라운 건 칼 라거펠트다. 50여 년간 펜디의 수장이자 1983년부터 지금까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그의 나이는 80세가 훌쩍 넘는다.(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안으로 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서울에서 열린 샤넬의 F/W 컬렉션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만난 샤넬 코리아의 홍보 담당 역시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늘 새로운 프로젝트에 촉수를 세우고 이를 실행해내는 열정에 매번 놀란다고. 라거펠트는 패션 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사진가로서의 명성 또한 대단한데, 그는 종종 “패션은 변화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일까? 그가 디자인하는 샤넬도, 그가 찍는 사진도 늘 변화하고 진화해왔다. 전통을 고수하는 가운데에서도 실험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는 라거펠트라는 존재는 샤넬이 여전히 패션의 정상에 있는 비결이자 원천일 것이다.호텔, 언더웨어, 카페,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하나의 컨셉트로 진두지휘하며 ‘아르마니 제국’을 설립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34년생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일 년에 열 번이 넘는 컬렉션을 선보이며 40주년을 맞아 이 모든 걸 보존하고 기리기 위해 밀라노에 아르마니 박물관도 개관했다. 세월의 풍파와 시대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흥겹고도 탁월한 쇼를 선보이는 장 폴 고티에는 비교적 어린(?) 1952년생이다. 이제는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서만 그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지만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안정된 쿠튀르 하우스에 특유의 ‘앙팡 테리블’ 기질까지 더해지니 당할 자가 없다. 1939년생인 랄프 로렌은 지극히 미국적인 디자인과 기부 정신으로 랄프 로렌을 성장시켜왔다. 그는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위한 미국 선수단의 유니폼 제작을 맡았는데 미국 패션의 역사와 함께한 디자이너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1942년생인 레이 가와쿠보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보통 40여 벌이 넘는 룩으로 구성되는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이번 시즌 단 17벌을 가지고 완성했는데도 창조성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런웨이에 쇼장의 모두가 전율했다. 최근 깐깐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다른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위한 콜라보레이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화제가 됐는데, 바로 베트멍의 2017 S/S 쿠튀르 컬렉션을 위한 콤 데 가르송의 셔츠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것. 결과적으로 레이 가와쿠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브랜드에 베트멍이라는 젊고 쿨한 이미지도 부여했다. 이것이야말로 연륜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선구안이 아닐까?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시의적절하게 디자이너, 아티스틱 디렉터, 인스타그램에 능통한 이슈 메이커를 자유자재로 오가야만 한다. 이런 변화와 부담감은 과거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으나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몇몇 디자이너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거나 조력자를 두게 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남편이자 디자인 디렉터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를 브랜드 네임 앞에 전면으로 내세웠다. 유스 컬처가 가미된 2016 F/W 컬렉션은 브랜드 고유의 펑크 정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한층 쿨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네 시즌째 앤서니 바카렐로에게 베르수스 베르사체를 맡겼다. 결과는 베르사체 그룹의 매출 성장세로 이어졌고, 도나텔라의 신임을 받으며 성장한 앤서니 바카렐로는 에디 슬리메인의 뒤를 이어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까지 올랐으니. ‘윈윈’한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연하의 여자친구와 요트 여행을 하며 여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심경을 고백한 로베르토 카발리도 있다. 그가 떠난 자리에 피터 던다스를 영입한 후 로베르토 카발리는 밀라노의 ‘잇 브랜드’로 회생 중이다.기발한 아이디어와 젊음으로 무장한 디자이너들이 각광 받는 시대인 게 사실이지만 노장 디자이너와 함께한 브랜드들에는 분명 젊은 디자이너들은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건 오랜 시간이 쌓여야만 가능한 노련함과 역사다. 파리에 칼 라거펠트, 밀라노에 아르마니가 있다면 서울에는 진태옥이 있다. 올해 여든 살에 접어든 그녀는 지난해 데뷔 50주년을 맞았지만 20대 여자보다 화이트 셔츠를 멋지게 소화하고 스타일의 정의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철학, 취향, 인생이 바로 스타일이다.”라는 세련된 대답을 들려주는 디자이너다. 서울에서는 그녀와 그녀의 패션이 지닌 가치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지난 2016 S/S 서울 패션 위크 주간에 헌정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진태옥이 만드는 옷은 유행과는 완전하게 다른 개념으로 보는 이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오래도록 이 놀라움과 감동을 전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가르침을 겸허히 실천하는 게 옳은 길인지, 아니면 열정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신념을 가진 노장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더 빛나는 것인지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젊음으로 무장한 디자이너들이 각광 받는 시대인 게 사실이지만 노장 디자이너와 함께한 브랜드들에는 분명 젊은 디자이너들은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건 오랜 시간이 쌓여야만 가능한 노련함과 역사다. 그리고 50여 년 동안 수많은 드레스와 아름다운 장면들을 남긴 채 2014년 작고한 오스카 드 라 렌타나 40여 년간의 기념비적인 사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빌 커닝햄의 행복한 미소를 떠올려보면 평생 어떤 하나의 대상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도 대단한 축복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