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미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일 년 전과 다름없이 여름 한 계절을 독일에서 보냈다.나는 왜 자꾸만 독일로 가는 걸까? 여전히 그 물음은 미답인채로 남아 있지만, 그 실마리를 찾으려는 여정 속엔 무수히 많은 사유와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나는 그것을 너무 커다란 덩어리로서 ‘독일미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 여행,아트,독일

MUNICH뮌헨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아직 여름이 오기 전이다. 여러 겹으로 흐린 하늘과 6월의 공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차가운 기운에 몸이 웅크려지는 날씨. 이런 상황이 며칠째 이어지니, 상상했던 공원 피크닉이나 한낮의 비어가르텐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다행히 탁월한 미의식을 지녔던 비텔스바흐 왕가의 7백 년 역사가 서린 이곳엔 풍요로운 예술적 유산이 펼쳐져 있다. 뮤지엄이라는 말 대신 ‘그림수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피나코테크(Pinakothek)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뮌헨만의 정체성일지 모른다. 소장품의 연대별로 알테(Alte), 노이에(Neue), 모데른(Moderne)으로 구분되는 건물들은 도심 중앙에 서로 이웃하고 있다. 알테 피나코테크에 가면 예수와 같은 얼굴로 자신의 초자아를 드러낸 뒤러의 ‘모피를 입은 자화상’을 볼 수 있고, 노이에 피나코테크에는 독일 근대미술과 프랑스 인상주의와 상징주의로 가득하다. 야수파와 다리파를 지나 안젤름 키퍼와 게오르그 바젤리츠까지 이어주던 모데른 피나코테크에서는 영속적인 쓰임이 보장되는 50~60년 전의 혁신적인 모던 디자인 가구까지 훑어볼 수 있다. 사이 톰블리의 전 생애에 걸친 리듬과 색채의 족적이 가히 환상적인 브란트호르스트(Brandhorst)는 또 어떠한가. 언제 어디에서든 빛나는 예술적 경험이 가능한 좌표에 머문다는 것은 “오후엔 뭘 할까?” “음, 톰블리의 레판토 연작이 보고 싶어.” 같은 대화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뮤지엄 입구에 서성이며 “문화병 환자가 된 것 같다”는 서늘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과거의 유산을 탐색하는 그 수고로움은 자의식을 충족시키는 명쾌한 여행의 명분이 된다.여전히 ‘바이에른’이라는 말을 가장 보편적인 형용사처럼 즐겨 사용하며 과거 고유한 하나의 나라였음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긍정적이고 유연한 지역색을 본다.매일 아침, 독일식 아침을 먹는 일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뮌헨의 모든 레스토랑은 바바리안(Bavarian) 스타일 메뉴를 자랑한다. 따듯한 물이 담긴 뚝배기 같은 그릇에 둥둥 띄워 내주는 하얀색 삶은 소시지가 바이에른식 아침식사의 핵심이다. 말캉한 소시지 한 조각을 겨자에 살짝 찍어, 브로첸이나 프레츨과 함께 씹어 먹는 맛이란. 따끈하고 짭짤한 그 맛은 빵 조각만으로는 속이 허전한 여행자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여전히 ‘바이에른’이라는 말을 가장 보편적인 형용사처럼 즐겨 사용하며 과거 고유한 하나의 나라였음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긍정적이고 유연한 지역색을 본다. 풍요로운 유산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들의 땅에서 난 재료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맥주를 자부하는 남독일 사람들의 면면은 유쾌한 소박함으로 가득했다.두툼한 회색빛 하늘을 비집고 햇살이 평평한 도시의 초록을 탐스럽게 비추는 시간이 빈번히 길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호숫가로 가기로 했다. 그 길이가 20km가 넘는,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는 슈탄베르거(Starnberger) 호수는 뮌헨 남부에 있다. 뮌헨역에서 지방 열차로 30분이면 도착하지만, 열차를 타고 더 내려가면 칸딘스키와 그의 예술적 연인 가브리엘 뮌터가 함께 살았던 마을 무르나우(Murnau)까지도 갈 수 있다. 유겐트스틸이 태동하고, 뮌헨이 모던 도시의 4인방이던 시절. 그리고 회화가 추상으로 치닫던 어지러운 시절에 이 지역 호숫가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자 도시를 등진 예술가들의 초월적 영역이었다. 호숫가의 작은 호텔은 유람선 선착장에 면해 있었다. 육중한 배가 물길을 조용히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으로 갈수록 하늘과 산과 호수의 레이어가 오묘한 블루로 뒤섞여갔다. 천장과 벽, 침대와 옷장이 모두 블루 일색인 연극적인 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의 감도는 더욱 깊고도 진했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 1층 테라스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슈니첼과 맥주 아이너를 주문했다. 