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버리는 삶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소유의 역습'에 봉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단샤리 열풍. 물건들을 버리고 미니멀리스트적인 삶을 살자는 그 기치에 동참할 수 없는, 못 버리는 삶을 위한 변명. | 단샤리,나는단순하게살기로했다,버리는즐거움

4년 전, 작업실을 얻었다.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 공식적 이유였다. 비공식적으로는 다른 식구들로부터 책을 버리든지 독립하라는 통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책장과 책상만 필요했으므로 여유 공간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책장 칸에 책을 한 줄씩만 꽂아도 빈자리가 있다니, 장문을 열었을 때 우르르 쏟아지는 물건이 없다니,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책장에는 칸마다 책을 두 줄씩 쑤셔 넣고도 모자라고, 빈 곳에는 수납 상자가 가득한 신세이다.‘소유의 역습!’에 봉착한 사람이라면 물건을 버리고 단순하게 살자는 단샤리(斷捨離)의 필요성에 깊이 동감할 것이다. ‘머스트-해브 아이템’의 목록은 나날이 늘어가지만, 도시 공간 1제곱미터의 가격은 높아만 가는 이 사회에서 소유는 불필요한 구속. 끊고, 버리고, 헤어져라. 그러면 평온해지리니. 동양적 선(禪)에서 유래한 이 생활의 종교는 개종자를 유혹한다. 단샤리 열풍과 미니멀리스트적인 삶의 대명사처럼 된 곤도 마리에의 책 (더난출판사)을 읽기만 해도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곤마리 정신의 핵심,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당신의 삶이 달라진다”를 주문처럼 외운다면.확실히 곤마리 정리법은 저자 본인의 삶은 확 바꿔놓은 듯하다. 그녀의 책은 2014년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6백만 부 넘게 팔렸으며, 2016년 가을에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 곤도 마리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프 구루이며, 정리법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창시자이다. 곤도 마리에의 성공은 내게도 망상을 안겨주었다. 내가 지금 호더의 방 같은 내 작업실을 전격 공개한 후 물건을 다 버리면, 그것만으로도 유명해질 수 있을지 몰라. 그러면 적어도 삶이 바뀌긴 하겠지.동기가 생겼으니 내친김에 정리법의 베스트셀러 두 권을 더 읽었다. (생각정거장)의 저자이자 정리 전문가인 야마시타 히데코는 감추는 수납 7, 보이는 수납 5, 보여주는 수납 1의 정리법을 제안한다. 필요 없는 건 버리지만 멋진 물건은 가지고 장식처럼 쓰라는 것이다. 가령, 부엌의 모든 그릇은 식기장에 다 넣은 후 싱크대와 레인지 톱에는 근사한 주전자 하나만 놓아 인테리어 소품으로 쓴다. 매혹적인 조언이었다. 집이 무인양품의 카탈로그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애물은 금방 찾아왔다. 야마시타는 출근복은 여섯 벌이면 충분하단다. 이 여섯 벌을 한 달 내내 충실히 입고, 한 달에 세 가지는 버리고, 세 가지는 새로 산다는 것이다. 보통 언제 가난해질지 몰라서 돈이 생길 때 이런저런 예쁜 걸 모으는 것이 기쁨인 내게 그런 대범함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비즈니스 북스)의 사사키 후미오는 더 극단적이었다. 그는 물건을 버리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미니멀리스트인데, 방에는 이불 한 채만 달랑 놓여 있을 뿐이다. 가구와 전자제품도 거의 줄이고, 필름 사진과 추억의 편지도 스캔하고 다 버렸다. 설레는 물건조차 버리라 한다. 내가 두 손을 든 것은 그가 패션 지향점으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을 때였다. 교복은 학창시절로 충분하다.버리지 못하는 이들의 대변인으로 나는 변명하고 싶다. 뭐든 가질 수 있다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현재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너무 사소하기에, 도리어 그걸 가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절실한 것이다. 이 하찮고 번거로운 물건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품들이다. 더욱이 어떤 한가한 밤에 읽었던 책을 또 읽을 기회란 사랑스럽다. 물건들은 과거의 추억만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미니멀리스트의 단정한 삶 속엔 컬렉터들의 난삽하면서도 박물지적인 열정이 없지 않은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수많은 전시물은 삶의 자잘한 추억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욕망이 있었던 ‘반-단샤리주의자들’의 유품이다.곤도 마리에의 성공과 그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심도 있게 조망하는 의 최근 기사(‘정리 여왕 곤도 마리에와 정리정돈을 둘러싼 가차없는 전쟁’)는 정리법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위안이 된다. 기사의 마지막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는 모두 허점투성이에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정리를 끝마친 후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곤도는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면 뭐든 시작할 수 있으니까.나는 과식해서 토하기 직전의 먹깨비 같은 나의 책장에서 다른 책들의 어깨를 밀치고 들어선 책 한 권을 꺼내보았다. (린 섀프턴, 민음사)라는 책이다. 사진과 캡션만으로 구성된 이 픽션은 음식 칼럼니스트인 둘런과 사진작가인 모리스가 이별하며 경매에 내놓은 물품에 대한 이야기며, 그들 연애의 역사이다. 그들은 이별 후 영수증, 보드게임, 셔츠, 편지, 자잘한 장신구들을 끝난 감정과 함께 경매에 부친다. 나는 오래전에 읽었으므로 처분해야 했을 이 책을 다시 넘겨보며 생각했다. 정리정돈은 우리가 스스로 찾는 인생의 계기여야 하지만, 삶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어떤 단계로 찾아올 수도 있겠다고.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 버리고, 끊고, 헤어질 수 있는 결단력이라고. 그때까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더 물건을, 추억을 끌어안고 산다. 이것을 감상주의자의 단샤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