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의 미술관 프로젝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생 로랑과 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의 모 기업인 케링 그룹의 설립자이자 크리스티 경매 하우스를 소유하고 있는 아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의 미술관이 드디어 파리에 들어선다. | 컬렉터,프랑수아피노,미술관

 프랑수아 피노의 문화재단 파리 입성이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4월 27일, 파리시장인 안 이달고와 PPR 그룹의 설립자이자 현대미술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 그리고 현 그룹 회장인 그의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섰다. 피노의 최측근이자 프랑스 미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 문화부장관 장 자크 엘라공이 다리를 놓았다는 둥 그동안 입소문으로 떠돌던 피노 문화재단의 파리 입성이 일 년여 간의 물밑 작업 끝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프랑수아 피노의 문화재단 건립은 2000년부터 프랑스 미술계와 정치계의 이슈였다. 2000년 피노 재단은 당시 대통령이던 자크 시락의 중재로 불로뉴 숲 내 세강 섬에 위치한 옛 르노 자동차 공장을 개조해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불로뉴 시와의 협의 절차가 복잡해지며 스캔들이 터져 나올 조짐이 보이자 단호하게 짐을 싸 들고 베니스로 향했다. 2006년과 2009년 베니스 운하의 양 끝에 개관한 그의 미술관 팔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 덕택에 베니스는 고전적인 관광명소라는 낡은 이미지를 벗고 현대미술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었다. 프랑스 출신 기업가의 컬렉션임에도 결국 이탈리아만 만세를 부른 것이다.프랑스로서는 배가 아플 만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프랑수아 피노로서도 아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프랑수아 피노는 공공연히 브르타뉴 출신임을 내세우는, 유달리 프랑스 문화에 애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파리는 그의 미술관이 입성할 최적지이자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난제를 던져준 도시다. 사업과 컬렉션에서 피노의 경쟁자이자 친구인 LVMH의 아르노 회장이 파리를 포기하고 불로뉴에 루이 비통 미술재단을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8세기에 건립된 팔레 그라시처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파리 시내 요지에 위치하며 동시에 최소 2천 평방미터가 넘는 전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건물은 관공소뿐이다. 정치권과 손발을 맞추지 않으면 애당초 실현되기 요원한 프로젝트란 이야기다.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지어진 상업증권소 건물의 주인은 1949년부터 이 건물에 둥지를 튼 상공인협회였다. 일 년여 간의 협상을 이끈 것은 피노가 아니라 안 이달고가 이끄는 파리시였다. 그 사이 건물의 주인은 상공인협회에서 파리시로 바뀌었고, 파리시는 이를 다시 피노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케링 그룹에 임대했다. 증권거래소 건물은 루브르와 샤틀레를 잇는 노른자위에 베니스의 팔레 그라시보다 1.5배 큰 4천 평방미터의 공간, 게다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문화재다. 1천2백억에 달하는 공사비와 연간 1백80억의 월세는 피노의 부담이지만 50년간의 계약기간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피노의 아들과 손자까지 3대를 이어 박물관을 경영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시간이다. 거부할 수 없으며 거부해서도 안 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파리시장 안 이달고에게도 피노는 거부할 수 없는 파트너다. 퐁피두 대통령의 숙원 사업이었던 퐁피두 센터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로 프랑스 정치인들은 문화 사업이야말로 자자손손 권력을 빛내줄 가장 이상적인 방법임을 깨달았다. 재임 기간이 끝나면 권력은 잊혀지지만 박물관의 현판에 새겨진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미테랑 대통령은 그랑 루브르 사업 덕택에 유리 피라미드를 볼 때마다 되새겨지는 이름이 되었으며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브랑리 미술관을 세운 시라크 대통령은 알츠하이머로 외출조차 못하는 신세가 되었어도 시라크와 브랑리라는 대형 미술 전시의 명예로운 주인공이 되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출되자마자 프랑스 역사박물관 건립 사업을 발표했으나 재임에 성공하지 못해 프로젝트를 사장시켜야 했던 것처럼 대형 문화 프로젝트는 권력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에도 실현시키기 어려운 대업이다. 피노 박물관이 무사히 문을 열게 되면 초임 파리시장인 안 이달고는 2020년 치러질 파리시장 선거뿐 아니라 더 큰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된다. 더불어 실패한 도시 계획으로 인해 늘 파리시의 골칫거리가 되어온 샤틀레 지역을 일신할 수 있는 기회다.문화 사업에 투자하는 열성과 자본 덕에 단지 돈 많은 거부가 아닌 문화사업가로 이름을 남길 피노 가문과 밝은 정치적 미래를 약속 받은 안 이달고의 이인삼각 경기 덕택에 우리에게는 파리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