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와 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좀비는 인간의 자화상이다. 좀비를 본다는 것은 결국 내 안의 좀비성과 마주하는 일이다. 공포와 연민과 쾌감과 슬픔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한국형 좀비물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 스코어를 기록한 연상호 감독과 좀비, 인간, 그리고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BAZAAR,바자

#출발지영화 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 이 곧 개봉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 인 셈인데, 을 본 천만 명의 관객들에게 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팁을 준다면? 은 의 열차가 출발하기 하루 전날 밤, 서울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 을 정확히 매칭시키려 한다면 오히려 재미가 떨어질 수 있다. 별개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감상하면 된다. 좀비의 특징도 좀 다르다. 일단 에는 좀비들이 깜깜해지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설정도 등장하지 않는다.그렇다면 의 좀비들이 더욱 막강한 거군?(웃음) 그 대신 다른 공략 포인트는 있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가능한데 내려갈 때는 굴러서만 내려 간다거나.(웃음) 좀비들은 목적 의식이 강한 존재이다 보니까 계단같이 복잡한 구조를 잘 통과하지 못하는데, 그런 좀비의 특징을 많이 활용했다. 열차에 처음으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소녀, 그리고 노숙자 캐릭터가 의 주요 인물인가? 의 예고편을 보니 소녀가 “나는 노숙자가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의 좀비 사태는 노숙자 세계에서 시작된다. 언론은 노숙자가 폭동을 일으켰다고 이야기 한다. 의 노숙자 캐릭터는 그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싶은 정도이고 배우 심은경이 연기한 소녀 역시 의 가출 소녀와 정확히 겹치는 인물은 아니다. 두 영화 사이의 연결고리 정도랄까?은 의 천만 관객 모두가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닐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들의 세계관은 보다 훨씬 어둡고 냉혹하다. 은 어떤가? 의 세계관도 좀 냉혹하다. 동시에 슬픈 뉘앙스도 있을 것이다. 글쎄,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 나 역시 궁금하다. 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코드는 ‘집’이다. 부동산 가치로서의 집, 가정이나 가족이 없는 사람, 집에서 나온 사람.... 집, 그러니까 가족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에서 가족애가 소중한 가치라면, 에서는 최소 단위의 사회인 가족까지 냉혹하게 바라본다. 의 인물들은 무척이나 집에 가고 싶어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집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좀비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좀비물은 무엇인가? 조지 로메로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더 버전의 . 되게 스타일리시하게 잘 만든 것 같다. 처음 버전의 은 훨씬 작은 규모였다. 시드니 루멧의 처럼 닫힌 공간에 나 같은 분위기가 맴도는 영화를 생각했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며 조지 로메로가 만든 좀비의 원형, 클래식한 좀비물에 가까워졌다. 좀비가 탄생한 원인이 드러나지 않는다거나, 좀비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는다거나, 군중물이어야 한다거나.좀비는 변형의 여지가 많은 존재다. 공포스러운 것은 물론이지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의식이 있거나 사랑이 가능한 좀비도 있다. 창작자마다 좀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다른 것 같다. 연상호 감독에게 좀비는 어떤 존재였나? 나는 어릴 적부터 좀비를 좋아했다. 뱀파이어나 늑대 같은 다른 괴물들은 초인이고 능력치도 높다. 그에 비해 좀비는 별다른 능력이 없고, 매력도 없고, 비호감 이미지가 강하다. 어릴 때는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지만 사실 모두가 특별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좀비라는 존재가 평범했던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좀비의 공포는 초인적인 힘이라기보다는 ‘무데뽀 정신’에 있는 것 같다. 무조건 달려들고 보는 것. 목적성이 분명한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공포와 비슷한 종류의 공포다.좀비가 되기 직전에 인간적인 속내를 내비치는 설정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좀비 만화 나 강풀의 만화 을 보면 좀비에게 인간의 마지막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임상수 감독의 같은 영화를 보면 평생 동안 점잖던 사람이 죽을 때 욕을 하지 않나. 그것이 은근히 공포스러웠다. ‘나도 죽을 때 진짜 속내가 튀어나오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좀비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인 것 같다.개인적으로 가장 소름 끼쳤던 건 창문 안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좀비 떼의 모습이었다. 좀비가 뒤에서 쫓아올 때보다 더 무서웠다. 우리끼리는 그걸 ‘좀비 아쿠아리움’이라고 불렀다. 배경이 열차이다 보니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좀비와 인간이 대치하고 있는 이미지가 많이 잡혔다. 그 미장센 자체가 좀비가 원래 가지고 있는 함의와 잘 맞는 것 같더라. 좀비는 괴물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를 상징하지 않나. 유리 속 좀비가 거울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된 셈이다.에서 그렇게 많은 인간들이 좀비가 되는데도 노인이나 아이의 참혹한 모습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에 브래드 피트의 인터뷰를 읽으니,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싶어해서”라는 이야기를 하더라.(웃음) 대중적인 상업영화로서의 을 만들 때도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의 관객 중에는 좀비 영화를 처음 보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좀비물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 가족애 같은 것이 중요한 키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관객 두 분이서 을 보러 오셔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봤는데,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했던 풍경이었다. 내 아이에게는 부터 보여줄 것이다. 대개의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부모가 무슨 일을 하고, 몇 평의 아파트와 어떤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부터 알게 된다. 