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과 함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펜과 기타, 몸과 카메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이랑이란 사람을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다. | 인터뷰,이랑

성경 민수기 11장 23절을 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그 구절에 대해 이랑이 트위터(@2lang2)에 이렇게 답했다. “왜 반말이냐?” 이랑은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항상 풍자하고 싶은 마음이 많아요. 뭐든 보면 비꼬고 싶어져요. 장난치고 싶다고 그래야 하나? 그래야 새로운 시야로 볼 수 있는데.(웃음)” 등이 브이(V) 모양으로 깊게 파인 롱 드레스를 입고 몸과 표정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화보를 찍었던 그날도 이랑은 인스타그램(@langleeschool)에 B컷 사진과 함께 이런 말을 남겼다. “어깨 결림, 팔 저림 화보를 찍었다.” 평소 이랑의 SNS를 즐겨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웃고 싶어서다. 그의 곁엔 고양이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는 준이치(@junichixjunichi)라는 인격이 함께 산다.(믿지 못하겠다면 준이치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시라.) 거기도 웃음 지뢰밭이다. 누르는 족족 터진다.https://www.instagram.com/p/BCkY4kihVJ4/?taken-by=junichixjunichi이랑이 그린 역시 침대에 누워 낄낄거리며 뒹굴기 좋은 만화책이다. 이랑이 연출한 단편은 적나라하게 웃기다. , , 시리즈인 ‘게이 시인 시집 제목 정하기’ ‘60체질 감별하기’ 등 제목에서부터 실소가 새어 나온다.(이랑이 만든 영화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윤성호 감독은 이랑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랑 씨는 솔직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걸로 상위 0.1% 안에 드는 것 같아요.” 이랑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 나 지금까지 되게 숨기면서 하고 싶은 말 하나도 안 한 건데....” 이쯤 되면 도대체 이랑은 누구인가? 궁금할 거다. 만화가, 영화감독, 싱어송라이터, 끊임없이 무언가 만드는 사람. 그가 만드는 건 두 갈래로 나뉜다. 상업적이거나 개인적이거나. 얼마 전 실시간 검색어를 달궜던 웹드라마 이 전자라면 ‘신의 놀이’ 뮤직비디오가 후자일 거다. 이랑은 2년 전부터 20명의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이 일하는 동작과 모습을 마임으로 재현한 것을 카메라에 수집했다. 베를 짜는 사람, 바느질 하는 사람,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 가구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의 동작을 바탕으로 안무가와 함께 춤을 만들었다.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동작은 익숙해지는데 더 늙어 있고 일을 많이 해서 몸은 변형되고 아프고 결국 죽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https://www.youtube.com/watch?v=BsLbW7uUQOQ이랑은 얼마 전 2집 를 4년 만에 내놓았다. 죽음에 관한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듣다 보면 때때로 눈물이 뚜르르 흐르기도 한다. “30대가 되니까 주변에 점점 죽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아져요. 사고로 죽는다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요. 울면서 노래를 만들 때도 많아요. 슬픈 이야기를 덤덤하게 할수록 듣는 사람이 더 슬픈 거 같아요. 영화를 찍을 때도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사람을 찍으면 생각보다 슬프지 않은데 울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찍으면 그게 사람 마음을 슬프게 만들어요. 다들 알잖아요, 얼마나 슬픈지를.” 2집 앨범에 수록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다양한 텍스트로 읽히는 곡이다. 이랑은 지난 6월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집회에서 이 노래를 처음으로 불렀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가 여자애를 괴롭히면 좋아해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귀엽게 봐달라고 하잖아요.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 같아요. 저는 드라마가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남자 주인공이 화가 나서 여자의 팔을 세게 잡는다든지 옆에 있는 물건을 부수는 장면이 나오면 아예 안 봐요.” 같은 달 다른 거리에서도 이랑을 목격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현장. 가면에 가까운 두꺼운 화장을 장착하고 속이 훤히 보이는 망사 옷을 입은 채 머리에 장미를 두르고 친구들과 거리를 활보하던 이자벨(이랑의 드래그 퀸 네임). “친구 한 명이 드래그 퀸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혼자 하면 부끄러우니까 대여섯 명이 모이게 됐죠. 같이 모여서 화장을 하고 수다를 떨고 얼굴이 변하는 걸 보는데, 완전 힐링 캠프였어요.(웃음) 자기가 만든 분신을 3인칭 시점으로 연기하는 것에 대한 희열이 있더라고요. 요즘엔 드래그 퀸 자체를 예술의 형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이랑은 영화를 전공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본 게 결정적이었다. “연기하는 걸 좋아해서 대본을 쓸 때도 연기하면서 써요. 은 대본만 2년 동안 썼어요. 6편짜리 시리즈인데 돈 받고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죠. 게이 혐오 문제나 종교 이슈도 있고 예술 하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구는 내용도 있어요. 집단이 모였을 때 지성이 더욱 발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집단 안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바보 같은 결정을 하지 않나요?” 사실 그간 이랑을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다. 그의 SNS를 들락날락했던 이유는 그가 하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들이 궁금해서였다. 한밤중에 아직 공사 중인 한강 다리를 혼자서 올라가봤다며 천진하게 말하는 이 발칙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컴컴하고 높은 곳도 일단은 그냥 올라가봐요. 올라가면 처음엔 진짜 무섭거든요.(웃음) 올라가서 왜 무서운지를 계속 생각해보는 거예요. 거기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무서워서 내려갈 수가 없었거든요. 30분 이상 앉아 있었더니 그 높이에 약간은 안정감을 느껴서 내려올 때 하나도 안 무섭더라고요.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가 막상 가보면 ‘별거 아니네’ 하며 마음이 훌훌 가벼워지는 그런 거 아닐까요?” 이랑은 정말로 신의 놀이를 하고 있는 걸까? 그 놀이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