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의 여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이경미 감독이 또 다시 이상하지만 강렬한 여자를 창조했다. | 이경미,비밀은없다,영화

벌써 8년 전 이야기가 됐지만,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 에서 ‘양미숙’은 좀처럼 잊지 힘든 여자였다. 조금만 흥분하면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하고 씩씩거리며 짝사랑하는 남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그녀는 실제로 옆에 있다면 무서울 것도 같지만 결국엔 사랑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여자다. 당시 양미숙을 연기한 배우 공효진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자신의 시뻘건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후일담도 있다. (하지만 양미숙이야말로 공효진만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 이후로 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고, 이경미 감독이 돌아왔다. 또 다시 이상하지만 강렬한 여자와 함께. 이경미 감독의 새로운 영화 에서 폭주하는 엄마 캐릭터 ‘연홍’을 연기한 건 배우 손예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배우 손예진은 완전히 재평가받고 있다.)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이며 광기 어린 모습으로 진실을 추적하는 여자.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갔지만 우리에게는 이 이상하고도 매혹적인 여자를 좀 더 탐구해 볼 이유가 있다.영화가 거의 극장에서 내린 상황에서 인터뷰를 청하는 것은 사실 드문 경우다. 그러나 의 경우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스포일러성 인터뷰를 나눌 수 있는 시점에 만나게 된 것도 좋다. 개봉 전이나 상영 중의 인터뷰에서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다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주의하시라는 말을 꼭 써달라.SNS에 이미 에 대한 ‘스포’는 차고 넘친다. 이 영화의 경우 극장에서 내린 후 더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겪고 있다. 본인의 트위터에 “지금 내 마음은 변색된 무른 바나나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 복잡미묘한 기분인가 보다. 개봉 후 첫 번째 주말이 지나고 두 번째 주말을 맞이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상영관이 없다는 사람들의 글을 보고 속상해서 한 얘기다.사실 이나 의 흥행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영화들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좋아할 관객이 그렇게 많을지 몰랐으니까. 그런 점에서 불균질한 에너지의 를 즐길 수 있는 관객 역시 많았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상황이 아쉽다. 제대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했어야 됐을지에 대해선 나도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 됐다. 그래도 대한극장에서 연장 상영을 해주고 있고, 아트나인에서도 다시 영화 상영을 시작한다. 극장에서 내린 이후에 인터뷰 요청도 더 많이 들어온다. 어제 보니 VOD 순위도 4위 정도 되더라. 이처럼 영화가 잘 안 되고 나서도 사람들이 봐주고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이어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니까, 아주 절망하진 않으려고 한다. 물론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것은 다음 작품까지 안고 가야 할 숙제가 되겠지만.의 예고편을 보고 와는 많이 다른 영화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에도 이경미의 인장은 단단히 박혀 있었다. 와 장르는 다르지만 역시 만든 사람의 취향과 색깔, 세계관, 인물에 대한 애정이 널뛰는 영화라 반가웠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인 반면 누군가에게는 싫어하는 이유겠지만 말이다. 결과물을 보면 남의 말을 하나도 안 들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친절하게 전달하고자 각고의 노력 끝에 최대한 상업적으로 만든 버전이다. 제작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게 “사람들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까? 이 의미가 전달이 되겠니?”였다. 그래서 “친절하게 하자”고 되뇌면서 편집 과정 마지막까지 고쳤다. 지금 나의 그릇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 조율한 것이 이번 작품이다. 는 어찌 보면 전작인 의 어떤 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를 찍을 때 마지막에서야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엄마’ 캐릭터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혼란 속에서도 최선을 취할 줄 아는, 놀라운 합리성과 이성을 가진 여자였고 그게?내 이상형이다. 의 ‘엄마’, 연홍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일 수 있다. “저 여자는 도대체 뭐냐?”라고 의문 부호를 붙이고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관객이 사건을 따라가기보다는 엄마의 감정을 추리하게 되기를, 또 여자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철저하게 고독하기를 바랐다.어떤 여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나?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여자들은 결국 욕망이 강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제반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캐릭터를 만들 때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똑똑하거나 멍청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는 선택의 문제이고, 결국 욕망이 강하고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만들게 된다. 