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주승의 상승 기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작은 극장과 큰 극장,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촘촘히 계단을 밟아온 배우 이주승이 첫 액션영화 주연작 <대결>로 보폭을 한껏 늘렸다. 기둥 ‘주(柱)’, 오를 ‘승(昇)’. 이주승은 본인의 이름처럼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 인터뷰,이주승

배우 이주승의 주량은 소주 2병이다. 주사는 말이 많아지거나 잠이 들거나. 사방이 온통 하얀 벽 앞에 그가 서 있다. 비틀비틀 시동을 건다. 손을 쳐들어 권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취한 사람처럼 사지를 갈지자로 휘청거리다가도 ‘훅’ 하고 허공을 찌른다. 촬영장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얼큰한 취권쇼 한판. “취권을 오랫동안 해오신 사부님께 직접 배웠어요. 흐느적거리다가도 때릴 때는 상대방을 ‘탁’ 하고 빠르게 치는 것이 바로 취권이죠.” 이주승이 영화 을 통해 정통 액션영화에 도전했다. 은 현피(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현실에서 직접 만나 싸움하는 것)를 다룬다. 이주승의 상대역은 악인이다. 낮에는 멀쩡한 게임회사 CEO로 살지만 밤이면 잔인한 싸움꾼으로 돌변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 그를 쓰러뜨려야 하는데, 이주승은 애석하게도 애송이다. 필살기가 필요하다. 이주승은 영화를 위해 4개월간 액션 스쿨에 다녔다. “취권은 하체에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무술이에요. 한 시간 정도 근력운동을 하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거든요.(웃음) 하루도 다리가 멀쩡한 날이 없었어요.”https://www.instagram.com/p/BKNuoJOjmrZ/?taken-by=harpersbazaarkorea고등학생이라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이지만 이주승의 실제 나이는 20대 후반. 취업전선에 한창 뛰어들 나이다. 그가 분하는 취준생 ‘풍호’ 역은 곧 그의 친구들의 지금이기도 하다.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캐릭터에 대해 고민할 때 친구들을 자주 만났어요. 풍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싶어서 감독님도 귀찮게 했죠. 이메일로 풍호에 대한 질문을 가득 적어서 보냈는데 답을 안 해주시면 전화 드리고 찾아갔어요. 감독님이 나중에는 그만 좀 찾아오라고. (웃음)” 장문의 이메일로 시작하는 이주승의 정공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주승의 발견’이란 수식어를 만든 2013년 영화 도 그랬다. “군대 안에 갇혀 있다 처음으로 찍은 영화였어요. 그때만큼 간절하게 연기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군대로 면회를 와서 대본을 주고 가셨어요. 군대 독서실에서 대본을 혼자 분석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메일에 질문을 한 백 가지는 써서 보낸 것 같아요.”(이주승은 이 영화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을 수상했다.) 독립영화, 장편영화 가리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입대 전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였다. “군대 들어가서 연기를 못하니까 불안증이 오더라고요. 너무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쥐 죽은 듯 조용한 어느 새벽. 군대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대사 치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라. 대단하지만 어딘가 애잔하고 서늘하기까지 하다. 희비극 이주승 연기 인생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부터다. 연극 동아리에서 극작, 연출, 연기 삼박자를 아우르던 재주 많은 소년이었다. “그때 당시 정신병원에 관한 책을 읽던 중이라 그걸 바탕으로 대본을 썼어요.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만큼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을 다채롭게 연기해볼 수 있는 소재가 없거든요.” 그런데 하필 이주승 작, 연출의 는 즐겁고 신나는 학교 축제 무대 위에 올려졌다. “축제 분위기가 초토화됐죠. 엎드려뻗쳐 하고 선배들에게 불려가서 혼났어요. 정말로 최선을 다했는데 왜 혼나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억울해서 엄청 울었어요. 제가 후배들에게 ‘이번 공연은 대박날 거야’라고 호언장담했었거든요.” 세상의 모든 고등학생 배우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던 영화 오디션에서 6차까지 진행된 토너먼트를 뚫고 그가 캐스팅될 수 있었던 건 독립영화를 시작으로 드라마, 상업영화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험치 덕이다.제가 연기하는 것들에 제가 안 섞일 수가 없거든요. 제가 맡은 역할과 저를 반반 비율로 섞는 걸 좋아해요. 캐릭터와 저의 합의점을 찾아가죠.이주승은 그간 살인마(영화 의 조두식), 스토커(옴니버스 영화 의 소년 역>, 비행 청소년(영화 의 정호) 등 미스터리하고 강한 역할을 많이 해왔다. “센 캐릭터일수록 외모까지 세면 오히려 반감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제 얼굴이 약간 애매하게 생겨서 어디에 놓아도 잘 섞이는, 선으로도 악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이중성을 가진 얼굴인 것 같아요. 제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잘생기진 않았지만 참 잘 태어났다.’ 이주승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우성과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아 뛰어내리고 싶다. 방은 18층인데 5층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지만 감독들은 이주승의 알 수 없는 그 얼굴을 좋아한다. 영화 의 홍석재 감독은 “이주승의 얼굴엔 강한 부분과 유약한 부분이 공존한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백승빈 감독은 이주승을 두고 ‘백 살이 넘은 뱀파이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얼굴을 직접 본 나의 소감은? 웃기다. 이주승은 좀 많이 재미있다. 그날의 인터뷰는 자못 진지하게 흘러갔지만 이주승 얼굴 위로 자꾸 웹드라마 ‘남자 4호’가 겹쳐 보여 조금만 웃긴 말을 해도 이때다 싶어 참아온 웃음을 대차게 방출했다.(이주승은 철 지난 겨자색 패딩을 입고 잔뜩 웅크린 채로 여자를 ‘닝겐’이라 칭하며 데이트 한번 못해본 모태솔로 오타쿠로 등장했다.) “드라마 촬영 마지막 날에 김수현 형이 저한테 고백할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백승찬 캐릭터를 남자 4호를 보고 참고를 많이 했다고. 그래서 저는 일본 영화 를 보고 참고했다고 말했죠. 연기 레퍼런스가 그렇게 릴레이 됐더라고요.” 이쯤 되면 묻고 싶은 걸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디까지가 진짜 이주승의 모습일까? “제가 연기하는 것들에 제가 안 섞일 수가 없거든요. 제가 맡은 역할과 저를 반반 비율로 섞는 걸 좋아해요. 캐릭터와 저의 합의점을 찾아가죠.” 그렇다면 연상의 여자(천우희 역)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웹드라마 의 ‘힙합 뮤지션’에도 이주승이 일부 녹아 있다는 것?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실제로 짝사랑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짝사랑은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그렇지만 후반 작업 중인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에서 이주승은 짝사랑을 목소리로 연기한다. “순수한 모태솔로 남자의 짝사랑 이야기예요.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순종적인 남자 역을 더빙했어요. 그런데 또 연상호 감독님 영화 자체는 세고 베드신도 있는 19세 영화인 것 같아요. 저만 순수하게 나올 겁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