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못 버리는 삶

'소유의 역습'에 봉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단샤리 열풍. 물건들을 버리고 미니멀리스트적인 삶을 살자는 그 기치에 동참할 수 없는, 못 버리는 삶을 위한 변명.

BYBAZAAR2016.10.01

4년 전, 작업실을 얻었다.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 공식적 이유였다. 비공식적으로는 다른 식구들로부터 책을 버리든지 독립하라는 통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책장과 책상만 필요했으므로 여유 공간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책장 칸에 책을 한 줄씩만 꽂아도 빈자리가 있다니, 장문을 열었을 때 우르르 쏟아지는 물건이 없다니,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책장에는 칸마다 책을 두 줄씩 쑤셔 넣고도 모자라고, 빈 곳에는 수납 상자가 가득한 신세이다.

‘소유의 역습!’에 봉착한 사람이라면 물건을 버리고 단순하게 살자는 단샤리(斷捨離)의 필요성에 깊이 동감할 것이다. ‘머스트-해브 아이템’의 목록은 나날이 늘어가지만, 도시 공간 1제곱미터의 가격은 높아만 가는 이 사회에서 소유는 불필요한 구속. 끊고, 버리고, 헤어져라. 그러면 평온해지리니. 동양적 선(禪)에서 유래한 이 생활의 종교는 개종자를 유혹한다. 단샤리 열풍과 미니멀리스트적인 삶의 대명사처럼 된 곤도 마리에의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더난출판사)을 읽기만 해도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곤마리 정신의 핵심,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당신의 삶이 달라진다”를 주문처럼 외운다면.

확실히 곤마리 정리법은 저자 본인의 삶은 확 바꿔놓은 듯하다. 그녀의 책은 2014년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6백만 부 넘게 팔렸으며, 2016년 가을에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 곤도 마리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프 구루이며, 정리법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창시자이다. 곤도 마리에의 성공은 내게도 망상을 안겨주었다. 내가 지금 호더의 방 같은 내 작업실을 전격 공개한 후 물건을 다 버리면, 그것만으로도 유명해질 수 있을지 몰라. 그러면 적어도 삶이 바뀌긴 하겠지.

동기가 생겼으니 내친김에 정리법의 베스트셀러 두 권을 더 읽었다. <버리는 즐거움>(생각정거장)의 저자이자 정리 전문가인 야마시타 히데코는 감추는 수납 7, 보이는 수납 5, 보여주는 수납 1의 정리법을 제안한다. 필요 없는 건 버리지만 멋진 물건은 가지고 장식처럼 쓰라는 것이다. 가령, 부엌의 모든 그릇은 식기장에 다 넣은 후 싱크대와 레인지 톱에는 근사한 주전자 하나만 놓아 인테리어 소품으로 쓴다. 매혹적인 조언이었다. 집이 무인양품의 카탈로그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애물은 금방 찾아왔다. 야마시타는 출근복은 여섯 벌이면 충분하단다. 이 여섯 벌을 한 달 내내 충실히 입고, 한 달에 세 가지는 버리고, 세 가지는 새로 산다는 것이다. 보통 언제 가난해질지 몰라서 돈이 생길 때 이런저런 예쁜 걸 모으는 것이 기쁨인 내게 그런 대범함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비즈니스 북스)의 사사키 후미오는 더 극단적이었다. 그는 물건을 버리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미니멀리스트인데, 방에는 이불 한 채만 달랑 놓여 있을 뿐이다. 가구와 전자제품도 거의 줄이고, 필름 사진과 추억의 편지도 스캔하고 다 버렸다. 설레는 물건조차 버리라 한다. 내가 두 손을 든 것은 그가 패션 지향점으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을 때였다. 교복은 학창시절로 충분하다.

버리지 못하는 이들의 대변인으로 나는 변명하고 싶다. 뭐든 가질 수 있다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현재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너무 사소하기에, 도리어 그걸 가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절실한 것이다. 이 하찮고 번거로운 물건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품들이다. 더욱이 어떤 한가한 밤에 읽었던 책을 또 읽을 기회란 사랑스럽다. 물건들은 과거의 추억만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미니멀리스트의 단정한 삶 속엔 컬렉터들의 난삽하면서도 박물지적인 열정이 없지 않은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수많은 전시물은 삶의 자잘한 추억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욕망이 있었던 ‘반-단샤리주의자들’의 유품이다.

곤도 마리에의 성공과 그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심도 있게 조망하는 <뉴욕 타임스>의 최근 기사(‘정리 여왕 곤도 마리에와 정리정돈을 둘러싼 가차없는 전쟁’)는 정리법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위안이 된다. 기사의 마지막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는 모두 허점투성이에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정리를 끝마친 후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곤도는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면 뭐든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나는 과식해서 토하기 직전의 먹깨비 같은 나의 책장에서 다른 책들의 어깨를 밀치고 들어선 책 한 권을 꺼내보았다. <둘런과 모리스의 컬렉션>(린 섀프턴, 민음사)라는 책이다. 사진과 캡션만으로 구성된 이 픽션은 음식 칼럼니스트인 둘런과 사진작가인 모리스가 이별하며 경매에 내놓은 물품에 대한 이야기며, 그들 연애의 역사이다. 그들은 이별 후 영수증, 보드게임, 셔츠, 편지, 자잘한 장신구들을 끝난 감정과 함께 경매에 부친다. 나는 오래전에 읽었으므로 처분해야 했을 이 책을 다시 넘겨보며 생각했다. 정리정돈은 우리가 스스로 찾는 인생의 계기여야 하지만, 삶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어떤 단계로 찾아올 수도 있겠다고.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 버리고, 끊고, 헤어질 수 있는 결단력이라고. 그때까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더 물건을, 추억을 끌어안고 산다. 이것을 감상주의자의 단샤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