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Than Skin Deep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세 명의 작가가 레드 립스틱으로 얻은 자신감, 장미 꽃잎이 주는 즐거움, 곱슬머리로 자유를 만끽한 기쁨에 대해 얘기한다. | BEAUTY,뷰티스토리,즐거움,회상,talk

The Red Badge of Courage 가장 암울한 시기에 여자들은 립스틱을 바르는 것으로 기운을 되찾았다. 1945년 4월 영국 군대가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를 해방시킨 후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그 때 나치의 잔인함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건 먹을 음식과 입을 옷, 의약품이 아닌 립스틱이었다. “여자들은 립 튜브에 푹 빠졌다. 립스틱으로 잃어버린 개성을 찾은 그들은 더 이상 팔에 새겨진 번호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립스틱은 그들에게 존엄성을 찾아준 것이다.” 현재 왕립 전쟁 박물관에 소장된 영국 태생의 중령, 고닌의 일기 내용이다. 20세기 초 연극 무대에서 일상으로 영역을 넓히며 립스틱은 여성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립스틱은 기분을 복 돋아 주며 글래머러스한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자신감을 채워주는 최고의 도구가 됐다. 여기 대표적인 일화를 주목하자.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대공습이 있었을 때 화재를 감시하러 나간 여자들은 ‘용기를 복 돋아 주는 빨간 뱃지’의 의미로 레드 립스틱을 발랐다. 또 몇 달 전 유방 절제술을 받은 사촌 동생은 마취에서 깨어나자 간호사로부터 “부인, 용기를 가지세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파우더 콤팩트와 립스틱을 선물 받기도. 립스틱은 뷰티 아이템 그 이상의 힘을 지닌 게 분명하다.의 저자이자 소설가인 도디 스미스는 ‘새로 산 드레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위대한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가의 옷을 구입하기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때도 있다. 그 땐 더 작은 변화로 기쁨을 찾아야 한다. 경기 불화의 경제 지표 중 하나로 알려진 립스틱 지수(Lipstick Index/레오나드 로더가 만든 립스틱 지수는 경기가 불황일 때 립스틱 판매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을 일컫는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합리적인 가격대에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립스틱을 선택한다. (에스티 로더는 9/11 사태 이후 립스틱의 판매가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나의 어머니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구입한 라이트 블루 아이섀도 팔레트를 임종 때까지 고수했고 무엇보다 반짝이는 핑크색 립스틱 없인 외출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메이크업 제품을 종종 구경했고 자연스레 13살 이후부터 내가 가진 립스틱 컬렉션이 다채로워졌다. 울워스 쇼핑몰에서 리멜의 립스틱을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비바(Biba)의 퍼플 립스틱을 거쳐 현재는 샤넬의 ‘루즈 코코 마드모아젤( 8년 전 메이크업 아티스트 매리 그린웰이 내게 추천한 핑크 베이지 컬러 립스틱은 가장 최근에 구입했다)’과 퀸(Queen)의 ‘세인트 인 딥 레드 립스틱(뱀파이어처럼 보이지 않는 유일한 레드 컬러 립스틱)에 정착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메이크업 파우치 안에는 가리고, 고치고, 속이기 위한 제품이 들어있다. 창백한 피부에 가득 박힌 주근깨와 뭉툭한 눈썹을 커버하기 위한 파운데이션과 블러셔, 마스카라 등등. 하지만 립스틱을 집어들 때면 완전히 다른 의식 세계가 펼쳐진다. 그건 눈속임이나 수정 행위가 아닌 정체성이니까.입술의 컬러는 말하고 들을 권리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립 컬러마다 담긴 의미도 다르다. 연한 베이지 컬러가 유행이던 시절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발언권이 적었고 장식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베티 데이비스와 조앤 크로포드가 활동하던 시절과 1980년대의 파워 드레싱 시대를 살펴보면 여자들의 입술은 그윽한 레드로 물들었다. 여자들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에서 벗어나 강인한 여전사로 받아들여진 것. 