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함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민숭민숭했던 놈코어의 시대가 가고 괴상한 패션의 달콤한 유혹이 시작되었다. | 괴상함,익센트릭,괴짜

'놈코어’라는 이름을 단, 평범함의 물결이 하이패션마저 뒤덮었던 몇 시즌이 지나고 지난해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데뷔 컬렉션은 맥시멀리즘으로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2월, 2016 F/W 뉴욕 패션 위크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크 제이콥스 쇼 피날레에 쏟아진 박수갈채는 미니멀리즘, 그리고 단순한 화려함에 지긋지긋해진 패션계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만 같았다. ‘쨍’ 하고 금속 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진 하얗고 광활한 쇼장(아이스링크장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엔 팀 버튼의 영화 를 떠올리게 하는 괴기스럽고 섬뜩한 유령이 된 마크 걸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스펙터클한 무대장치 없이도 관객을 압도할 수 있었던 힘은? 흠칫 놀랄 만큼 퇴폐미 낭자한 검은 눈과 입술 메이크업은 말할 것도 없고, 땅에 질질 끌리거나 두 명도 충분히 들어갈 만큼의 오버사이즈 실루엣, 보는 이가 더 조마조마할 정도로 30센치는 훌쩍 넘는 플랫폼 슈즈까지. 쇼의 처음과 끝, 모든 것이 과장 그 자체였기 때문! 여기에 모델들 뒤로 나타난 소름 끼치도록 커다란 그림자 역시 괴기스러운 느낌을 더욱 배가시켰다. 늘 그래왔지만 과거 그 어떤 쇼보다 드라마틱했던 이번 시즌 마크의 패션 판타지는 괴상했지만 엄숙했고 또 아름다웠다.지금 패션계는 이처럼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익센트릭 패션’이 넘실거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후디, 재킷, 트렌치코트 할 것 없이 럭비선수라도 된 듯한 공격적인 어깨나 잔뜩 위축된 지질한 ‘어좁이’같이 비정상적인 실루엣의 스트리트 룩으로 몇 시즌째 패션계를 뒤흔들고 있는 베트멍이다. 이는 관습적인 사이즈에 의문을 제기해 과도하게 큰 사이즈로 셔츠와 블라우스 등을 디자인한 2000 S/S 시즌 마틴 마르지엘라 컬렉션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도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쿨함에 매료되었고 16년이 지난 현재도 마찬가지. 또 길쭉길쭉한 모델 군단 대신 뎀나의 절친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로타 볼코바 아담이 베트멍 런웨이의 첫 주자로 나섰고 뒤를 이어 인스타그램에서 발탁한 평범한 친구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는 순간! 전혀 ‘모델스럽지 않음’이 더 쿨해 보인 건 나뿐이었을까? 이번 시즌 비현실적이고 괴상한 룩은 이뿐만이 아니다. 15세기 피렌체에서 일어난 사건인 ‘허영의 소각’에서 영감 받은 모스키노는 귀족의 화려한 별장에서 떼어 온 듯한 거대한 샹들리에 이브닝드레스로 파격적인 신을 선사했고, 에디 슬리메인의 마지막 무대이자 살롱처럼 연출된 생 로랑 컬렉션엔 레드 하트가 동동 떠다니는 듯한 강렬한 퍼 코트가 눈길을 끌었다.한편 ‘헉’ 소리 나게 만드는 이상한 액세서리도 곳곳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지난 시즌 척추장애인 연기를 펼친 모델을 등장시키며 파리 패션 위크에 화려하게 컴백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존 갈리아노. 그는 지난 시즌보다 다소 평범해진 실루엣을 선보였지만 헤어 피스를 뒤집어 만든 장갑처럼 징그러운(?) 액세서리로 특유의 괴짜다운 매력을 더했다. 애견인임을 자처한 톰 브라운은 살아 있는 듯 사실적인 강아지 백을, 언더커버는 커다랗고 징그러운 곤충들을 코트와 백에 붙이거나 금빛의 뾰족한 가시나 꽃송이 헤드밴드로 드라마틱한 무드를 연출했다. 시장에서 볼 법한 형형색색의 봉지로 스카프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케인의 위트, 여성의 야망을 표현했다는 가레스 퓨의 마스크는 과격함이 느껴지기도. 디자이너의 엉뚱하고 괴짜 같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괴상한 패션을 리얼웨에서 만날 일은 드물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목말라했던 패션 판타지가 아닐는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함이 주는 그 신선한 충격은 현재 패션계를 관통하는 힘이 되고 있다. 자, 이제 즐길 준비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