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린 칼송이 말하는 삶과 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철학적이고도 시적인 춤으로 현대무용사의 누벨 당스를 이끈 무용가 카롤린 칼송이 말하는 삶과 예술에 대하여. | 카롤린 칼송,무용

세계 무용가 인명사전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알파벳 순서가 아닌 춤이 관객에게 미친 파장의 크기를 기준으로 그 사전을 편찬한다면 가장 최전선에 기록되어야 할 무용가가 있다. 8살 처음으로 춤을 시작해 7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살아 있음을 몸과 에너지로 증명해내는 무용가 카롤린 칼송(Carolyn Carlson). 그는 춤추는 유목민으로 불린다. 미국에서 태어나 뉴욕, 프랑스, 핀란드 등 전 세계를 돌며 춤으로 재현한 자신만의 소우주를 여전히 여행 중이다. 지난 2011년에 국내에서도 공연된 는 그의 대표작이다. 1983년 베니스에 머물며 만든 카롤린 칼송의 이 작품은 10년 이상 전 세계를 돌며 관객과 만났다. 그의 작품은 철학과 영혼에 대한 깊은 탐구의 결과물이다. 칼송의 춤은 마치 연극과도 같은 극적인 무대 장치와 시각적인 요소로 안무를 보다 고차원적인 단계로 끌어올렸다. 누벨 당스의 최전선에 그가 있다. 카롤린 칼송은 1980년 당시 침체되어 있던 프랑스 현대무용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데 공헌했다.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안무가인 그녀에게 수여함으로써, 카롤린 칼송의 이름 앞에 ‘컨템퍼러리 댄스의 여제’ ‘살아 있는 보석’이란 수식어가 의심의 여지 없이 따라 붙는다. 인생의 절정기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내 인생 전부”라고 대답할 만큼 그의 무용 스펙트럼에는 언제나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일어난다. 2011년 초연된 는 16명의 무용가와 함께 20마리의 말들이 드넓은 무대를 휘젓는 파격적인 공연 중 하나였다. 커다란 나무처럼 고고하게 솟은 긴 팔과 다리, 우아한 금발로 어두운 무대 위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그의 춤을 곧 다시 서울에서 볼 수 있다. 오는 9월 28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세 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의 막이 오른다.https://www.youtube.com/watch?v=7oarJTATKXY이번에 서울에서 공연될 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춤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처음 그의 그림을 보고 어떤 착상이 떠올랐나?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명상적이고 금욕적이며 통찰력이 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스코의 그림은 단순히 색으로 형태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신비로운 경험과 소통하는 것이다. 직사각형으로 그려진 그의 후기 작품들은 영혼을 새롭게 보는 방식이며 보는 이들을 더 높은 정신적인 세계로 감동시킨다. 그의 작품 ‘무제(Black, Red Over Black On Red)’를 바탕으로 안무를 만들었다. 나는 로스코가 삶의 여정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인내심을 가진 예술가라는 측면에 주목했다. 춤이 그러하듯 그의 작품이 로스코를 대변해준다. 춤으로부터 색채가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이 경험한 것이다! 나는 직관을 자극하는 상징주의 화가들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르네 마그리트, 니콜라 드 스타엘과 같은 작가들. 최근에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전시도 정말 놀라웠다.당신의 춤은 한 편의 ‘시각적인 시’로 표현되곤 한다. 그 어떤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관객에게 시를 들려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추는 춤의 근원이다. 나의 춤은 철학과 영성으로부터 아주 강한 영향을 받는다. 춤은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춤을 출 때 그 어떤 이야기로 말하지 않고 잠재적인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나의 작품은 관객이 본 것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모든 춤은 그 자체로 시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다. 내가 삶으로부터 느낀 사랑과 영감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 춤을 통해 진화하는 인간들에게 통찰력을 전해주고 싶다.은 자연에서 모티프를 얻은 춤인가? 바람의 힘, 그리고 존재의 근원이 되는 호흡에 대해 생각을 했다. 바람은 부드럽지도, 극적이지도, 세지도 않게 지속성 없이 불어온다. 모든 인간은 호흡을 통해 바람을 만들어내고 바람 여인(Wind Woman)은 모든 이들이 대지의 호흡과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자연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로스코도 새를 사랑했고 하늘에서 보이는 신비한 형체에 매료되곤 했다. 그는 이것을 색채와 흑백으로 바꾸어서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나 역시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자주 얻는다. 휴가 때마다 형제들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난다. 대서양으로 돌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물 역시 위대한 영감이니까! 동양의 무예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통일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나는 기공도 연습한 다. 다른 나라의 각양각색 춤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파리를 사랑하며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다. 나에게 파리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곳이다. 여기서 경력이 시작되기도 했고 더불어 가족도 생겼다. 파리에는 아름다운 장소가 참 많다. 특히 페르 라셰즈 묘지를 좋아하는데, 그 건너편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우리 집 창문에서 가지런히 정렬된 나무와 숲속 묘비 사이사이의 골목을 바라보곤 했다. 쉬고 있는 영혼들의 신비한 기운을 좋아한다. 내 영감의 근원지라고 단언할 수 있다. 파리 교외 지역인 뱅센느에 있는 카르투슈리(Cartoucherie),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인 팔레 가르니에, 벨빌, 그랑팔레, 생루이 섬도 내가 사랑하는 곳이다.최근에 무용에 관한 영화를 직접 연출하고 있다고 들었다. 작업하고 있는 이란 영화는 칼 융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의 원형을 발견해내는 영적인 가치, 영혼의 변형, 자아의 진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형이상학적인 심리분석 등에 관한 그의 연구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무대 위의 무용가들은 언제나 같은 크기의 박스 안에 서 있지만 영화에서는 클로즈 샷과 카메라 회전 기능을 통해 사람을 다채롭게 촬영한다. 영화는 빛에서 출발하여 높은 퀄리티의 환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흥미로운 장르다.요즘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 오늘은 존 버거의 와 이탈로 칼비노의 글을 읽었다. 대학교 시절 훌륭한 철학자들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가장 좋아하는 학자는 쇼펜하우어, 니체, 가스통 바슐라르이다. 나는 시를 사랑한다. 이름을 모두 대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시인이 많지만 릴케, 보들레르, 에우제니오 몬탈레, 애니 딜라드를 좋아한다. 그리고 밥 딜런의 노래도! 나는 줄곧 춤추는 시인들을 찾아왔다. 무용가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발견했다. 무용가의 존재, 그들의 카리스마, 그리고 춤추는 사람들의 내면의 광기에 늘 관심이 간다. 좋은 무용가가 되기 위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이다.당신이 정의 내리는 ‘춤’이란? 춤은 존재하는 상태이다. 춤은 움직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에너지가 무대에서 관객에게 전달되는 방향을 따라 춤을 춘다. 삶은 순간을 위해 살아야 하며, 나에게는 그것이 매력적이다. 춤은 순간 속에 살고 멸한다. 춤은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대 위의 무용가들에게서는 진실이 보이는데, 그것은 무용가들이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는 무용가들에게는 가면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무용가들은 이러한 인식의 열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무용 작업에 있어서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것이 바로 춤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