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환의 리얼리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임주환이 산뜻한 어조로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은 스타가 될 수 없을 것이고, 이건 겸손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그래서 임주환은 오래도록 유의미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 임주환,함부로 애틋하게,최지태

촬영 중간에 그런 말을 했다. “일 년여 전에 술을 끊었는데 자연스레 다시 마시게 됐다.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배우라는 직업과 음주의 연관관계는 뭔가? 영감이나 감성의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작품을 하지 않는 기간엔 시간 보내는 게 일이다. 늦잠 자고 운동하다가 밤이 되면 삼삼오오 모이는데, 자연히 술자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모델 활동할 때는 더했다. 패션쇼도 시즌이 있고 화보 촬영 역시 한 달에 2주 정도 촬영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나머지 2주 동안은 정말 백수나 다름없다. 예전에 압구정동 카페에 가면 브이넥 티셔츠에 보스턴 가방 들고 있는 키 큰 남자들은 죄다 모델이었다. 서너 시간씩 커피숍에 있다가 해 지면 술 마시러 가는 게 일상이었고. 그래도 요즘엔 좀 달라졌다. 한번 마시면 2~3일은 쉬고 폭음도 안 하고 있다.지난 9월 8일 드라마 가 종영했다. 사전제작 작품이었으니 적어도 5개월간은 ‘백수 생활’을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골프만 치고 있다. 잡생각 없이 시간 보내기엔 최고다. 이제부터 슬슬 다음 작품을 알아볼 생각이다. 감사하게도 섭외 요청이 들어오는데 아직 결정된 건 없다.2년 전 인터뷰로 만났을 때 “나는 작품을 고르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상황이 좀 변했나? 별로. 여전히 선택 받는 쪽에 가깝다.드라마 이후엔 좀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다. 시청률도 잘 나왔고 악귀에 빙의된 ‘최경장’ 역할로 호평을 받았으니까. 가끔 영화 시사회 현장을 가면 나는 그 배우들을 다 아는데 그분들은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뒤풀이 현장을 가도 뻘쭘한 입장이니, 그럴 때마다 아직 부족하다는 걸 실감한다. 영화계 쪽에선 의 ‘김영탁’을 많이 기억해준다. 5년 전 개봉한 작품인데도 틱 장애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같다. 그런데 ‘김영탁’이 나인 건 잘 알아채지 못한다. 배우의 대중적 인지도와 작품의 캐릭터가 겹쳐야 하는데 캐릭터만 분명하고 배우는 희미한 거다.배우와 캐릭터가 구분된다는 건 배우로선 무기일 수도 있다. 본래 도드라지기보단 작품에 녹아드는 연기를 하는 타입 아닌가. 습자지 쌓듯 차곡차곡 준비하는 편이긴 하다. 비슷한 캐릭터, 상황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공들이는 것. 그게 좋아서, 라기보다는 내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커리어에 있어서나, 연기에 있어서나 천천히 가는 게 적성에 맞는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다만 결과를 내기까지 오래 걸릴 뿐이다.가장 적성에 맞았던 역할은 무엇이었나? 의 최경장. 하는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 더욱 재미있었다. 자칫 한순간이라도 삐끗하면 다 무너져버리는 캐릭터였으니까. 악귀가 빙의된 두 얼굴의 살인마라니, 한 끗 차이로 유치해지거나 우스워지기 십상 아닌가. 예민한 캐릭터인 만큼 오히려 단순하게 접근했다. 평소에는 천사 같다가도 단순히 기분을 좀 상하게 했단 이유만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 감정과 표현이 천진한 아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감추거나 참는 법 없이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것처럼, 직감적이기 때문에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것처럼, 최경장은 가장 솔직하고 본능적인 악마인 거다. 생각해보면 후 가장 달라진 건 인지도가 아니라 이렇게 속과 겉이 다른 캐릭터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는 점이다.인지도만큼이나 큰 성취 아닌가. 글쎄, 좀 더 두고봐야 알 것 같다. 이게 내 무기라면 천천히 써야지, 단기간에 반복되면 금세 질리기 마련이다.처음 의 ‘최지태’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 고사했던 것도 이미지 소모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나? 