아이에게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조금 빨리 알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인간사실 과 같은 상황에서의 생존 전략은 딱 하나인 것 같다. ‘마동석 옆에 있을 것.’ 상화 캐릭터는 그동안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한국에서 쌓아왔던 좋은 이미지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초반 시나리오에는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 캐릭터가 없었고 석우(공유)와 상화(마동석)가 합쳐진 캐릭터만 있었다. 영화의 엔터테이닝한 부분을 책임질 상화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아내 역을 캐스팅하며 쿠엔틴 타란티노의 에 나오는 브루스 윌리스와 그의 애인을 떠올렸다.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정말 잘 어울렸던 그 커플처럼 배우 마동석과 정유미의 만남도 재밌을 것 같았다.개인적으로 에서 가장 좋아한 인물은 누구였나? 나는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을 좋아했다. 모든 사람이 미워했지만.나도 영화를 보면서는 화를 냈지만 실제의 배우 김의성은 귀여운 분인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 아기 새를 구조했는데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멘션도 올렸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그 형이 요즘 귀여운 척을 너무 많이 한다. 만약 피겨가 만들어진다면 갖고 싶은 캐릭터는 있다. 마동석 선배가 연기한 상화와 우도임 씨가 연기한 여자 승무원. 영화에서는 풀 샷이 안 잡히는데, 그녀가 좀비가 되어서 한쪽 구두가 벗겨진 채 비틀비틀 걸어가는 모습이 되게 멋있었다.캐릭터를 단순화시키는 과정에서 생략된 전사도 있을 것 같다. 전사는 애초에 많이 만들지 않았지만 각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히 있었다.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명의 할머니의 경우에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상징하는 바가 컸다. 석우와 용석은 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이고, 마지막에 그들이 공멸하는 것은 그 세대의 종말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어린 수안이 구조됐다는 느낌보다는 스스로를 구원했다는 느낌, 힘 있게 살아나갈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그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응원하는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망이라기보다는 응원이라는 표현이 맞다.의 인물들은 개인이라기보다는 사회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군상이다. 이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한국 사회의 일면은 결국 무엇이었나? 공포심과 불신이 팽배해 있는 사회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혐오라는 감정을 너무 쉽게 갖는 것 같다. 용석의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공포에서 혐오로 가는 감정을 꼭 표현해달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악인도 있지만 그 악을 만들어주는 지지 세력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악의 일상성’이랄까. 악은 엄청난 무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종착지체감상으로는 실제로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시간과 을 관람하는 시간이 비슷하다. 종착지를 부산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와 의 차이점이 있다면 는 영원히 반복되는 순환선이고, 은 종착역이 분명하다는 거다. 부산에 도착하면 내려야 한다. 하지만 그 목적지가 안전한지조차 모르는 이야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게 인생을 함축하는 것 같다. 사실 의 마지막 부분에 생존자들이 내린 곳은 부산과 가깝다는 느낌만 있을 뿐, 정확히 어딘지도 알 수 없다. 그런 느낌들이 좋았다.김의성은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기를 쓰고 부산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그곳에 복국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국, 이번에 가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라. 부산에 갈 이유로 충분하다.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팬들은 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나? 우선 내 팬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웃음)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는데, 그렇게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전작도 신파가 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되게 감정이 센 영화들이고, 감정을 노출하는 방식도 직접적이어서 이나 를 할 때도 감정 과잉의 상태라는 이야기는 늘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영화였다. 좀비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라는 게, 한국 영화계에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일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그런 책임감이 있었다.이제 한국의 피터 잭슨이라고 불리고 있다. 소수의 마니아 층에게 사랑 받는 작은 영화를 만들다가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 성공시킨 행보도 그렇고, 외모도 좀 닮았다.(웃음) 내가 아직 그 나이까지는 안 갔는데....(웃음)연상호 감독이 만들어온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영화 속 세상과 관객이 살고 있는 세상이 같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강했다. 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애니메이션이든 실사 영화의 형태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풍경을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규모의 영화를 한다고 해도, 내가 사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을 부분이다. 만약 좀비 사태가 온다면 당신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우선 불을 꺼서 암흑으로 만들어야겠지. 그런데 사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빨리 좀비가 될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사는 게 귀찮다. 그냥 빨리 좀비가 돼서 다른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게 낫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