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에 바치는 러브송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한 여름엔 ‘슬러시’된 양념 국물에 생선살이 헤엄치는 물회라야 한다. | 박찬일,물회

며칠 전에 술을 끊었는데 이 기사를 쓰기 시작하니 침이 고인다. 이는 곧 뇌가 술을 부르는 최초의 반응인데, 망했다는 소리다. 물회, 라고 치면 내가 쓰는 한글 프로그램은 빨간 줄을 죽죽 긋는다. 띄어쓰기가 틀렸다는 거다. 아직 ‘물회’가 못 된 ‘물 회’인 셈이니 이 요리의 역사랄 것도 아주 짧다. 언젠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토속음식을 상업적으로 팔기 시작한 ‘도라지식당’의 주인을 뵌 적이 있다. 갈칫국이며 한치물회며 하는 제주 음식은 이제 오히려 흔해서 그저 백 년은 된 상업 음식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턱도 없다는 거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재일동포들이 고향을 찾았는데 막상 옛 고향 음식을 먹을 곳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음식은 그저 커뮤니티에서 먹는 것이지 사 먹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 도라지식당 사장은 돈을 벌었다. ‘돈 받고’ 그런 토속음식을 팔 수도 있다는 걸 그 사장은 보여주었다. 그럴 만도 한데, 이를테면 목포에서 홍어삼합을 판 것도 삼사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과 근거가 같다. 홍어는 관혼상제에서 으레 먹는 음식일 뿐, 그걸 번듯한 식당에서 사 먹는다는 생각을 목포사람들이 해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출향 인사들이 돌아오고, 관광객이 들이치면서 그 고장의 맛을 찾으니 자연스레 돈 받고 파는 상업 음식이 되더라는 뜻이다.물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는 동해안과 제주를 든다. 제주에서 자리물회는 한치보다 더 단단한 아성이다. 물회 하면 자리다. 자리는 붕어처럼 생긴, 뼈마디가 억센 자그마한 고기다. 자리젓을 담그고 찌개도 끓이지만 여름엔 물회가 흔한 대접이었다. 그것도 요즘 관광객용으로 고춧가루에 설탕 넣고 온갖 고명으로 치장하는 건 나중의 일이고, 된장에 식초, 그것도 없으면 빙초산 풀고 오이 넣는 게 자리물회의 전통이라고 한다. 물회는 여름 입맛 없는 일꾼들의 간식이고 밥이었다. 찬 보리밥을 곁들이거나, 아니면 자리물회만 한 그릇 퍼서 속을 때웠다. 제주도 사람들이 오래 살고 건강한 건 자리와 미역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주도 사람들의 자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각별하다. 해물뚝배기와 옥돔구이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자리가 앉아 있다.자리는 모슬포를 예전에 최고로 쳤다. 제주 사람들이 ‘자리 먹으러 가자’는 건 바다로 가자는 소리고, 모슬포가 바로 그곳의 하나다. 이 항구는 자리잡이가 가장 크게 벌어졌던 곳이다. 모슬포에 가서 요즘은 다들 양식 고등어회나 방어를 먹고, 자리를 잘 모른다. 모슬포에서 자리를 먹지 않는다니. 모슬포 사람들은 여름에 자리를 먹고 가을, 겨울에 돗추렴을 해서 몸보신을 했다. 돈을 모아 돼지를 잡는 일이다. 돼지도 제주도 3대 회에 들어간다. 빅개회(빅개라는 이름의 생선회), 자리물회, 그리고 새끼돼지물회다. 마지막 것은 제주도에서도 이젠 거의 먹지 않는다. 제주시 동문시장 구석에 있는 대폿집에서 아직 판다고 하여 갔더니 아주머니가 재료를 마련해서 휘휘 믹서에 갈아버린다. 시뻘겋고 걸쭉한 액체를 대접에 담더니 먹으란다. 겨우 한 숟가락을 먹었다. 태중의 어린 돼지를 구해 갈아서 부추, 고추, 사이다, 설탕, 미원 넣고 만드는 거다. 물회가 분명하되, 넘어가지 않는 물회였다. 이제 제주에서도 맥이 끊겨가는 토속음식인 셈이다.배를 탈 때 어부들은 흔히 고추장과 참기름을 들였다. 생선을 잡아 썰고 양념을 넣어 비벼 먹었다. 물회가 아니라 비빔회였다. 물은 처음부터 넣어 내는 것이 아니고, 먹다가 내키면 넣고, 아니면 말고 하는 것이었다. 물회라고 하나, 물은 ‘옵션’이었던 셈이다.자리물회는 언젠가부터 슬슬 피하는 음식이 되었다. 뼈가 억세어 치아가 여간 튼튼하지 않으면 씹어내기 어렵다. 자리는 포를 뜨는 생선이 아니라, 그대로 ‘써는’ 물건이다. 썰어서 우리의 치아 경도와 잇몸의 출혈 여부를 실험한다. 시댁 식구들 하고 가서 먹기 좋은 음식이다. 그대는 슬쩍 빠져라. 호호, 요새 교정을 하고 있어서요.물회 하면 포항을 뺄 수 없다. 어쩌면 제주는 제주식, 포항은 포항대로 자기 식이 있다. 물론 그 물에서 나는 재료가 우선이다. 포항에도 해녀가 있다. 제주에서 이주해온 분들이다. 왕년에는 이런 분들이 물질해서 온 것들로 물회를 말았다. 죽도시장에서 막 팔았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그냥 먹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절세의 물회였다. 