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VET UNDERGROUND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벨벳에 대한 관점을 180도로 바꿔야 할 때다. 고전적이고도 성숙한 모습에서의 쿨한 이탈이 시작되었으니. | 벨벳,velvet

솔직히 난 단 한 번도 벨벳이란 소재에 애정을 준 적이 없다. 얌전히 성경책을 읽고 있는 정숙한 성녀나 우울한 장례식 속 미망인이 불현듯 떠오르곤 했으니까. 그 이유는 벨벳 특유의 광택과 질감이 주는 보수적이고 진지한 분위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특징 때문에 벨벳은 가을, 겨울 시즌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다크 로맨스와 빅토리안 무드가 강력한 트렌드로 떠올랐던 지난 2015 F/W 시즌엔 디자이너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대단한 활약을 펼치기도.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앞두고 또 다시 벨벳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이번 시즌 그야말로 젊고 쿨하게 변신한 ‘벨벳의 전성시대’가 열렸기 때문! ‘쏟아져 나왔다’라고 표현하는 게 과하지 않을 정도인 거대 벨벳 군단들은 나조차 설레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개인적으로 벨벳에 대한 관심은 프라다 쇼를 보고 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귀족적인 화려함, 프랑스혁명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프라다 쇼에서 골드 엠브로이더리를 장착한 레이디라이크 풍의 벨벳 드레스가 등장한 것. 여기에 온갖 장식적인 요소를 더해 벨벳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했고 이는 단연 이번 시즌 나의 페이버릿 룩이었다.하지만 이번 시즌 벨벳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앞서 얘기했듯이 ‘젊고 쿨한’ 변신에 있다. 먼저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를 주목해볼 것. 벨벳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딥한 컬러가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무지개를 닮은 풍부한 컬러 역시 런웨이를 채웠다. 지난 시즌 언뜻 본 것도 같은 간결하고 고혹적인 실루엣이 왠지 새롭게 다가왔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봄날의 개나리를 떠올리게 하는 옐로(발렌티노)나 깊은 심해를 연상시키는 블루(엘러리) 등 애시드한 컬러를 입혀 한층 세련된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캐주얼한 실루엣, 스트리트 요소가 접목된 디자인 역시 벨벳의 연령대를 낮추는 데 한몫했다. 스포티즘과 밀리터리 무드를 교묘히 믹스해 도쿄 신주쿠 거리를 누비는 여자들을 표현한 3.1 필립 림은 이번 시즌 가장 활발히 벨벳을 활용한 디자이너 중 하나. 집업 재킷부터 수트, 기모노에 이르기까지 벨벳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명민함을 엿볼 수 있다. 패션계를 뒤흔들며 파리의 빅 쇼로 떠오른 베트멍 쇼 역시 벨벳은 빠지지 않았다. 성스러운 성당에서 펼쳐진 런웨이에 어깨 깡패라도 된 듯 비정상적인 실루엣의 금빛 벨벳 코트가 등장했고 엉덩이까지 닿을 듯한 사이하이 부츠를 매치해 동시대적인 쿨함을 보여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벨벳으로 무장한 하이더 아커만은 벨벳의 견고한 실루엣에 날렵한 커팅을 더함으로써 여성들을 보다 관능적이고 강인하게 표현했다.그런가 하면 벨벳이 지닌 매끈한 텍스처는 ‘럭셔리 스포티즘’ 트렌드의 조력자이기도 했다. 은은하게 빛나는 벨벳 패딩으로 쇼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한 스텔라 매카트니, 벨벳 풀오버와 그래픽 패턴 스커트로 스키웨어에서 영감 받은 액티브 웨어를 연출한 에밀리오 푸치, 라코스테와 오프닝 세리머니의 트레이닝 룩을 참고해볼 것. 더 이상 2000년대 식 쥬시 꾸뛰르의 벨벳 트레이닝복은 떠올리지 말도록. 볼륨감이 느껴지는 새로운 실루엣으로 그 어느 시즌보다 트렌디하게 거듭났으니 말이다.이번 시즌 벨벳의 일탈은 무죄다. 이제 변화한 벨벳을 명민하게 즐기기만 하면된다. 먼저 우아한 드레스 같은 경우 장식적인 요소가 없는 최대한 미니멀하고 모던한 실루엣을 선택할 것. 반면 벨벳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캐주얼한 실루엣과 디테일을 선택했다면 체크 셔츠, 밀리터리 재킷, 데님 팬츠같이 드레스다운할 수 있는 아이템과 믹스 매치해 보다 쿨하게 연출해보도록. 물론 두 경우 모두 과감한 컬러 선택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