그 역시 ‘노을(수지)’ 앞에선 ‘이현우’라는 가명을 쓰면서 키다리아저씨를 자처하지만 실은 원수의 아들인, 양면적 캐릭터였으니 말이다. 그런 건 아니고, 자신이 없었다. 같은 전작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경희 작가님은 인간의 감정을 깊고 드라마틱하게 풀어낸다. 에서도 정선경 선배님이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아들을 해하려고 하지 않나. 이렇게 감정의 극단을 보여줘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최지태’라는 인물은 아버지(유오성), 신준영(김우빈), 노을(수지), 모두의 비밀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고 그 관계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존재라 부담스럽기도 했고. 거기서 갈피를 못 잡거나 표현이 부족하면 캐릭터 간의 연관성, 이야기의 개연성이 모두 틀어질 테니 말이다.이경희 작가는 물론이고 배우 김우빈이 작가의 작업실 보드에 ‘형이 꼭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글까지 남기면서 당신을 설득한 이유 중 하나는 ‘최지태’와 실제 임주환이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런가? 표현이 과하지 않은 점은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최지태처럼 리액션이 크지 않고 조심스러운 편이다. 무슨 사건이 있으면 그 일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가장 리스크가 적은 답을 선택한다. 그래서 결정하기까지 좀 뜸을 들인다.최지태는 사랑에 있어서도 너무 생각이 많은 남자였다. 아마 삼각 멜로 라인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드라마 초반부 신준영 콘서트에서 최지태가 노을의 손을 놓았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 손을 신준영이 잡고 도망쳤으니까. 실제 당신이었어도 그랬을까? 노을의 손을 계속 잡고 있으면 정체가 탄로날 테고 다 망가져버리는 상황인데 별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라면 나 역시 혼자 괴로운 쪽을 선택했을 것 같다. 뭐, 후회는 좀 했겠지만.말론 브란도의 말을 좋아한다. “당신이 받는 급여 액수와 당신 재능의 크기를 혼동하지 마라.” 내겐 금전적인 의미라기 보단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나중에라도 절대 자만하지 말자고 되뇌곤 한다. 허세 부리면 나는 그 순간 바로 끝이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사랑에 냉소적인 타입인가? 예능 프로그램 에 출연해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데 평소 여자들에게도 냉정한 편이다”라고 말했던데. 그런 것 같다. 돌려 얘기하지도, 그걸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여자친구들이 섭섭해할 때가 좀 있었다. 예전에 여자친구가 클럽 가도 되냐고 묻기에 가라고 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더라. 여자친구가 클럽 간다는데 어떻게 보낼 수가 있냐고. 그럴 때 달래주기보단 딱 잘라 말하는 편이다. “가려고 물어본 거 아니야? 안 갈 생각이었으면 묻지도 않고 그냥 집에 갔겠지. 그런데 왜 물어봐? 왜 떠봐?” 애초에 클럽도 못 가게 할 만큼 신뢰가 없으면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혹여 클럽에서 마음에 드는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건데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실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 I love you. Your everything.’이라는 글을 올려서 연애 중인 줄 알았다. 해외 팬들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을 남겨주는 게 고마워서 남긴 멘트다. 일부러 인터넷에서 최대한 가장 많은 대륙이 나온 지구 사진을 찾아 포스팅하면서 말이다. 연애한 지도 오래됐지만, 어차피 공개연애 할 생각도 없다. 평범한 직업을 가진 분은 물론이고 같은 연예인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남자보다 여자 쪽 리스크가 더욱 큰 게 사실이다. 누구의 남자, 누구의 여자로 불리는 것도 싫다. 연애에 있어서는 점점 위축되는 것 같다.연애한 지 얼마나 됐나? 가끔 ‘썸’은 탔다.(웃음) 연예인이란 예민하게 경계를 둬야 하는 직업이고 연애는 경계를 허무는 일 아닌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연애까지는 넘어가지 못하고 ‘썸’에 머무르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이젠 ‘썸’이나 연애가 아니라 결혼에 대해서도 많이 물을 듯싶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 정말 그렇다. 