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생긴 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를 둘러싼 말들로 국제 미술계가 떠들썩하다. 패션과 광고와 미술 사이의 쿨한 이미지가 범람하는 올해의 베를린 비엔날레에 있는 것과 없는 것. | 아트,베를린비엔날레

올해 베를린 비엔날레(이하 BB9)의 큐레이터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4인조 컬렉티브 DIS가 선정된 후, 베를린 미술계는 꽤나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현재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는 9월 18일까지 계속된다.) 미술의 미래나 역할을 묻는 거대한 추상 담론을 주제로 내세우고 1백여 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을 쏟아내는 비엔날레의 범람에 지쳐, ‘핫’한 DIS가 어떤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BB9가 개막한 후, 올해 행사는 완전히 양분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부정적인 입장의 평단에서는 혹독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DIS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로렌 보일(Lauren Boyle), 솔로몬 체이스(Solomon Chase), 마르코 로소(Marco Roso), 데이비드 토로(David Toro)로 구성된 DIS는 온라인 매체 , 미술 작가와 협업하는 사진 에이전시 ‘DISimages’, 유사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 ‘DISown’ 등을 운영하고 작가 겸 기획자로도 활동하며 미술, 패션, 음악 등 여러 문화예술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DIS는 ‘가장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공론장인 인터넷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초 단위로 페이지를 넘나드는 인터넷 사용자들을 붙잡아둘 만한 쿨한 이미지 기반의 생산물을 제작해왔다.의 설치 전경"/>KW 컨템퍼러리 아트 인스티튜트(이하 KW), 베를린 미술학교(이하 Adk), ESMT, 포이에얼레 컬렉션, 유람선 블루스타 등 베를린의 5개 장소에서 개최된 BB9의 주제는 ‘The Present in Drag’다. 남성의 여장(혹은 여성의 남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드래그(Drag)’는 다른 성(性)을 참조해 그 성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의상을 착용하는 행위로, 게이 문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비엔날레가 차용하고 있는 드래그 개념은 젠더 플레이나 젠더 전복성보다는 표피나 피상이다. 즉, 광고나 상품으로 뒤덮인 세계, 이를 추동하는 원동력인 범람하는 이미지, 그 원천인 인터넷을 조명함으로써 오프라인에서 일방적으로 접속하는 온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이 삶의 패턴은 물론 인식 체계까지 뒤흔들며 오프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재의 면면을 전시로 풀어낸 것이다.쉽게 말하자면, BB9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향연이었다. DIS는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BB9의 출품작들을 통해 드러나는 위와 같은 오늘날 세계의 특성을 ‘포스트 컨템퍼러리(Post Contemporary)’라고 지칭하고 있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구현하는 미학은 이미지가 전달하는 내면의 메시지보다는 그 시각적 피상성에 주목하고, 각종 SNS, 인터넷 쇼핑몰, 애플리케이션 등 가상의 온라인 소프트웨어 혹은 이를 구동시키는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인터넷의 물리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다룬다. 또한 BB9는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특성으로서 패션과 광고와 미술의 그 어느 중간 지점에 있는 작업들도 선보였다. 이와 같은 BB9의 개괄적인 특성이 미술계 평단을 자극한 첫 번째 이유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에 대한 취향의 문제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작금의 정세를 무시하는 듯한 그 피상성의 가벼움이다.