대부분 투숙객으로 보이는 레스토랑의 손님들은 모두 시선을 호숫가에 둔 채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식을 음미하고 있었다. 함께 있으나 각자의 순간에 매몰된 듯한 그 풍경 너머로 밤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야흐로 여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LEIPZIG작센으로 가는 길, 에어푸르트와 풀다를 지나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그 옛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루트를 지나온 셈이다. 수많은 노선의 트람들이 뒤섞인 역 앞의 풍경 뒤로 무채색의 건조한 건물들, 가장 화려했을 아스토리아 호텔은 영업을 중단한 채 온기 없이 방치 중이다. 동독 시절을 겪은 도시의 흔적을 보니, ‘라이프치히 화가들’이라는 또 하나의 시그너처가 떠오르기도 한다. 페인팅과 라이프치히, 어쩌면 가장 강렬한 이 첫인상이 이곳에서의 내 시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트람을 타고 예약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갔다. 건물 앞마당, 녹슨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 밑에서 열쇠를 찾아냈다.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는 1백 년쯤 된 건물의 도도함, 별수 없이 5층까지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짐과 함께 올라가 천국에 이른 듯 문을 열었다. 비스듬히 세워진 조형적인 책장과 커다란 드로잉, 벽지가 뜯긴 거친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회색 벽, 천장에 매달린 빈티지 조명.... 모든 디테일이 매혹적인 집이었다. 아무런 기능 없이 바닥에 놓인 둥근 조형물, 벽에 붙은 작은 이미지 조각들, 욕실 문에 걸어둔 빳빳한 오리엔탈 풍 로브, 1970년대식 정사각형 선풍기까지 하나하나의 놓임과 구성이 일면컨셉추얼하게까지 느껴졌다. 책장에 꽂힌 에일린 그레이, 아트 나우, 모더니즘 페인팅 같은 책들로 미루어 집주인 엘렌은 아마 이 시대를 고분군투하는 젊은 아티스트가 아닐까 짐작도 해보았다. 값비싸고 반짝이는 건 하나도 없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주인이 드러나는 그런 집을 이렇듯 낱낱이 들여다보는 건 나 같은 사람에겐 가장 흥미로운 일이다. 반쯤 허물어진 건물들이 보이는 부엌에 앉아 물을 올렸다. 그 어느 곳의 식탁에서 이런 멜랑콜리하고 서늘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을까? 뜨거운 다즐링 한 잔이 온기와 피로를 동시에 몰고 오는 것 같았다. 아티스틱한 감성이 가득한 집에서 묵어서일까?구동독 시절의 고립 속에서 강조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그 안에서 함께 파생한 회화적인 어떤 것과 도안적인 요소들, 통독 이후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감각을 자극하는 부조리한 풍경들이 결합해 전무후무한 ‘그들의 예술’을 만들어간다.이른 아침부터 뮤지엄을 서성인다. 에로티시즘과 성도착, 죽음의 주제에 사로잡혔던 막스 클링거의 몽환적인 그림들, 20세기 인간 존재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막스 베크만. 모두 라이프치히 출신인 그들의 수수께끼적인 면모는 현대의 회화들과도 맞닿아 있는 듯했다. 마티아스 바이셔의 단절과 모순의 거주 공간, 폐허가 된 공장과 군사시설에서 발현한 네오 라우흐의 복잡한 세계는 지금 당장 건물 밖으로 나가면 마주치는 도시 풍경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구동독 시절의 고립 속에서 강조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그 안에서 함께 파생한 회화적인 어떤 것과 도안적인 요소들, 통독 이후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감각을 자극하는 부조리한 풍경들이 결합해 전무후무한 ‘그들의 예술’을 만들어간다.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모든 디자인적인, 공간적인 혹은 회화의 장면들은 단순한 고유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라이프치히의 가장 큰 매력이란 ‘아직 매만져지지 않은’이라고 말한 어느 아티스트의 표현처럼, 매만져지지 않은 무엇이 예술을 견인하는 도시는 어떤 면에서 음울한 유토피아 같기도 하다.BERLIN라이프치히가 특유의 멜랑콜리로 도시를 서술하기 시작했다면, 베를린은 여전히 매력적인 (한물갔다는 자조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들의 은신처다. 지난 몇 달간 서울에서 접한 ‘누군가 베를린으로 떠났다’는 소식만도 대여섯 개쯤 된다. 디자이너로 4년째 베를린에 살고 있는 내 친구는 여전히 이 도시를 찬미하는 뉘앙스로 지내고 있으며, 8년 넘게 베를린을 거점으로 살고 있는 아티스트는 이곳을 떠나 사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며 서울행을 갈등 중이다. 도시 베를린의 이 거대하고 관대한 수용성, 가끔 그것이 미스터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중앙역에 내리니 새로운 활기가 가물거린다. 많은 관광객과 많은 베를리너 사이에서 미처 잊고 있었던 여름의 냄새가 다가왔다. 