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S/S 파리 패션 위크가 열린 10월 첫째 주, 샤넬은 쇼장을 데이터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패션의 선봉에 서서 트렌드를 이끌어왔던 샤넬이 패션쇼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전면에 내세운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아름다운 벨에포크 양식으로 1900년에 지어진 그랑 팔레가 각종 정보가 담긴 서버 컴퓨터 수천 대와 컬러풀한 전선이 난무하는 데이터센터로 바뀌다니! 마치 지금 패션계의 뜨거운 감자인 ‘디지털’이 패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상징적으로 언급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해왔던 전통 방식의 일들을 기계가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패션계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첨예한 감성을 요구하는 하이패션이야말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자 기술이 패션계에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확실하지만 사람들이 해온 원초적인 영역까지 위협하지는 않았으니까. 단적으로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트렌드의 확산 속도가 빨라졌고, 패션 블로거라는 새로운 집단이 생겼으며, 페이퍼 매거진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한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신했다. 장인들이 수일 밤낮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 완성하는 쿠튀르 드레스가 주는 감동을,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 코드를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건드리는 기획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최근 대두되고 있는 심상치 않은 테크놀로지 이슈를 관찰한다면 이 믿음에 금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뇌만큼 예민하게 발전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사람은 따라갈 수도 없는 속도로 패션을 습득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3월, 바둑을 배운 구글의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와 바둑 천재 이세돌의 대결은 전 세계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상대방이 두는 수에 따라 전개되는 상황이 어찌나 복잡한지 혹자는 우주 전체의 원자 숫자보다 더 많은 조합과 배열이 가능하다고 얘기할 정도로 인간 고유의 종목으로 꼽혔던 바둑에서 컴퓨터가 승리를 거뒀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알파고가 바둑을 학습하는 시스템으로 알려진 ‘딥 러닝(Deep Learning)’ 역시 큰 이슈를 모았다.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두뇌를 모델로 만든) 인공 신경망 기반의 기계 학습 기술 말이다. 결국 알파고는 이세돌과 대국을 하던 순간순간마다 수많은 데이터를 조합해서 새로운 수를 ‘생각’해낸 셈이다. 그렇다면 바둑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이런 인공지능 기술은 어떻게 사용될까?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례가 저널리즘이다. 현존하는 책, 블로그, 신문 기사, 웹페이지 등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정보를 해독하고 분류해 통계를 내어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 저널리즘은 이미 상용화되었다. 현재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기사에 국한되어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저널리즘 로봇이 머지않아 오피니언 기사나 트렌드 예측 기사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추정한다. 특히 현재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IT 기업들이 열을 올리며 집중하고 있는 인공지능 ‘이미지 검색’ 로봇이 등장하면 패션계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이미지를 검색창에 주입, 인터넷에 존재하는 가장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주는 1차원적 기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스스로 이미지를 ‘인식’해 ‘구별’해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패션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심화 학습’하게 된다면, 먼 미래엔 로봇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날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빅데이터 컴퓨터가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하드웨어의 능력에 따라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스타일닷컴에 존재하는 기존 샤넬 컬렉션을 시즌별로 정리해 받아들이는 데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온라인 쇼핑몰에 존재하는 옷들의 사진은 물론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고 있는 패션 이미지들의 해시태그까지 함께 저장할 정도다. 그 방대한 이미지 양을 기반으로 컴퓨터는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한글을 배우듯 셔츠라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그 아이템이 가진 칼라, 소매, 단추, 디테일과 소재를 판단하게 된다. 이 컴퓨터가 셔츠, 코트, 스커트, 팬츠, 구두, 스니커즈 등 아이템 자체를 분별하게 된다면 그다음 단계는 룩, 그리고 스타일이다. 페이즐리 프린트에 하이 웨이스트 팬츠, 프린지 디테일, 스웨이드 소재 등이 조합된 룩이 바로 히피 스타일이라고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한 시즌에 발표되는 수백 개의 런웨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좀 더 정확하게 트렌드를 분석하고 데이터화시킨다거나 가장 많이 등장한 아이템을 골라내고,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된 패브릭과 프린트에 대해 판별해내며, 패션 전문가도 기억해내기 힘든 과거의 이미지들과의 연관관계까지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로봇이 넘볼 수 없(다고 믿)는 마지막 단계, ‘창조’의 영역은 어떨까?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심화 학습’하게 된다면? 하우스가 직접 만든 소재를 직조하는 방식을 배우고, 하우스가 가진 시그너처 실루엣과 시대별 트렌드와 시대정신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다가올 시즌에 선보여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혁신적인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먼 미래엔 로봇이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날릴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디지털과 과학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패션계를 ‘더’ 변화시킬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기술적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로봇에게 새로운 시즌의 옷들을 계속해서 주입시키고 얻어낸 검색 값을 분석하는 것 역시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서 진행된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로봇이 실제로 사람처럼 섬세한 일 처리를 하려면 일의 정도에 따라 빠르면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결국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머지않아 도입될 기술이고(1960년대 후반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을 대상으로 최초로 체스를 두었을 당시, 전문가들은 2백 년 후에야 바둑 대국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불과 60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켜보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좀 더 집중하며 대비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다만 인공지능 패션 에디터 로봇이 등장해 비웃듯이 이 기사를 인용할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만은 피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