첫 번째 이유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BB9 개막 직후 미술인들과 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많은 이들이 “나는 개인적으로 포스트 인터넷 아트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자기방어처럼 말했다. 그것이 비방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일면을 논하고 있다. 이를 ‘줌인’한 기획의 집중력 면에서 BB9는 탁월하다. 느슨하게 현대미술을 포괄적으로 훑어 내리는 대형 미술 전시가 아니라 작가, 작품, 관객의 타깃을 분명히 했고, 혹자는 벌써 풀이 죽었다고 평가절하하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를 담론의 장, ‘비엔날레’라는 미술 전시 형식에 대범하게 펼쳐 보였다.관건은 두 번째 이유로,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BB9가 ‘베를린’ 비엔날레라는 점을 상기하자. 2015년 11월 13일 IS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파리 테러 이후 (미디어로 공개되고 있진 않지만)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도 폭발물이 제거됐다는 소문이 왕왕하고, 평일 아침마다 베를린 곳곳의 동사무소 앞에서 거주자 등록을 위해 몇 시간씩 길게 줄을 서 있는 이민자들을 보고, 이민자와 함께하려는 시민 차원에서의 여러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뉴스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의 반(反)이민자 정책이 소개되고, 지난 5월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의 대선에서는 극우정당의 후보가 불과 3만여 표의 차이로 낙선해 전 유럽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독일, 특히 베를린은 나치즘과 베를린 장벽 등 이미 파란만장한 사회, 정치, 역사적 이슈의 두께가 수북하게 쌓아 올려진 도시인 동시에 오늘날 유럽 사회가 겪고 있는 신국가주의, 이민자 수용, 경제 둔화 등 복합적인 문제를 생생하게 중계하고 있는 핵심적인 현장이다.는 미술작가나 패션 브랜드가 생산한 이미지들을 펼쳐 놓았다"/>이런 세태에 기묘한 헛웃음을 날리는 듯한 BB9의 프로모션은 내용물 없는 포장지 덩어리의 마지막 포장지였다. BB9의 ‘Not the Creative Director’를 맡은 바박 래드보이(Babak Radboy)가 총괄한 이번 행사의 캠페인 ‘Not in the Berlin Biennale’는 진중해 보이는 말장난 문구와 힙한 이미지를 매칭한 포스터 및 빌보드를 베를린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문제적 문구는 “왜 파시스트만 온갖 재미를 봐야 해?(Why should fascists have all the fun?)”이다. 래드보이가 미술 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술을 다시 재미있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 것을 되뇌어보면, 그 ‘재미’는 1차원적 수준에 그치지 않았나 싶다.프레스 오프닝 일정상,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대다수 미술인은 곧장 간담회장 건너편의 AdK(베를린 미술학교)로 향했다. AdK에서 마주하는 첫 번째 작품은 ‘전시 속의 전시’ 다. 일상 속 ‘도처에 산재한 상업적 인터페이스’ 대형 전광판을 건물 내 곳곳에 설치해 미술작가 혹은 패션 브랜드가 생산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카오 페이(Cao Fei)의 좀비 사진, 비얀 멜가드(Bjarne Melgaard)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한 화보 속 의상 위의 문구 ‘I LOVE DICK’, 여고생 교복을 입고 여성성을 희화하는 게이 섹슈얼리티의 상투적 전형을 고스란히 전시하는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의 사진 속 흑인 남성들 등을 보고 있노라면, 는 ‘불가해한 현재에 대한 풍경’이라는 기획 목표에 충실한, 무책임하고 솔직한 이미지의 방종이었다. AdK 1층 일련의 이미지들 뒤편에 설치된 멕시코 작가 데보라 델마(Débora Delmar)의 건강 음료 카페 ‘MINT’는 웰빙과 녹색 이미지로 포장된 자본주의를 언급하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레시피로 만든 녹색 건강음료를 (현금으로만) 판매하는 전시장에서는 향긋한 과일과 채소 냄새뿐, ‘고발’의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었다.