그 순간,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서머 라이프’를 보내야 한다는 본능적인 다짐이 앞선다. 가장 논쟁적이라 평가되는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 돌아온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그리고 자기 사색적인 윌리엄 켄트리지의 대형 회고전과 볼프강 틸먼스가 찍은 스튜디오 사진들.... 물론 이 매력적인 영역들의 미학적 이끌림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미술관과 박물관, 갤러리에서 관광객으로서의 내 소임도 다할 참이지만, 그 우선순위를 어떤 강박도 없이 충실하게 베를린의 여름을 느껴보는 것에 두려는 것이다.도시 베를린의 이 거대하고 관대한 수용성, 가끔 그것이 미스터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샬로텐부르크의 친구 집은 한 계절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숙소가 된다. 그녀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엔 집주인이 정성껏 가꾸는 작은 정원이 나타나는데, 탐스러운 분홍 수국과 장미 나무들이 초록의 크고 작은 화분들의 조화로움을 지배하는 풍경이다.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목가적인 테이블에서 한밤의 와인을 음미할 수도 있고, 아이와 함께 대낮의 모래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장소였고 내게는 가장 일상적으로 그 식물적인 풍요로움을 감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벌거벗은 아이들이 호스를 타고 뿜어대는 차가운 물로 온몸을 적셔가며 마냥 즐거워하던 장면은 회화적이기까지 했다. 우리도 이따금 버터와 잼, 복숭아와 커피를 들고 나가 느긋한 아침을 먹기도 했고, 아티스트 친구들과의 늦은 저녁엔 맥주를 들이켜며 ‘브렉시트’에 대한 염려 섞인 이야기를 열띠게 나누기도 했다.집을 나서면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조용한 거리를 만난다. 두 세대가 넘도록 운영 중인 훌륭한 빵집, 샬로텐부르크라는 동네의 맥락을 예술적 지형으로 정리해놓은 근사한 동네 뮤지엄이 집 앞에 있었다. 샬로텐부르크 성의 드넓은 정원에서 아침 조깅을 누릴 수도 있고, 늦은 오후의 한 시간쯤을 이상적인 산책으로 보낼 수 있는 아름다운 호수 하나가 지척에 있다. 뜨거운 햇볕과 늘어난 낮의 길이가 이들에겐 그토록 축복처럼 다가오는 걸까? 모든 걸 밖에서 하고야 마는 계절. 어딜 가든 천장이 없는 곳에서라야 이들의 진짜 웃음과 활기가 드러나는 시간인 듯하다. 해가 저문 뒤의 숲과 잔디 위에서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 이 시작되고, 모든 기후의 꽃과 식물이 모여 자라는 식물원에서는 신비로운 ‘밤의 식물원’ 행사가 7월의 늦은 시간에 열린다. 마침 이때 열리는 유럽 간 축구 경기는 또 다른 기쁨이며 소란스러운 밤의 명분이 된다. “이 시기의 몇 개월, 이 찬란한 반짝거림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게 된다”는 어느 아티스트의 진심 같던 이야기. 그리고 여름에 가볼 만한 레스토랑과 숍, 호수와 산을 편집한, 예쁜 책자의 제목이 오죽하면 ‘Outside’일까. 지붕이 없는 모든 장소에서, 베를린 서머의 낮은 길고 밤은 더욱 더 길어진다.최고기온이 36°C를 웃돌 거라는 예보가 있던 날에는 일찌감치 김밥을 싸 들고 도시의 더위를 떠나보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베를린 남서쪽에 있는 슐라흐텐(Schlachtensee) 호수로 갔다.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 인파로 넘쳐나는 기차와 호숫가로 향하는 걸음들, 이미 정오 무렵의 호숫가는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매혹적인 빛에 둘러싸인 물 위엔 작은 요트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천천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몸의 체온을 떨어뜨리던 젊음들은 재미 삼아 환호성을 치는 중인 듯하다. 평평하고 그늘진 어느 수풀 속에 블랭킷을 깔고 앉아 ‘그들의 여름’을 바라보았다. 각자의 여름을 통과하고 있는 오후의 풍경들이 어느 순간 도무지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저 먼 곳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그늘 속에서 두툼한 전공 책을 읽고 있는 근처 베를린 자유대학 학생들의 건장한 뒷모습이나, 가슴을 드러내고 나른하게 누워 있는 건강한 내 또래의 여자, 둔한 동작으로 옷을 차례로 벗으면서 서서히 나체가 되어가던 노인의 적나라한 몸이 내 주변의 풍경으로 펼쳐지던 그때에 말이다. 모든 도시적 모티프에서 벗어나 가장 자연스럽게 자연 속으로 침투하는 모습은 흡사 ‘다리파’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도 했다. 어쩌면 내가 만끽해보겠다는 여기 이곳의 여름이란, 경험적 차원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가능했던 실체가 아니었을까. 