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유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저급한 취향이 때로는 고상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압도하기도 한다.”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40여 년 전 남긴 말은 2016년 패션의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하이패션으로의 신분 상승을 넘어 급격한 획일화로 신선함을 잃은 ‘젊음’이라는 신드롬에 대해. | 베트멍,유스,뎀나,youth,opi

21세기가 되면서 우리는 트렌드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은 파격보다는 현실성과 일상성을 패션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으로 만들었다. 칼럼니스트 캐시 호린도 이런 경향에 대해 동의했다. “20세기 동안 여성들이 옷을 입는 방식은 트렌드가 지배했어요. 21세기 패션계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트렌드의 실종이죠.”퍼즐 조각처럼 복잡해져만 가는 트렌드는 온전히 한 가지 스타일로 정의할 수 없게 돼버렸다. 이 혼란스러운 빈틈을 ‘유스(Youth)’로 일컬어지는 1990년대의 MTV 채널과 팝 문화를 기반으로 한 미국적이고 풍요로운 패션과 삶의 방식, 그리고 포스트 소비에트 시절(1991년 소련 해체 후를 뜻하는) 청춘들이 영위한 독특한 문화와 패션이 혼합된 ‘러시아식 유스 컬처’가 파고들었다. 특히 뎀나 바잘리아의 베트멍과 고샤 루브친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식 유스 컬처의 생경한 매력은 단시간에 패션 에디터는 물론이고 셀러브리티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2016년도의 주인공이 되었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스트리트 브랜드나 베트멍 스타일로 디자인된 후디와 트레이닝 팬츠를 입었고 손끝을 덮고도 한참 남는 긴 소매를 장착했다. 베트멍이나 슈프림 식의 패러디도 즐겼다. 이런 변화가 ‘현재 대중이 원하는 것’을 대변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디자이너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유스’라는 문화방식을 취했다. 우아함과 헤리티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던 전통 있는 하우스 브랜드조차 트랙 팬츠나 후디, 볼캡, 그래픽 티셔츠를 런웨이에 올렸고 쇼 노트에도 ‘스트리트’ ‘유스 컬처’ 같은 단어가 언급됐다. 이런 현상을 지켜 보면서 트렌드가 사라진다고 패션이 풍부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매거진의 편집장이자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역시 이런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얼마 전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행사의 심사를 봤어요. 출품된 대부분의 옷은 세 가지 카테고리 안에 묶였어요. 고샤 루브친스키, 베트멍, 해인 서. 펩시냐 코카 콜라냐 같은 의미 없는 흉내일 뿐이었죠. 이들은 유스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유스 컬처에는 헤리티지가 없어요. 단지 특정 지역을 베이스로 한 젊은이들의 문화일 뿐이죠.유스 컬처가 진실성을 가지려면 실제로 체험한 문화여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예요. 오리지낼러티의 문제인 거죠. 흉내가 아닌 진짜가 주축이 되어야 해요.”라고 덧붙였다.실제로 많은 스트리트 브랜드나 디자이너 브랜드가 슈프림이나 베트멍, 고샤 루브친스키처럼 되고 싶어하고 비슷한 것을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만드는 건 오리지낼러티가 없는 모방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유스 패션의 중심에 있는 뎀나의 하이패션 성적표는?지난 9월 열린 뎀나의 두 번째 발렌시아가 컬렉션에 대한 평은 크게 엇갈렸다. 발렌시아가라는 전통 있는 메종 브랜드를 대담하게 변신시켰다는 평과 뎀나의 아이덴티티를 과도하게 반영해 베트멍과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평. 물론 실용적이면서 쿨한 옷들이 가득했고 잘 팔릴 것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 없지만 베트멍과 발렌시아가를 구분 지을 만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런웨이 위 모델들의 기괴한 워킹과 애티튜드는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가 구축한 극적인 우아함과 드라마마저 지워버렸다.) 런웨이가 이렇다면 런웨이 밖의 모습은 어떨까? 20년 가까이 컬렉션 현장을 취재해온 포토그래퍼 배정희도 이런 현상에 대해 씁쓸한 마음을 전했다. “패션이 지닌 다양한 가치가 있지만 패션을 단순히 놀이로만 생각하는 젊은 사진가가 많아졌어요. 진정성이 결여된 채 재미만 좇다 보니 세대교체도 빠르고요. 사진가들의 변화와 함께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던 진짜 멋쟁이들도 이제는 찍히길 거부할 정도예요. 그들이 거부한 자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잇’ 아이템으로 치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넥스트 패션 피플이 차지했고요.”고백하자면 나는 진정성과 다양성은 멸종되고 오직 젊음과 새로움에만 집착하는 패션계에 싫증이 났다. 모방의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디자이너, 트렌드라면 앞뒤 안 가리고 사 입는 무조건적인 추종자, 그리고 이런 패션 빅팀을 향해 맹목적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의 모습에 말이다. 동시에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맥퀸, 레이 가와쿠보, 스테파노 필라티, 라프 시몬스, 마크 제이콥스같이 개성과 재능이 넘치는 디자이너들과 패션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지녔던 진짜 패션 피플이 공존했던 2000년대 초반이 그리워졌다. 그런 의미에서 유스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지난해 수지 멘키스와 마크 제이콥스가 나눴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패션을 보면 모두 다 똑같아 보여요. 어떤 것이 에지 있는지, 또 쿨한지만을 따지죠. 그 어떤 것도 새롭게 창조해내지 못할, 그야말로 본질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그 안에서는 저항정신이나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죠. 진부하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의 말에 1백 프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젊음이라는 묘약에 압도되어버린 패션계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