그런 와중에 AdK 2층에 전시된 미국 작가 리지 피치/라이언 트레카틴(Lizzie Fitch/Ryan Trecartin)의 영상 설치작품은 윗집에서 쉴 새 없이 쿵쾅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 같았다. 캠핑카, 산, 사막 등에서 각종 휴대용 영상 촬영 장비로 찍은 비디오 클립을 편집한 이 작품에서는 괴상한 메이크업을 한 인물들이 앵앵거리는 말투의 기계 변조된 음성으로 농담, 가십을 주고받거나 불만을 이야기하며 과장된 몸짓으로 온갖 멍청한, 때로는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통해 노출되는 드라마틱한 셀러브리티의 삶을 한 번 더 비틀어 과장시킨 이들의 독특한 시각 언어는 초창기 큰 이목을 끌었으나, 몇 년째 되풀이하듯 이어지는 이들의 ‘미학’은 셀러브리티의 삶의 표피를 나도 입어보려 하는 시도들, 그 상태에 대한 안주, 현실의 온갖 격차와 불평등을 꿀꺽 삼켜버리고 저항을 스스로 유예하고 있는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마비된 경각심 같았다. AdK 5층에 설치된, 자신의 엉덩이를 셀카 스틱으로 촬영하고 있는 스웨덴 작가 안나 우덴베르그(Anna Uddenberg)의 마네킹 작품 ‘Journey of Self Discovery’는 머리를 땅속에 박고 자신을 숨기는 타조처럼 스마트폰과 SNS에 몰두하는 현대인의 자기집착, 자기탐닉, 자기괴멸을 추하게 드러낸다. 더군다나 같은 층에 전시된 M/L 아트스페이스(M/L Artspace)의 영상 설치작품은 트레카틴의 미학을 고스란히 차용한 영상을 누워서 보도록 침대와 베개를 배치해놓았다. 내가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마침 모마 PS1의 디렉터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esenbach)가 뉴욕에서 함께 온 손님들과 이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 장면은 이 총체적 상황에 대한 하나의 단서 같았다.AdK를 떠날 즈음, 멜버른의 패션-미술 실험공간센터 포 스타일(Centre for Style)의 설치작품 겸 패션쇼-퍼포먼스 ‘Dress Rehearsal’이 진행됐다. 메이크업부터 뒤풀이 파티 후 숙취까지 ‘옷을 생산할 뿐 아니라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패션을 보여주려 했지만, AdK 1층 의 이미지 전광판 사이를 활보하는 모델들이 그려낸 풍경은 스타 미술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화보 촬영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결국 미술인들의 최종 분노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DIS는 구매력을 높이는 맛있는 이미지를 줄줄이 늘어놓으며 1초 동안 머물 시선을 5초로 늘리는 패션-광고-이미지-미술의 함정에 고스란히 빠졌다.이 ‘분노’는 KW의 마당에서도 이어졌다. 조경사 그룹 아틀리에 르 발토(Atelier Le Balto)가 조성한 나무 울타리 정원 작품 ‘Passage’는 ‘번잡한 베를린 비엔날레 속 피난처(Refuge)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 패션 브랜드 69의 데님 해먹 작품 ‘69 R&R’을 통해 관객이 ‘휴식처 겸 도피처’에서 멋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고자 마련됐다. 기획 자체가 신선하지 못한 데다가 ‘난민(Refugee)’을 연상시키는 민감한 단어를 사용해 그와 무관한 작품을 묘사했으니, 기획의 신중함이 의심스러웠다.(BB9 프레스 오프닝 전날, KW의 마당에서 진행된 프리 오프닝 행사에서 여전히 참여 작가들은 작품 설치로 아비규환인 와중에 DIS 멤버 4인 모두 잘 차려입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모습은 큐레이터의 ‘사회생활’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하지만 KW의 1층은 흥미로운 기획을 보여줬다. 인터넷에서 여러 창(Windows)을 넘나드는 가상의 행위를 현실에 끌어온 것처럼, 관객은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 때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닫아)야 한다. 미국 작가 세실 에반스(Cécile B. Evans)의 대형 영상설치작품 ‘What the Heart Wants’는 KW의 가장 큰 1층 공간의 바닥을 전부 물로 채우고 패션쇼 런웨같은 보행로를 띄워 관객이 그 위에 앉아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작품을 관람하도록 했다.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영상에는 여러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해 디지털로 점철된 미래적인 상황에서 역추정하는 ‘인간적’이라는 감정, 상태, 개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작품 건너편에 있는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는 미국 작가 조시 클라인(Josh Kline)의 영상작품 ‘Crying Games’가 상영된다. 