저들처럼 다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없었던 여자는 수박을 입에 물고 건성으로 책 몇 페이지를 읽으며, 고작 습하고 눅눅한 서울의 더위를 떠올리는 것이었다.HAMBURG북독일이라는 지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는 아무래도 함부르크 같다. 도시의 풍경이 꽤 서사적으로 읽히는 곳. 벽돌과 사암 건물들이 지배하는 무거운 도시의 색채, 사나운 날씨에 길들여진 완강한 저항 같은 것이 보이면서도 오랜 시간 무역으로 자본을 축적한 도시답게 화려한 ‘부의 취향’이 절제 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칼 라거펠트와 질 샌더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가 탄생한 곳이라고 한다면 어떤 창의적인 뉘앙스가 더해질지 모른다. 함부르크에 온 이유는 애초부터 막연했는데, “도시의 무드를 좀 느껴보고 싶어서”라는 모호한 의지는 중앙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퍼붓던 비와 함께 내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은 무작정 걷다가 마주치는 것들과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마침 가장 가까운 거리에 ‘쿤스트할레’가 있다. 비를 피해 은신할 만한 장소로 뮤지엄만 한 장소가 또 있을까? 19세기 초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뜻으로 세워진 웅장하고 우아한 미술관.라는 부제를 따라 마네를 ‘응시’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로 이미 뮤지엄은 인산인해. 역시 인상파는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강력한 뮤지엄 블록버스터다. 댄디한 청년이 아침 식탁에 살짝 기대어 어딘가를 바라보는 ‘아틀리에에서의 아침식사’는 뮌헨을 떠나와 잠시 이곳에 걸려 있다. 에밀 졸라의 소설 속 창녀 ‘나나’를 재현한 마네의 ‘나나’는 뮤지엄이 자랑하는 소장작으로 관객들이 겹겹이 비집고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1945년, 지하 7백m의 소금광산에서 미군이 발견한 ‘온실에서’는 마치 아무런 일도 겪지 않았다는 듯 우아한 남녀의 비밀스러운 한때를 그리고 있다. 뒷짐 지고 스르륵 지나가듯 그림을 보는 나와 달리 대부분의 나이 든 관객들은 다양한 제스처로 마네를 분석하듯 보고 있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그림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능동적인 감상 이상의 어떤 애착의 태도가 있다. 일찍이 마네의 작품을 꼼꼼하다 못해 강박적으로 분석한 푸코의 책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얼마 전 들었는데, 유럽인들의 끊임없는 ‘옛 그림 뜯어보기’는 어쩌면 가장 유희적인 자기확인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커피가 함부르크에 도착한 건 1600년대 초반. 이후 이 거대한 항구를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뮌헨에선 누구나 맥주를 마시듯이 함부르크에서는 모두들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항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의 창고 건물이 늘어선 풍경을 좌표 삼아 다리를 건너갔다. 불현듯 어디선가 후각을 자극하는 너무 진한 커피 향. 커피가 함부르크에 도착한 건 1600년대 초반. 이후 이 거대한 항구를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냄새의 길목처럼 따라간, 옛 항구 창고 안의 로스터리 카페는 흡사 뱃사람들의 아지트처럼 크고 시끌벅적했다. 뮌헨에선 누구나 맥주를 마시듯이 함부르크에서는 모두들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운동장만 한 카페 한쪽에선 여전히 낡은 프로밧을 돌려가며 커피콩을 볶고 있다. 신맛이 먼저 느껴지는, 시커먼 에스프레소를 한잔 들이켜고 나니 다시 짙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S반(S-bahn)을 타고 알토나의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함부르크만의 이 독특하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의 묘사가 어디선가 읽은 문장들과 함께 희미하게 떠올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를 뒤져보니, 온종일 상기된 내 마음을 떠돌던 말은 토마스 만의 소설 속 문장이었다. “박공 건물이나 뾰족 탑들, 회랑과 분수 같은 이상하게 위엄 있는 옛날의 정든 건물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것을 느끼고 또한 아득한 꿈나라에서 부드럽고 예리한 향기를 가져다주는 바람, 그 거센 바람이 다시 얼굴에 부딪히는 것을 느끼자, 곧 마음에는 엷은 비단 폭과 안개의 장막이 덮어씌워졌다.” 냉철하고 고결한 소설가의 짧은 문장엔 오늘 이 도시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통과한 ‘인상의 결정체’가 담겨 있었다. 집주인이 키우는 검은 고양이가 거실에서 울기 시작했고 알토나에 내리던 한밤중의 비는 바람과 함께 더욱 거세져갔다.*생생한 여행 기록을 더 접하고 싶다면 박선영의 인스타그램(@misuleye)을 방문해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