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갈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이 계절에는 갈치가 먹은 온갖 바다 생물의 아미노산이 응축된 살점의 맛을 놓칠 수 없다. | 박찬일,갈치

원래 갈치는 ‘칼치’였다고 한다. 칼처럼 생겨서 그렇다. 베일 것 같다. 실제 베인다. 살아 있는 놈은 흉기이고, 죽은 놈은 반 흉기다. 등지느러미가 날카로워서 손을 베이기 딱 좋다. 갈치의 일본어도 칼을 뜻한다. ‘太刀魚’라고 쓴다. 중국인들은 ‘带鱼’라고 쓴다. 허리띠 같은 고기라는 뜻이다. 같은 사물을 이렇게도 볼 수 있다. 허리띠 고기라. 아닌 게 아니라 큰 갈치를 잡으면 허리를 둘러도 될 만하다. 갈치는 마릿수 재미와 손맛이 있어서 낚시꾼들도 꽤 있다. 꼭 멋진 돔을 낚지 않더라도 비교적 잘 낚이는 이런 고기에 맛 들인 낚시꾼들이 있는 것이다.갈치는 특이하게도 길이보다 폭을 가지고 크기를 분류한다. 낚시꾼들이 흔히 그런다. 이지(二指)니 삼지(三指)니 한다. 손가락 길이가 아니라 폭을 뜻한다. 갈치가 오지(五指)쯤 되면 제법 큰 대물이다. 손바닥 폭만큼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 먹는 갈치 중에 이 정도 크기는 5만원은 줘야 할 것이다. 남대문 갈치조림집에 가면 당연히 2지 정도에 해당하는 놈을 쓴다. 7~8천원짜리 백반에 5지를 어떻게 쓰나. 더러 싼 갈치조림에 5지짜리가 나온다면 99.9퍼센트 순도 높은 아프리카산이다. 세네갈이라고, 들어보셨을 거다. 현역 시인이었던 셍고르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던 그 나라 앞바다에서 잡은 것이다. 세네갈 갈치를 먹을 때는 평소에 여자(남자)를 울린 적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다. 그 나라 갈치의 뼈는 얼마나 무섭고 날카롭고 단단한지 모르니까, 목구멍에 걸렸다가는 그대로 살결을 찢어버릴 정도다. 대학 응급실에서 일하는 내 후배가 한번은 생선 가시가 목에 박혀 온 사람을 치료했는데, 내시경으로 보고는 낚싯바늘인 줄 알았다고 한다. 세네갈산이 아닌데 5지, 7지짜리 갈치를 2~3만원 받는 조림이나 구이로 내줬다면 국정원에 신고해야 한다. 간첩이다.갈치는 한때 정말 쌌다. 그래서 우리 집 반찬에 무시로 올라왔다. 엄마는 싼 게 아니면 절대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민어나 도미는 한 번도 못 먹어봤다. 오징어, 꽁치, 정어리, 청어, 동태, 갈치, 고등어, 양미리, 도루묵이 우리 집 생선 반찬의 단골이었다. 갈치는 젓가락 훈련에 최고의 반찬이기도 했다. 난방도 연탄, 요리도 연탄에 하던 시절이었다. 날씨가 추울 때는 당연히 아궁이에 연탄을 땐다. 거기에 석쇠를 올리고 갈치를 굽는다. 날씨가 아직 더워서 불을 때기 전에는 진흙으로 구워서 만든 이동형 연탄화덕을 마당에 내어 놓고 구웠다. 부채로 살랑살랑 연기를 피워가면서 말이다. 그때 집들은 대개 방을 많이 넣기 위해서 ‘미음(ᄆ)’ 자 모양이 흔했다. 그런 마당에서 생선을 구우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하얗게 피어나는 갈치 굽는 연기가 좀 심하며, 그 냄새 또한 좀 강렬한가. 물론 고등어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그래도 갈치를 구울 수 있었던 건, 그때는 그 생선이 쌌으니까 별 허물이 안 되었으리라.그때 갈치는 요즘 보는 반짝거리는 은갈치가 아니었다. 비늘이 다 벗겨져서 회색으로 보이는 먹갈치였다. 종자가 다른 건 아니다. 낚시로 잡아서 비늘이 안 다치게 조심조심 다루어 팔리는 게 은갈치일 뿐이다. 목포에서 갈치낚싯배를 탄 적이 있다. 제대로 낚시를 하든, 그냥 밤바다를 구경하며 라면을 끓여 먹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그런 관광낚시였다. 전문 꾼들이 붙는 낚싯배는 분위기가 살벌하다. 승부사들이기 때문이다. 포인트를 찾아 이동하는 선장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돈 냈으니 포인트 잘 잡아달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으며 꾼들은 꾼들대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 게 전문 낚싯배다. 이런 배는 타면 재미가 없다. 왜? 