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카카오프렌즈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지금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에 입장하려면적어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폭염을 이겨낸 이 기이한 사랑에 대하여‘어피치 덕후’로서 생각해봤다. | 카카오프렌즈,카카오,이모티콘

때는 7월 10일 출근길, 강남역을 지나는 도중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강남역 한복판에 티-익스프레스라도 생긴 건지 아님 빅뱅이 콘서트라도 여는 건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을 서 있는 게 아닌가. 35°C를 육박하는 폭염절정의 날씨,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오후 한 시에, 진절머리 나게 북적거리는 주말 강남역 인파 속에서! 그들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악조건을 참아가며 끈기를 발휘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때문이었다.그래, 소문은 익히 들었다. 지난 7월 2일 강남역에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의 인기가 광기에 가깝다는 뉴스. SNS엔 오픈 당일 총 2천7백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스토어 입장에만 3시간 이상이 소요됐다는 후기가 빈번했다. 3층 ‘라이언 카페’의 프렌즈 마카롱과 컵케이크는 오전에 품절되기 일쑤고 오픈 이벤트로 판매하는 러키 박스는 전날부터 노숙을 해야만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단다. “카카오프렌즈숍 대리구매해요! ”라는 ‘대리밤샘’ 트위터 계정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어느 네티즌의 ‘조던보다 카카오’ 댓글이 농담만은 아닌 것 같다.이 풍문의 실체를 접한 보통의 반응은 이렇다. “왜죠?” 하지만 나의 경우엔 반가움이 앞섰다. 세상에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카카오프렌즈, 그중에서도 분홍색 복숭아 캐릭터(엉덩이가 아니다) ‘어피치 성애자’다. 지금도 내 책상 왼쪽엔 어피치를 위한 명예의 전당이 마련돼 있다. 어피치 피겨는 물론이고 머그 컵, 펜, 포스트잇, 동전지갑, 보틀, 칫솔, 초상화처럼 붙여놓은 엽서와 코스터까지, 하루에 열 번도 더 들여다보며 ‘엄마 미소’를 짓곤 한다. 카카오 본사 사람들에게까지 ‘어피치 덕후 에디터’라 불리지만 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덕질’의 대상은 단순 어피치가 아니라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어피치 인형 ‘핑영진’이다.이건 어릴 적 애완견 ‘미니’에게 느꼈던 모성 어린 애틋함과 비슷하다. 남자친구의 별명과 이름을 조합해 ‘분홍색 젊은 청바지’라는 뜻의 ‘Ping Young Jean’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그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인스타그램 계정(@pingyoungjean)까지 만들었다. 옷을 사 입히거나 산책을 나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뭐든 꾸준하면 된다고, 처음엔 돌아이 취급하던 에디터들조차 핑영진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하면서 종종 그의 안부를 묻는다. 하물며 라이언으로 활동 중인 옆자리 선배는 이젠 라이언 인형이 없으면 잠들기 힘들다고 한다. 여전히 엄마만은 “내가 결혼을 한다면 핑영진을 가족석에 앉혀도 되겠느냐”는 요청을 끝내 무시하고 있지만 말이다.아무리 사랑엔 이유가 없다지만 이 사랑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피치를 비롯한 카카오프렌즈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여느 캐릭터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애초에 그들은 이모티콘에서 출발했다. ‘#소통’이 키워드인 이 시대에 카카오프렌즈는 하나의 언어나 다름없다. 애초에 원형 없이, 어찌나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는지 그들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어피치 마우스패드를 사용 중인 H 선배는 “평소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애교를 얘들이 과하지 않게 대신 해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런 걸 내가 어떻게 하겠어?”라는 카톡과 함께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노란색 ‘무지’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나의 모든 만행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남자친구 역시 긍정적 해석을 남겼다. “솔직히 말하면 미쳤나 싶었는데 지금은 핑영진이 네 다른 인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어피치가 나 같고, 곰처럼 생긴 갈기 없는 수사자 ‘라이언’이 내 친구 같으며, 도시 개 ‘프로도’와 단발 고양이 ‘네오’가 우리 커플의 이야기 같다는 밀착형 공감이 단순히 귀엽다는 감탄 이상의 애정을 들끓게 만드는 것이다.게다가 카카오프렌즈에겐 깨알 같은 스토리가 있다. 오리 캐릭터 튜브가 작은 발 콤플렉스 때문에 큰 오리발을 착용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아프리카에서 도망친 라이언이 뭉툭한 꼬리를 가진 이유는? 꼬리가 길면 잡히기 때문이다. 이런 각각의 사연은 이모티콘과 절묘하게 이어져 알면 알수록 묘한 쾌감을 부른다.(튜브가 발길질할 때마다 오리발이 떨어져나가는 걸 생각해보자.) 디자인이나 굿즈의 완성도는 조악한 경우가 있을지언정 촘촘한 이야기로 쌓아 올린 세계관만은 가히 독보적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유저들이 서브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핑영진은 말할 것도 없고 튜브 마니아를 자처하는 한 친구는 ‘툽툽’이라는 자신만의 애칭을 붙였다. ‘후드라이언 덕심으로 대동단결’을 소개말로 내세운 인스타그램(@kakao_ryan)은 14만 명의 팔로어를 자랑하고(부럽다!) 어느 덕후는 카카오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면밀히 분석한 뒤 어피치가 과도한 솔로 활동을 벌인다면서 ‘어피치 왕따설’ 같은 흉흉한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어피치의 귀여움을 질투하지 말지어다.) 이런 유난까지는 아니더라도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나름의 해석을 더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나.오늘도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엔 여느 아이돌 콘서트 못지않게 팬들이 잔뜩 모여 있을 것이다. 단순 굿즈뿐만 아니라 그들의 돌잔치나 여행 사진을 붙여놓은 포토월이 있는가 하면 한쪽 벽에서는 각 캐릭터의 스페셜 영상이 흘러나오는데, 무더위와의 사투 끝에 입장한 이들은 불평보단 감탄을 연발하면서 카메라를 들이민다. 만약 진짜 카카오프렌즈가 이 엄청난 인기를 목격한다면 어떤 소감을 남길까? 어피치는 모르겠지만 앙칼지고 자기애 강한 ‘우리 영진이’라면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당연한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