울면서 사과하는 연기를 하는 실제 연기자의 얼굴 위에 미국 전 대통령 조지 부시, 영국 전 수상 토니 블레어 등 이라크전쟁 주요 인물의 얼굴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투사했다. 그리고 1층을 나가는 곳에 설치된 독일 작가 알렉사 카롤린스키(Alexa Karolinski)와 잉고 니어만(Ingo Niermann)의 ‘Army of Love’는 도큐멘터리 형식의 캠페인 영상작품으로, 다양한 연령대와 외모의 사람들 혹은 ‘사랑의 군대’의 ‘군인들’이 서로를 보듬고 만지며 성적 매력, 사랑, 관계란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세 작품은, 포르노의 종착 단계에 접근한 듯한 VR 포르노 속 가상의 존재, 현재의 얼굴 사진을 찍으면 노년의 얼굴을 접붙여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 만나지 않아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섹스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위치 기반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특징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사이 여러 층위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인간의 ‘육체’가 어떻게 사유되고 있는지를 고민해보도록 한다.또한 AdK 1층 별도의 공간에 영국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Simon Fujiwara)가 선보인 ‘The Happy Museum’은 이미지에 대한 표면적이고 얄팍한 접근을 향한 풍자적 농담이었다. 그는 행복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경제학자(이자 작가의 형) 다니엘 후지와라와의 대화 끝에, 오늘날 독일에서 추구되는 ‘행복감’을 대변하는 사물들을 진열했다. 흑인과 아랍인 소년의 얼굴을 포장지에 사용해 독일 극우 세력의 비난을 받은 킨더 초콜릿 패키지(이 회사는 그 소년들이 독일 축구 대표팀원의 어린 시절이라고 공표해 혐오 세력의 목소리를 일축했다)와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철 채소 (그 모양새가 ‘백인 머저리(White Dick)’를 연상시키는) 하얀 아스파라거스를 나란히 배치했다. 그리고 독일 총리 안겔라 메르켈이 HD 카메라 앞에 설 때 사용하는 메이크업용 파운데이션 가루를 쌓아놓은 더미, 경찰 마네킹(포스트 인터넷을 대변하는 가장 진부한 소재)과 똑같은 보디페인팅을 한 근육질의 나체 남성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상황 등은 이미지의 표면성을 통해 이미지가 얼마나 끈질기고 지독하게 정치적인지를 보여줬다.인터넷을 장악한 이미지, 그 이미지가 떠돌도록 하는 네트워크, 그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 사용자들이 복합적인 관계를 맺는 상태를 지칭하는 ‘소셜’은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함께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정황과 특성을 그러모아 현재를 규명해보려 하지만 여전히 논의 중인 현재는 과거의 무엇에 대한 ‘포스트(Post-)’로 명명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를 떠돌고 있는 이미지가 정치, 자본주의, 광고, 상품 등과 결탁해 그 이면의 속사정을 세탁 당했을지언정 그 결합체가 우리에게 발산하는 메시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아직 합의된 정의를 내놓기는 어려운 새로운 이미지의 시대에 (언어적으로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컨템퍼러리 아트의 종말을 선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책임감 있는 선언에 앞서 우리는 현재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숙고해야 한다.세실 에반스의 영상작품 말미에 3D 그래픽 캐릭터들은 1960년대 미국 걸 그룹 더 셔를스의 히트곡 ‘Will You Love Me Tomorrow’를 느리게 변주한 음악에 맞춰 피날레 댄스를 춘다. 이 노래의 가사가 BB9의 문을 닫는다. “Is this a lasting treasure / or just a moment’s pleasure? / Can I believe the magic of your sighs? /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