이제 해녀도 늙어 물질을 못하고 동남아시아 어부들이 잡은 어물이 물회에 들어가리라. 해녀의 물회 중에서 최고로 치는 건 돌가자미였다. 단단하기가 돌 같아서 돌가자미, 바닷속 바윗돌 색깔을 닮았다 하여 돌가자미인 이것은 포를 뜨면 살점이 저 혼자 살아서 혀를 툭툭 친다. 거짓말이 아니다. 충청도 출신의 내 친구는 여행 가서 그걸 먹다가 “삼년 만에 딥 키스를 다 해보는구먼. 해필이면 그게 가재미 살점이여, 썩을.”이라고 했다.물회를 먹을 때 제대로 된 것을 고르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초장을 쓰느냐, 아니면 발효시킨 자가제조의 고추장 양념을 쓰느냐다. 초장은 시중 식초로 만들어 새콤한 맛이 강하고, 직접 만든 장은 은근하고 깊다. ‘돌고래식당’ ‘원조영남물회’ 같은 곳에서 먹어보면 그 맛의 차이가 난다. 원래 포항의 물회가 상업화된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60년대에 허복수 할머니(2005년 작고)가 남편이 일본을 오가는 어선에서 해먹던 방법을 식당 요리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배를 탈 때 어부들은 흔히 고추장과 참기름을 들였다. 생선을 잡아 썰고 양념을 넣어 비벼 먹었다는 것이다. 물회가 아니라 비빔회였다. 밥을 넣을 때도 있고, 국수를 넣기도 했다. 물은 처음부터 넣어 내는 것이 아니고, 먹다가 내키면 넣고, 아니면 말고 하는 것이었다. 물회라고 하나, 물은 ‘옵션’이었던 셈이다. 얼음이 흔해지고 그걸 넣어 파는 방식은 자연스러운 진화였을 것이다. 이제 포항 어디든 대부분 물회에 ‘물’이 많이 들어가거나 얼음을 넣는다. 아니면 양념 자체를 ‘슬러시’처럼 얼려서 낸다. 상에 놓고 먹다 보면 그게 그대로 녹아서 ‘물회’가 된다. 물회면 어떻고 비빔회면 어떤가. 음식에 철칙은 없는 법이고, 생각과 우연은 요리를 탄생시킨다.다시 제주로 간다. 물회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을 소환한다. 여름 제주 앞바다는 갈치와 한치 배가 점점이 보인다. 밤이 되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불을 켜놓고 고기를 끈다. 새벽 장에 가서 그것들을 구하는데, 아서라, 도시의 시장 물건을 생각하면 안 된다. 갈치는 마치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성질이 급하여(이건 순전히 인간의 시각이긴 하다) 배에 올라오면 죽어버리니 산 갈치는 보기 어렵다. 잡혀서 제주에 있는 동안만 갈치는 온전히 은색이다. 얼굴을 비추면 모공까지 보인다고 누군가는 너스레를 떤다. 갈치는 빛을 받아 비추고, 한치는 통과시킨다. 투명하다는 뜻이다. 내장이 보인다. 귀(실은 지느러미)를 너울거리며 까만 눈을 깜빡이며 함지 안에서 불안한 유영을 한다. 손에 들면 흠칫 놀란다. 차가운 피를 가진 고기를 뜨거운 손이 만졌으니 놀랐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어물이면 최고의 재료가 이미 준비된 것이다. 갈치를 회로는 먹지만 물회는 어인 일이냐고? 물론 물회를 말아내고도 남는다. 우선 갈치 살을 포 뜬다. 작은 것은 애를 먹으니 조려 먹고, 큰 것이 뜨기 좋다. 은색 껍질을 벗겨 살점을 준비한다. 탄력 있고 달콤한 살이다. 이것을 저민다. 한치는 손질하기 편하다. 탱탱하고 쫄깃한 살점을 썰어서 양념과 섞는다. 비빔회든 물회든 좋다. 좋은 고춧가루로 양념장을 만든다. 약간의 마늘, 파, 풋고추, 설탕과 간장, 소금. 고추장이 좋은 게 있거든 좀 섞어도 좋다. 잘 버무린다. 비빔회다. 붉은 양파를 얇게 저며 넣어도 좋고, 대파의 연백부(흰 부분)를 다져서 넣어도 좋다. 먹다 보면 생선살과 채소에서 물이 나온다. 이때 얼음과 차가운 생수를 붓는다. 통깨를 띄우고 훌훌 마신다. 한라산 소주병이 픽픽 쓰러진다. 남이 들이마시는 회 대접을 뺏다가 흰 옷에 쏟기도 한다.강원도 북쪽의 물회 맛도 조금 소개하자. 이제는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오고, 새로 건물을 지어 올리면서 진짜 단골들은 발길이 드물어졌다는 어느 ‘머구리’(잠수부)집의 이야기다. 이 집에 가면 육중한 무게의 잠수복이 손님을 맞는다. 해녀의 손맛이 아니라 뭔가 더 프로다운 획득의 기술자랄까. 산소를 공급 받아서 더 깊은 바다에 들어간다. 나는 그 법률을 모른다. 어쨌든 동해에선 머구리가 있다. 그들이 건져 올린 것이 물회가 된다. 여름에 성게(말똥성게라야 최고다)와 해삼과 미주구리라고 부르는 물가자미를 넣고 썩썩 비벼서 시원한 양념 육수 끼얹어 내는 이 음식은 이른바 ‘그때그때’ 나오는 해물로 말아낸다. 이 집의 옛 단골은 신축 건물에서 대기표를 받아 들고 기다리면서 마치 도망간 애인 회상하듯 중얼거린다. “옛날에는 성게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어도 바닥이 안 보였다니까.” 뻥도 참 대단하다. 성게는 옛날에도 비쌌다. 어쨌든 아쉬운 것은 아쉬운 일. 소박한 가게가 ‘삘딩’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