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나이트의 진보적 렌즈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사진과 디지털미디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닉 나이트의 작업은 디지털 시공간에 떨어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흥미로운 단서를 던진다. | 아트,닉나이트,사진

지난 9월 7일 오후 3시, 나는 런던 에버리 가로 이전한 쇼스튜디오(SHOWstudio)를 방문했다. 친절한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사진 촬영이 한창인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넓고 높은 스튜디오 천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곧이어 닉 나이트(Nick Knight)가 등장했다. 우리는 인터뷰를 위해 위층의 미팅룸으로 자리를 옮겼다.닉 나이트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까? 아마도 포토그래퍼라는 단어가 가장 손 쉬울 것이다. 실제로 이 남자는 여전히 공적이거나 사적인 많은 자리에서 ‘패션 사진가 닉 나이트’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그가 패션계에 남긴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사진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단순한 포토그래피가 아니며, 그것은 패션의 영역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던 1990년대부터 이미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일에 빠져들었던 닉 나이트는 사진의 영역 자체를 확장해왔다. 진보적인 듯하면서도 보수적인 패션계에서 디스플레이되는 이미지의 방식을 답답하게 여긴 그를 흥분시킨 것은 새로운 플랫폼이었다.(심지어 그는 한 번도 카메라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는 말까지 했다.)닉 나이트는 2000년에 온라인 패션 필름 플램폼인 쇼스튜디오를 론칭했다. 이유는 심플했다. ‘한 방향에서만 볼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자이너는 옷을 만들며 움직임을 상상한다. 한 각도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을 상상하며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패션 필름은 움직이는 패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그의 비주얼 실험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풍경들을 만들어냈다. 2004년에 그는 영국 셰프 헤스톤 블루멘탈과 재미있는 작업을 했다. 블루멘탈은 호화로운 만찬을 차렸고, 만찬은 패션 사진으로 기록되었으며, 촬영하는 동안 저녁 식사 게스트들의 대화가 녹음되었고, 이것은 온라인에서 공개됐다. 알렉산더 맥퀸의 마지막 쇼가 된 2009년 F/W 컬렉션에서는 알렉산더 맥퀸과 쇼스지튜디오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Plato’s Atlantis’가 펼쳐졌다. 이 쇼에서는 위협적인 로봇들이 아예 런웨이에 올라서 모델들을 따라 다니면서 모든 순간을 촬영했고, 그 모습은 인터넷을 통해 방송되었다.(이처럼 거창한 장비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최근 그는 아이폰 카메라를 활발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카니예 웨스트의 기발한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작업이 갇혀 있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닉 나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또한 닉 나이트는 유명한 모델이나 셀러브리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사람들, 오버사이즈의 여성들, 아이나 노인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을 즐긴다. 이 모든 것이 닉 나이트를 지칭하는 단어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그는 스스로를 ‘이미지 메이커(Image Maker)’라고 부른다. 그의 작업은 매체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패션 매거진에게도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다. 한국의 대표적인 패션사진가 홍장현은 닉 나이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필름 시절부터 이미 기존의 메커니즘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만들었다.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험해온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 완전히 넘어온 지금, 자신이 가진 실험정신을 영상으로도 자유롭게 표현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그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는 사진가 이상의 상상력을 가진 과학자다.” 그리고 곧 서울에서 닉 나이트의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10월 6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시작되는 展에서 1970년대 반문화의 상징인 청춘들의 모습을 담은 초기 작품부터 패션계를 자극시킨 대표적인 작품들, 영상과 3D 스캐닝 등의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패션 필름 등을 감상할 수 있다.인터뷰가 끝나자 닉 나이트는 스튜디오의 높은 벽을 비추는 햇빛을 발견하고 아이폰을 들어 그것을 촬영했다. 이 장면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어떤 핵심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닉 나이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 매일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대림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신은 “나는 내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이 불편하다. 제단 위에 서서 사람들이 내 말을 가만히 경청해주길 바라는 신성한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나는 일부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그들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전시되는 것을 본 후로, 전시라는 것이 다소 거만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관객을 소외시킨다고 느꼈다. 내가 쇼스튜디오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관객들이 창작 과정은 전혀 보지 않고 최종 결과물만 보는 것에 반대한다. 과정이 중요하다. 또한 나는 아티스트가 관객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 자신의 욕구로부터 시작된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관객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면 혼잣말을 하는 것에 불과할 테지만, 지나치게 관객을 의식하거나 작품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예술작품은 작가의 욕망이나 탐구, 분노, 사랑 등 자기 스스로를 위한 어떤 것이어야 한다.당신의 작품은 이 신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나?간단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즉,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사진 작업을 통해 하려는 것은 모두가 좋아하는 방식을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다. 나만의 방식을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런던의 패션 아카데미 행사인 GFW의 패트론이 되었다고 들었다. 이 역할을 맡은 이유는 무엇인가?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수락했다. 새로운 패션은 아주 중요하고, 신인들에게는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나는 알렉산더 맥퀸이나 존 갈리아노 같은 사람들이 대학 졸업 후 컬렉션을 준비할 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직접 보았다. 훌륭한 신인들을 지켜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GFW에 가보면 캣워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이 정말 놀랍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레이디 가가처럼 독보적이고 기묘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작업을 선보였다. 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에서 개인적으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모든 콜라보레이션이 곧 수확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의 꿈과 욕구, 느낌, 두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보람 있는 일이다. 