는 모든 인물의?욕망이?드러났을 때 어떤 종말을 맞이하는지 보여주는 영화고. 사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캐릭터를 선호하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인물 군상을 헤아리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형이 있긴 하다.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 어쩌면 내 안에 의존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것과 싸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를 보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김밥’ 하나만 놓고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연홍에게 ‘요리’는 전형의 사회와 비전형의 여자 사이를 잇는 아슬아슬한 끈 같았다. 누군가는 처음에는 꼭꼭 싸매고 재료를 감추는 요리인 김밥을 싸던 연홍이 나중에는 한 상 떡 벌어지게 요리를 펼쳐놓는 것이 해방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영화 자체가 김밥 같다고 하더라. 본인이 좋아하는 재료만 넣고 꾹꾹 눌러 싼 김밥이랄까? 먹는 사람이 오이는 싫으니까 빼달라고 말해도 절대 빼주지 않는.(웃음) 나도 김밥을 좋아한다. 김밥에서 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서촌에 자주 가는 단골 김밥집이 있다. 아무래도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김밥을 사 가야겠다.(웃음)이경미의 영화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재료는 무엇인가? 우선 유머는 단무지 같은 거다. 어찌 됐든 있어야 한다. 점점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유머마저 없다면 살아가는 게 끔찍할 것 같다. 그리고 연민. 나에게는 연민이야말로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게 해주는 중요한 감정이다. 호기심에서 시작해도 결국 인물이나 사건이 갖고 있는 애처로운 감정이 가장 큰 동력이 된다. 의 경우, 모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연홍이라는 여자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아직 결혼을 안 했지만 주위에 아이를 가진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모성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만약 내가 엄마인데 모성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너무 공포스러울 것 같다. 나름의 애정 표현 방식과 각자의 선택이 있는 것인데 유독 모성애만 너무 엄격한 잣대로 평가 받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엄마들의 모습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동력이 됐다.이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더 재밌을 것 같다. 마치 탐정소설처럼 영화 곳곳에 단서를 숨겨놓았는데, 이 영화를 더 잘 즐기고 싶어하는 관객을 위해 힌트를 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앵글에 담기는 작은 소품 하나 하나에까지 영화적 의미와 단서를 담으려고 했는데, 이런 것들을 해석하고 찾아주는 분들이 많아서 좋았다. 예를 들어 오늘 트위터에 올라온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게 있다. 마지막 신에서 연홍이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데, 표준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줄 아는 여자가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 숨기고 있던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해방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나름대로 신경을 썼지만 아직 해석해주는 분을 만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꽃’이다. 영화 속에서 딸 민진이가 뮤지션 존 페이를 좋아하지 않나. 그것이 친구 미옥이와의 연결고리가 되고. 그런데 잠깐 나오는 존 페이 앨범에 빨간 찔레꽃 열매가 그려져 있다. 그래서 미옥이가 민진이의 시신이 발견된 자리에 찔레꽃 열매를 놔두는 것이다. 민진이가 존 페이의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엄마에게 있다.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고 그저 미장센으로만 보여주는 설정 중 하나는 엄마(연홍)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민진이의 방에 계속 꽃병이 있다거나, 집에 놓여 있는 1인용 소파가 꽃무늬 소파라거나. 그래서 엄마가 딸이 어디 갔을까를 생각하며 상심에 빠져 있을 때 꽃무늬 의자에 앉는 신이 있는 거다. 또한 연홍의 자동차를 보면 보닛에서 흔들리는 빨간 크리스털 꽃 장식도 있다.그러고 보니 딸의 장례식장에서 연홍이 입은 붉은 원피스에도 플라워 프린트가 있었던 것 같다. 맞다. 그런 식으로 엄마와 딸, 친구를 꽃으로 연결시키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붉은 원피스를 입은 것은 그 순간의 연홍이 가장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이 시나리오의 초고에 적혀 있던 제목은 다. ‘불량소녀’는 딸과 엄마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연홍은 보수적인 도시의 엄격한 관습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그것을 기점으로 똑똑해지기 시작한다. 비로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거기에서 어떤 쾌감이 느껴졌다.그때부터 연홍은 더 이상 엄마가 아니라 탐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웃음) 딸 민진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친구에 대해서 거짓말로 묘사를 할 때,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묘사하는 설정을 넣은 이유는 뭔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딸은 2년 전에 이미 부모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자신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엄마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겠지. 