나는 손맛 같은 데 관심이 없고, 그냥 누가 낚은 걸 먹는 일을 재미로 아는 사람이다.달빛이 교교한데, 낚싯대에 번쩍이는 불들이 매달려 하늘로 치솟는 게 아닌가. 바로 갈치였다.프로 낚시꾼들의 비정한 세계를 그린 유명한 소설이 있다. 번역가 안정효 선생을 소설가로 굳게 자리매김시킨 작품 이다. 은 낚싯바늘에 달려서 고기가 바늘을 뱉어내지 못하게 거스르미가 되는 날카로운 부속 바늘의 일종이다. 하여튼 그 배를 탔다. 남들은 꽁치 미끼를 손질한다, 어쩐다 하고 있을 때 나는 선실 안에 들어가서 잤다. 이불도 있다. 그러다가 소란스러워 밖을 내다보니 이런 장관이 있나! 달빛이 교교한데, 낚싯대에 번쩍이는 불들이 매달려 하늘로 치솟는 게 아닌가. 바로 갈치였다. 얼굴이 비칠 듯한, 갓 포장을 벗긴 알루미늄 포일 같은 색깔의 은갈치는 이미 죽은 후의 모습이다. 갈치는 낚싯대에 매달려 있으면서 이미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것은 ‘투명한 종의 기원’을 보여준다. 거무스름한 내장이 거의 투명에 가까운 크리스털 같은 살점 밖으로 비친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 땅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의 원시적 모습으로 종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퍼덕이는 갈치는 곧 꾼들의 쿨러 안에서 목숨을 거둔다. 천천히 은색으로 몸 빛깔을 바꾸면서. 잠시 다른 포인트를 찾아 이동하거나 얼추 쿨러가 묵직해지면 선상에서 회를 뜬다. 선장님의 벼린 칼날로 회를 뜨는데, 족보도 없는 칼솜씨이건만 속도와 효율 하나는 끝내준다. 갈치 살점이 척척 발라져 접시에 오르고, 나는 그저 나무젓가락을 딱, 하고 갈라서 깔아둔 김치를 지분거리며 횟감을 기다리면 된다. 회 맛이야 무얼로 설명할 것인가. 탄탄하게 씹히다가 이내 녹아버리는, 갈치가 먹은 온갖 바다 생물의 아미노산이 응축된 살점의 맛.갈치는 배처럼 수평이동하면서 헤엄치지 않고 서서 이동한다. 해마처럼 말이다. 배에 올라온 갈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종의 기원’을 떠올리게 하는 원시적인 마스크, 사나운 이빨이 늑대를 닮은 고기다. 물리면 손가락이 달아난다. 지중해에서도 갈치가 제법 잡힌다. 아프리카 세네갈 앞바다나 지중해나 거기서 거기다. 우리나라 갈치보다 이빨이 훨씬 굵고 몸통도 크다. 시칠리아의 북동쪽 제2의 도시 카타니아 어시장을 라 페셰리아(La Pesceria)라고 부른다. 시칠리아 사투리로 피스카리아(Piscaria)라고도 부르는데 고유명사는 아니고 생선시장이라는 뜻이다. 이 시장에선 엄청난 양의 생선이 팔리고, 선도도 대단하다. 멸치와 정어리, 고등어, 스캄피라고 부르는 새우, 붉은 지중해 새우, 서대, 송어, 오징어와 문어 같은 것들이 좌판에 가득 깔린다. 시칠리아에 여행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코스다. 이곳에 장을 보러 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갈치가 제법 있었다. 7지(七指)는 될 듯한 엄청난 크기도 있었다. 유럽행 보트를 타고 조난 당한 아프리카 난민을 먹은 놈들인가.(갈치는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풍문이 있다.) 살점이 단단하되 한국산처럼 단맛은 적다. 이걸 소금 쳐서 구워 먹으면서 나는 고통스러운 이국생활을 견뎌냈다. 파스타라면 이가 갈렸으니까.한번은 웃기는 일도 있었다. 그 시칠리아의 주방장이 나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온 것이 5년 전인가 그랬다. 이른바 갈라 디너를 했다. 새벽에 노량진에서 장을 보는데, 그가 시장을 한 바퀴 돌더니 이랬다. “전채 메뉴는 고등어랑 갈치로 하지. 아주 물이 좋고 양이 많구나.” 그때 이미 그 두 생선의 가격이 금값이었다. 외국서 온 주방장이 하자니 군소리 없이 왕창 샀다. 나중에 디너가 다 끝나고 재료비가 50퍼센트가 넘었다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거다. 아니, 왜 그렇게 많이 나왔어? 주방장이 갈치랑 고등어를 쓰자고 했잖아요. 그게 왜? 한국에선 비싸다고요. 맘마 미아, 난 재료비 줄인다고 일부러 고른 생선인데. 한국에선 넙치가 갈치보다 더 싸요. 또 맘마 미아. 어쨌든 한국 갈치는 맛있다. 그래서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