계절에 따라 파운데이션을 고르고 유행에 따라 아이섀도 컬러를 선택하지만 여전히 화장대 서랍은 립스틱으로 가득하다. 춥고 비 내리는 아침, 기운을 복 돋아 주는 건 립스틱 하나로 충분하다. 가장 불확실한 순간, 립스틱을 바를 때 느껴지는 단순한 행복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The Memory of Roses떨어진 꽃잎에 순수함과 희망이 함께 뒤섞였다.어머니는 세 개로 구성된 멜라민 소재의 믹싱볼 세트를 갖고 있었다. 마치 마트료시카(다양한 사이즈로 이뤄진 러시아 인형)처럼 서로 포개어진 믹싱볼에는 각각 달걀 노른자 모양의 점점 작아지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 볼들은 어린 시절 내내 함께 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초콜릿 트러플을 만들 때 가장 큰 볼을 애용했고, 중간 볼은 언니가 커피 월넛 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했다. 언니가 케이크를 굽고 난 후 볼에 남은 반죽을 내게 주면 나는 날 것 상태의 설탕, 버터, 달걀 덩어리를 입 속에 털어 넣었다. 당시 살모넬라 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무지한 때였기에 가능했을 지도!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제일 작은 믹싱볼이었다. 그것 만은 나의 것이라 여겼다. 나 역시 가족 중 막내라는 사실에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매년 봄이 돌아오면 장미 꽃이 피었고 나는 정원으로 달려가 향수를 만들기 위해 꽃잎을 주워 나만의 믹싱볼에 담았다. 향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은 비가 갠 직후로 잔디에 촉촉한 햇빛이 내리쬐며 땅에서 젖은 흙 내음이 살포시 퍼질 때다. 나는 잔디에 떨어진 발그스름한 핑크 빛 꽃잎을 줍는 데 열중했다. 투명한 핑크 빛을 띄던 꽃잎들은 며칠 묵은 사탕처럼 연약했다. 덤불 속에서 자라고 있는 장미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양쪽을 살피지 않고 길을 건너거나 학교 문 밖에서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처럼 그건 잘못된 일이었으니까.볼에 꽃 잎이 어느 정도 차면 정확한 분량의 수돗물을 붓는다. 너무 물이 많으면 꽃잎이 섬세한 향을 잃어버리고 반대로 물이 넘치면 향수(할머니의 화장대 위에 놓인 샤넬의 ‘마드모아젤’, 랑콤의 ‘트레조’ 같은 이국적인 단어가 적힌 유리병)’를 흉내 낼 수 없다. 나무 숟가락으로 장미꽃잎을 두들긴 다음 볼의 옆면에 대고 이를 으깼다. 실망스러운 반죽만 남을 때까지 꽃의 수분을 짜냈다. 꽃잎은 점점 핑크 빛을 잃었고 갈색으로 변했다. 이걸 볼 때마다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파괴한다는 생각에 항상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분 동안 두들기고 나면 장미 꽃잎의 순수한 에센스만 남기 때문에 그럴만한 가치는 분명 있었다. 에센스는 신선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홈메이드 향수를 손목에 문질렀을 때 코 끝에 사무치던 빗물과 햇빛의 향이 났다. 믹싱볼은 향을 만드는 영광스러운 고치(곤충의 유충이 번데기로 변할 때 자신의 분비물로 만든 껍데기)였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미 향이 날아가버린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내가 만든 향수는 몇 초 이상 지속되는 법이 없었다. 거의 만들어지자마자 향은 사라졌다.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장미 꽃잎을 믹싱볼에 계속 주워담았고 향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줄 마법의 공식을 찾길 희망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향기는 마치 감정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법이 없으니까.한참이 지나서야 믹싱볼은 다시 찬장 속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장미 꽃잎들은 잔디 위에 흩어진 채로 남았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시중에 판매하는 향수 중 어린 시절 추억 속 정원으로 나를 데려다 줄 향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십대 시절 우연히 바디샵의 ‘티 로즈 퍼퓸’을 발견했지만 피부에 닿은 그 향은 불행히도 몇 분밖에 머물지 못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 친구로부터 샤넬의 ‘코코 마드모아젤’ 향수 한 병을 선물 받았다. 핑크 색이었지만 그 향수는 장미 향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믹싱볼에 부서졌던 꽃잎을 상기시켜주는 그만의 특별함은 분명 있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향수를 사용한다. 