카니예 웨스트, 레이디 가가, 트레비스 스콧, 가레스 퓨 등 나는 나를 매료시킨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다. 이것은 굉장한 일이다.당신은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패션 인더스트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일들이 다반사 아닌가?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를 듣고 싶다.아름다움은 당신이 볼 수 있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은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나 사람들이 말할 때 사용하는 보디랭귀지, 자동차를 반짝이며 비추는 햇빛 속에도 있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표면적인 모습보다는 주로 감정에 의해 표현된다. 아름다운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는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나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랑 받는 모델이나 배우들과 함께 일해왔지만 그들이 좋은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조금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겉모습보다는 감정에 매료되는 사람이다.유치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당신에게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나?인스타그램은 내가 요즘 흥분을 느끼는 매체다. 패션 포토그래퍼로서 모델을 찾을 때, 전형적인 방법은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가 서너 장의 사진이 담긴 카드를 받고 모델을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캐릭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거다. 요즘 내가 촬영하는 대부분의 모델은 모두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사람들이다. 이번 주말에는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삶에 대한 에너지가 넘치는 한 런던 소녀를 촬영할 예정이다. 그녀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그런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기쁨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촬영한다는 것은 이미지 메이커로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올여름 두 차례의 작업을 같이 한 재젤 자노티(Jazzelle Zanaughtti)는 시카고의 한 모델 에이전시 소속 모델이었는데 눈썹을 밀었다는 이유로 에이전시에서 퇴출 당했다. 그 후 그녀는 삭발을 했고, 나는 그녀와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누군가를 촬영하고 싶다.하루 일과는 보통 어떻게 되나?최대한 12시에는 자려고 노력하지만 대개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매일 저녁 시간과 아침 시간에 필라테스를 하고, 쇼스튜디오로 출근한다. 거의 일주일 내내 쇼스튜디오에서 보낸다. 쇼스튜디오에는 항상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이 있다. 햇빛이 가진 순수함과 우아함이 스튜디오에 은은하게 퍼진다. 쇼스튜디오에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고, 그것을 표현하길 원하고,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당신은 필름 시절부터 메커니즘을 파괴하며 원하는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선구적인 이미지 메이커로서 당신이 발견한 디지털의 미학은 무엇인가?우리는 지금 다른 차원에서 작업하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매거진에서 평평한 2차원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이미지를 회전시킬 수도 있고, 깊이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거꾸로 뒤집어볼 수도 있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새로운 차원의 미학을 발명한 셈이다.지금 한국 패션계도 사진에서 영상으로의 이행에 따라 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부분의 포토그래퍼들이 자신의 작업에 미학적 아름다움을 더하거나 실질적인 돈벌이를 위해서 사진과 영상의 겸업을 시작하는 추세다. 그 가운데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다. 당신은 쇼스튜디오에서 다채롭고 진보적인 영상 이미지들을 실험해오고 있는데, 이제 막 영상의 세계로 진입한 사진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지금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의 시작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나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낸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도하고 있는 일이 맞다는 용기와 확신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미지 메이킹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에도 문제가 있다. 아직 아무도 새로운 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칠 사람이 없는 게 맞다.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놀라운 무언가가 시작되려고 하는 시점이라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다.다른 사진가들이 모델이나 옷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순수하게 몰두한다면 당신은 종종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이슈들을 작품에 도입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집중하고 있는 사회적 화두가 있다면?1990년대 중반 즈음, 패션계는 나의 개인적인 세계와 잘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몸의 곡선미가 아름다운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했다. 나에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러나 내가 촬영해야 하는 여성들은 누구도 그런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들이 잘못됐다고 느낀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저 내가 사랑에 빠진 여성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나는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진심을 다해 작업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내가 가진 신념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패션계의 세계가 단절되어 있음을 느꼈다. 운 좋게도 런던은 다양한 생김새와 사이즈, 나이, 인종이 존재하는 다문화 도시로 아름다움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그 다양성이 패션 매거진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억압이다. 특히 여성들은 어려운 시기가 있었고 남자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과거와 현재, 국가를 막론하고 언제나 여성을 둘러싸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건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이다. 최근 니콜라 포미체티의 첫 디젤 컬렉션을 위해 아이폰으로 캠페인 스틸 사진을 찍고, ‘Mega Photo’ 앱과 인스타그램을 사용해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이런 도구들은 어쩌면 당신에게는 매우 로파이(Lo-fi)로 여겨질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더 다양한 옵션을 제시해 준다. 지금 내가 하는 많은 작업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사진은 하이파이(hi-fi)나 로파이(lo-fi), 선명도에 특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진이 정확한 초점과 심도가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흐릿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도 흥미롭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의 퀄리티가 클래식 카메라로 찍은 사진 못지 않게 훌륭하다. 앱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도 있다.당신이 자주 쓰는 앱은 무엇인가?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Glitché’와 ‘Mega Photo’다.현재 당신의 아이폰 사진첩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은?장미꽃. 나는 장미꽃을 찍으며 평온함과 즐거움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