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실용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선물의 낭만에서도, 가을날 소풍의 여유에서도, 심지어는 패션의 판타지 속에서도 결국 우리는 실용과 쓸모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떻게 취하느냐의 문제일 뿐. 노앙의 디자이너 남노아가 이야기하는 패션 에세이. | NOHANT,DESIGNER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우선 ‘생일파티를 할 것인가’부터, 한다면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그리고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까지 고민이 이어진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구매한 상품을 반품하는 것보다 성가신 일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생일이 다가올 때면 축하인사보다 먼저 무엇이 필요하냐란 질문을 받곤 하는데, 늘 대답은 “필요한 거 없어.”였다. 그건 다 가져서도 아니고 물욕이 없어 필요한 게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지금 필요한 것을 리스트를 적어가며 건네는 것이 염치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어느 해엔 마지못해 어떤 매장에서 몇 번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은 스웨터를 떠올리며 그것을 사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스웨터 가격이 누구 한 명이 사줄 수 있는 금액은 아닌지라 여러 명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짜잔” 하고 생일선물로 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매장에서 입어봤으니 당장 보지 않아도 정확히 아는(심지어 백원 단위의 가격까지) 선물이어서 “짜잔”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자고로 선물이란 마음에서 조심스레 튀어나와 불현듯 감동 한 방 먹이는 가장 로맨틱한 단어가 아니겠는가? 지나온 생일을 돌이켜보면 오다가다 인사 한번 나눈 친구들까지 불러 한 달 월급 정도를 생일파티 술에 써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축하인지가 모호해진 생일파티가 싫어진 요즘, 이번 생일은 자주 모이는 모임의 회원들과 조촐히 저녁식사를 하였다. 어차피 모이는 날에 생일이라는 이름의 불청객 한 명만을 불러온 모양새로. 그리곤 최근 오픈한 썩 괜찮은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 후 생일선물(여기서 선물이란 물품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대신 오늘 먹은 이 레스토랑 인테리어처럼 조금은 과한 식사비, 그리고 꽤 포만감이 느껴지는 현금 뭉치를 받았다. 사실 이런 생일선물은 그간 머쓱했던지라 받는 순간 마음이 한 발짝 뒷걸음질쳤었다. 상품권이나 현금을 선물로 손에 쥐어주면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지 하는 부담감에 움츠러들기도 했고, 성의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이내 오늘의 식사 계산서와 현금 뭉치만큼 ‘실용적’인 선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하러 오는 길에 책상 위 카드청구서를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이 헌금 걷듯 모아 내민 스웨터도 아직 잘 입고 다닌다. 필요했지만 쇼핑몰 장바구니에만 담아두었던 것을 생일이라는 이유로 받게 되는 순간, 나는 이런 것을 실용적이라 부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쓸모 있음’을 방해했던 요소는 약간의 체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실용을 내세운 요구적 요구는 아직도 무례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령 너의 생일에 준 선물이 10만원 상당의 물품이었던 걸 메모해두었다가 내 생일에 그 정도 가격의 물품 리스트를 내미는 이상한 계산법이나 한 가지를 주기도 전에 두 가지를 받으려고 손 내밀고 있는 형상 말이다. 마치 한여름에 나만 시원하면 그만이지 하며 입고 나간 후즐근한 민소매 티셔츠처럼 그저 자기 편리만을 위해 실용성을 행하여서는 그 쓸모가 유용하지 않은 듯하다.우리는 몹시 실용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체면상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 그 편의에는 조그만 의식이 필요한 듯하다.두 달 남짓 남은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패션 ‘쇼’라는 시각에 특화된 디자인 샘플을 둘러보며 옷이 가지는 본질적인 실용성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는 요즘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하이브로우와 협업해서 만든 피크닉 박스에서 가장 내세우고자 했던 것 역시 실용성이었다. 사무실만 아니면 어디든 가겠다고 나선 한강공원은 생각보다 여유로웠고 아스팔트를 나와 잔디밭에 누워 주변 사람들과 가벼운 목례 정도를 나누고 나니, 바쁜 세상 속에서 몹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두 번씩 피크닉을 시작하다 보니, 멍하니 하늘만 보다 돌아오는 날들이 줄었고 책을 읽거나(물론 집중력은 채 10분을 채우지 못하지만) 맥주를 두어 캔 들이켜는 등 이래저래 할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엔 편의점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가져가던 물품들이 살림살이 늘어나듯 늘어나니 예쁜 피크닉 가방이 가지고 싶어졌고, 그러다 보니 옆자리 사람들은 무엇을 들고 다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다니던 것이 ‘하이브로우 박스’였는데 두 손에 들어야 하는 박스를 한 손으로 들 수 있도록 가방 속에 넣어보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들어 하이브로우를 이끌고 있는 이천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쿨한 피크닉 상자를 들기 쉽도록 에코 백으로 씌우고 그 가방에 주머니도 몇 개 달았더니 그럴싸한 피크닉 세트가 만들어졌다. 돗자리는 둘둘 말아서 상자 속에 넣고 맥주도 다섯 캔 정도 넉넉히 채우고 책 한 권과 카메라, 봉지과자는 거뜬히 들어갔다. 이제 이 피크닉 가방 하나면 언제든 한강쯤이야 거뜬히 나갈 수 있으니 “바로 이거야!”라고 기뻐했지만, 이천희가 생각하는 실용적인 피크닉은 조금 달랐다. 한강, 혹은 그 유사한 곳에 편리한 용품들을 즐비하게 전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앉은 자리를 스스로가 정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고, 내 집 마당처럼 목줄을 풀어놓은 많은 개들, 가라오케 데시벨 정도의 대화들, 그런 의식부터 바꾸고 피크닉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실용성이란 것이 이토록 거창해야 하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그 후로도 나는 그 피크닉 박스를 들고 나갈 때면 쓰레기를 담아올 검정 비닐봉투 하나씩은 꼭 챙겨 가게 되었다. 아주 의식적으로.이제 내게 통장 사정을 꿰뚫어본 현금 선물이나 검정 비닐봉투 한 장이 들어 있는 피크닉 박스처럼 실용은 배려라는 것이 동반되었을 때 아주 쓸모있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몹시 실용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체면상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 그 편의에는 조그만 의식이 필요한 듯하다. 물론 패션은 에디 슬리메인의 그 좁은 팬츠에 몸을 맞추겠다며 피가 통하지 않을 고통을 감내하던 친구들처럼 그렇게 실용성만을 내세워야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항에 유니폼처럼 아웃도어 점퍼 차림을 하고 온 한국 아저씨들의 일관된 편안함을 보며 내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로 실용성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아야 하며 예뻐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