그냥, 때가 되면 하겠지만 생각이 좀 많아진다. 나처럼 애매한 위치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일 년만 더 하면 뭐가 있겠지....’ 이러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게 아닐까.스스로 애매한 위치라고 단언하는 걸 보면 자기 자신에게 역시 냉정한 것 같다. 이성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 그중에서도 자기진단을 가장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조)인성이 형이 “넌 무서운 새끼야!” 그런다.(웃음) 그런데 애매한 게 사실 아닌가. 배우의 인지도를 1부터 100까지로 나눈다면 나는 한 60~70 사이에 머물러 있다. 50이 넘으면 쉬이 상위로 올라갈 수도 있을 텐데, 이 턱을 넘기가 힘들다.스스로 스타성이 없다고 생각하나?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스타가 되려면 벌써 됐겠지. 만 봐도 그렇다. 굉장한 기대작이었고 나한테도 좋은 기회였는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저조하지 않았나. 20대만 해도 욕심도 내고 괴로워하기도 했는데 10년을 버티다 보니 자연히 초연해졌다. 스타가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배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도 팬들은 아직 포기 못한 것 같다. “이제 좀 터지자! 제발 좀!”(웃음)스타가 아니라 배우로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스위치 턴-오프가 어렵다. 만약 오늘 열 장면을 촬영하고 그중 여덟 번째 즈음에 중요한 신이 있다면 앞의 일곱 개는 집중하기 힘들다. 신을 별개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 중요한 신이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일종의 버릇 같은 거다. 나 처럼 군대 가기 전에 출연했던 드라마는 일 년 이상 사전제작했던 작품이 많았다. 그 인물로 사는 기간이 길다 보니, 인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의식이 흘러갔는데 지금은 탁탁 감정 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다. 차츰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다.생각해보면 사극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출연 드라마 중 시청률 10%를 넘긴 유일한 작품인 도 사극이었고 팬들이 꼽은 ‘인생 캐릭터’ 역시 사극 의 ‘박규’ 아닌가. 벌써 7년 전 작품인데 아직까지도 ‘박규’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그걸 깨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다음은 사극을 고려 중이긴 하다. 는 고려시대였으니까 이왕이면 조선시대 극으로. 어쨌거나 ‘최지태’와 겹쳐지는 캐릭터는 아닐 거다.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 가 와 같은 광종 시대 4황자 ‘왕소’와 8황자 ‘왕욱’의 이야기인데, 혹시 모니터링 중인가? 챙겨 보고 있다. 꼭 같은 소재의 이야기라서, 혹은 나와 같은 ‘왕욱’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강하늘 씨 연기가 궁금해서 출연 작품은 관심 있게 찾아보는 편이다. 훗날 광종이 되는 ‘왕소’ 이준기 씨가 선이 굵고 확실한 연기를 한다면 강하늘 씨는 그와 대비되는 캐릭터인 만큼 살짝 뒤로 빠져서 단서를 남기는 정도로만 인물을 표현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캐릭터의 감정을 궁금하게 만들면서. 나 역시 그런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이렇게 정적이고 미스터리한 연기 톤이 시대극에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영상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코멘트로 말론 브란도의 말을 인용했다. “당신이 받는 급여 액수와 당신 재능의 크기를 혼동하지 마라.” 이 말을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적용하나? 금전적인 얘기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나중에라도 절대 자만하지 말자고 되뇐다. 허세 부리면 나는 그 순간 바로 끝이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https://instagram.com/p/BMNwRX6gj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