엄마가 불쌍하다거나, 엄마에게 비밀로 하고 나름의 복수를 해야 한다거나. 그 시간 동안 미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로 엄마에 대한 마음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모습을 끄집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역시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나는 그것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엄마에게 보내는 딸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자기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 줄 모르는 엄마에게, 당신이 본래 갖고 있던 활개 치는 본성을 떠올리라고 말이다. 딸이 의도적으로 그러한 메시지를 보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연홍이 그동안 숨겨왔던 어떤 것을 소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그나저나 영화 속의 두 소녀, 민진과 미옥이는 서로 닮기도 했지만 감독님과도 참 닮았다.(웃음) 본인과 똑같이 닮은 배우들을 어디에서 찾아낸 것인가? 캐스팅을 한 후 헤어 커트를 시켰더니 나와 너무 비슷하다는 얘기를 현장에서 많이 듣긴 했다.(웃음) 실제로는 하나도 안 닮았다. 아니, 나의 무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사실 는 영화를 본 이후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기기에 적합한 장르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논쟁적인 영화가 되었다. 신기한 것이 평론 안에서도, 일반 관객 안에서도 평이 극단적으로 나뉜다. 영화를 준비하며 이런 분위기를 예상했나? 아니,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몇 가지 논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의 스토리라인에 개연성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박찬욱 감독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은, 박찬욱표 영화라는 말. 세 번째로는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라는 비판도 있다. 불편하지 않다면 이에 대한 감독의 입장을 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지 않다. 우선 첫 번째, 스토리라인의 개연성이 없다고 느끼는 분들은 이렇게 접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영화 안에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엄마는, 정치인은, 혹은 소녀는 이래야 한다는 바깥 세계의 기준으로 접근을 하다 보면 영화의 이야기들이 개연성이 없어지고,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이 영화의 세계 안에서 인물들의 카오스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이 과잉이 아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정신 승리를 해온 아이들이 제 정신일 리가 없지 않나. 두 번째로 박찬욱 감독님의 영향에 대해서는, 감독님과의 인연이 오래되었고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교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과의 대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히 어떤 세계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완전히 다른 그 세계’가 바로 나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웃음) 한편으로는 영화를 만들다 보면 언젠간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따라 한다는 이야기와 맞닥뜨릴 거라고 생각했다. 양쪽 다 전형적이거나 친화적이지 않은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에.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무서워서 나의 이야기를 버릴 수는 없었다. 이걸 완성해야 앞으로 창작자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계속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 창작을 하는 사람이 자의식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만 과잉이라고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경우, 에너지를 폭발시켜서 집중력 있게 끌고 가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심리 상태와 이 영화의 언어가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파편적이고 분열적이고 신경질적인 과잉의 영화가 나온 것이다.영화라는 예술은 창작자가 개성을 잃어버리기에 너무 쉬운 산업 안에 있다. 라는 영화가 탄생한 것을 보며, 이 독특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 해왔을 전투를 상상해봤다. 지난 8년은 어떤 시간이었나? 너무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에너지도 많은데 그것을 조율하는 기술은 부족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잘 전달하려면 좋은 기술이 필요한데, 미숙한 상태에서 하고 싶은 것만 많았달까? 자기 검열도 심했다. 두 번째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한국 영화계의 분위기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 안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해답이 이번 영화다.이번 영화를 찍으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가? 이상하다는 말.(웃음)그럴 줄 알았다.(웃음) 뭐라고 항변했나? 인정에 호소했다. 이해는 안 되겠지만 일단 해줘, 라고.(웃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배우 손예진은 한 번도 이상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영화의 세계 안에 들어온 것 같았고, 들어온 후에는 그 안에서 자연스레 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