비가 내려 한껏 촉촉해진 꽃들이 만개한 런던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내 팔목에 뿌린 향은 그 장미 향과 어우러진다. 그 순간 나는 희망과 순수함이 가득했던 잔디밭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아름다운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길 바랬던 간절함과 함께.Wave Power거친 곱슬머리에 자유를 허하는 것에 대한 기쁨.내게 있어 두려운 뷰티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그건 평범한 머리 빗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빗을 구입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다. 우연히 라도 빗을 보게 되면 나는 불안해지고 등골은 오싹해진다. 아침과 저녁 각각 100번 정도는 머리를 빗어야 한다고 믿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이런 관할 속에서 늘 발버둥쳤고 소리를 질러댔다. 내 머리카락은 1년365일 극도로 곱슬거렸다. 두피에서 사방팔방으로 머리카락이 자라났고 꼬불꼬불하거나 동그랗게 말렸다. 서로 엉키거나 스스로 감겨 나선형 고리를 만들었다. 가끔 머리 속에서 물건들이 사라지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펜 뚜껑, 헤어핀, 귀고리도 있었다. 마치 그물망처럼 내 머리카락은 나뭇잎, 풀잎, 꽃잎, 보푸라기 등을 잔뜩 끌어 모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인사를 할 때 내가 볼에 키스라도 할라치면 그들 입 속으로 내 머리카락이 들어가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내 머리카락은 자신만의 법칙을 갖고 있어 다루기 힘들다. 어떤 날은 말을 잘 듣다가도 다음 날은 한없이 부스스하다. “원래 곱슬머리에요?” 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어 본 질문이다. 어렸을 땐 빛 바랜 금발 머리를 일종의 미친 과학자처럼 열심히 빗었다. 두피에 닿을 정도로 짧게 커트도 했고 비대칭으로 자르기도 했으며 턱 선까지 모양을 다듬어도 봤다. 물론 등 중간 정도까지 기르기도 했다. 모든 걸 경험하고 난 20대가 되어서야 난 내 머리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심각한 곱슬이라면 수분의 중요성은 귀에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머리카락에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수분을 공급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두피 속 모낭의 형태가 타원형으로 바뀌는 순간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해진다. 불행히도 이는 피지를 분비하는 샘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발이 건조해지면 노파로 전락하는 건 한 순간이다. 나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곱슬 관련 헤어 제품을 거의 다 사용해봤다. 평생에 걸친 연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머리를 감지 말 것. 헤어 드라이기는 피할 것 그리고 머리에 열을 가하지 않는 헤어 스타일리스트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거다. 지금부터 절친이 되어야 하는 건 컨디셔너. 계면활성제는 피해야 하는 적이니, 제품을 구입할 땐 성분을 꼼꼼히 체크할 것. 사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샴푸와 컨디셔너에는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는데(‘친환경(green)’으로 표기된 제품들조차) 이는 곱슬머리의 수분을 닦아낸다. 웹사이트 펑키솝샵(www.funkysoapshop.com)에 접속해 당장 아르간 오일& 일랑 일랑 컨디셔너 한 개, 다섯 개를 주문해라. 여기서 판매하는 샴푸 바로 머리를 감고 컨디셔너를 발라 10분 후에 헹궈내면 어느 새 부스스함은 사라지고 머리카락은 한 없이 부드러워져 관리가 쉬워질 거다. 곱슬머리의 반항기가 끝이 날 것을 약속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머리를 기르고 있는데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은 잡아당기면 견갑골까지 내려온다. 내겐 두 딸이 있다. 한 명은 금발이고 다른 한 명은 짙은 색이다. 톤은 다르지만 둘 다 극도의 곱슬기가 다분하다. 나는 내 딸들이 곱슬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성장하길 바란다. 곱슬머리를 구속하지 않고 즐기며 마음대로 한 없이 내버려 두길 원한다. 물론 머리 빗은 절대 쓰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