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정, 회화를 향한 아득한 사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회화란 색과 형상, 캔버스 그리고 사유가 매개한 세상 너머의 어떤 세상이다. 아티스트 샌 정(Sen Chung)의 회화에 감각을 실어 좇다 보면 그러한 사고가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깊고 고요한 파동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다이얼로그, 회화 그 자체에 대하여. | 샌 정

아티스트 샌 정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보내온 답장들로 메일함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지난여름 내가 잠시 뒤셀도르프에 머물렀을 때 그는 서울에 있었고, 지금 서울의 내게로 도착한 그의 발신지는 ‘회화의 도시’ 뒤셀도르프다. 이 오묘한 엇갈림은 30년이 넘도록 회화라는 본질적인 큰 산을 여정하고 있는 아티스트 샌 정과 ‘회화’에 대하여 나눈 인터뷰라는 긴밀한 만남으로 상쇄되었다. 스스로가 이해하고 직감하는 회화의 재해석, 이를 위해 작가가 굳건하게 일군 사색의 소용돌이와 잔잔함은 샌 정의 캔버스에서 불규칙한 선과 단순한 기하학의 조형, 색의 가물거리는 변화로 나타난다.“회화는 어떤 의미에서 유한성과 무한성(Mortality and Immortality) 사이를 이어주는 하나의 거대한 다리라고 생각한다.”로 마무리된 그의 긴긴 답변은 오랜만에 날아든 가장 사색적인 예술의 서신이었으며, 내 안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던 회화에 대한 사고의 편린들을 깊이 있는 맥락으로 채워주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아름다운 눈들이, 모든 현시점의 감각을 잠시 잠재우고 이제부터 쏟아질 ‘회화 그 자체’에 대한 아득한 사유의 상찬을 만끽하길 바란다. 자유와 형식, 더 나아가 하나의 세계라는 의미로 미동하며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온 ‘회화’의 단면을 새로이 각성하게 될 테니. 그에게서, 그리고 그의 캔버스로부터. 뒤셀도르프는 그 어느 곳보다 회화의 맥락이 깊고 다층적인 도시다. 이 도시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아트와 관련된 지점은 무엇인가? 1830년대와 1840년대에 걸쳐 독일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회화를 심도 있게 전개한 뒤셀도르프 화파(Düsseldorfer Malerschule)를 꼽을 수 있겠다. 그들은 19세기 중반 미국 허드슨리버 화파(Hudson River School, 미국 풍경화가의 한 유파) 무브먼트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고, 2백 년 역사의 쿤스트 아카데미와 그 주변 미술관들이 현대미술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뒤셀도르프에서 각각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쾰른의 루드비히 뮤지엄과 에센의 폴크방 뮤지엄의 컬렉션도 무척 흥미롭고, 이 도시의 중심 미술관인 K20 미술관의 컬렉션 역시 그 무게감이 뒤지지 않는다.작업이란 결국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과도 밀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뒤셀도르프가 당신의 사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매우 공감하면서도 적절하게 얘기하긴 힘든 질문이다. 오랜 시간 미술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이 도시 분위기가 주는 추진력은 나로 하여금 예술을 더욱 진지하게 접하도록 한다. 가끔씩 찾곤 하는 이곳 미술관 속의 미술사적 작품들 역시 그렇다. 미술뿐 아니라 서서히 뒤셀도르프 정서에 뿌리내린 하이네의 문학과 슈만의 음악 또한 반복되는 사유를 거쳐 나를 작업에 임하는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한다. 개인적으로 푸생이 로마에서 긴 시간 고전적 테마에 심취하며 보여준 작품들과 익숙한 한 장소에서 오로지 자신의 생각을 심화시켰던 칸트에게서 받는 인상이 크다.예술이나 미술도 철학적 개념의 시대정신(Zeitgeist)을 형태나 색채로 연구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그림 위에서 부유하고 정착하는 이미지들에 대한 작가의 미적 판단은 붓을 들고 있는 시간 밖의(너머의) 사색이 관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이것은 결국 관객의 공감대 안팎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지난 6월의 개인전 , 작년에 있었던 이라는 전시 타이틀에서 ‘회화 자체에 대한 사색과 탐구’에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회화’ 자체에 대한 질문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있나? 긴 흐름 안에서의 ‘그림 그리기’는 혁명보다는 진화의 시간이 보다 지배적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누적된 경험 뒤로 자연스럽게 회화의 근본을 직시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임하다 보면 한동안 이젤 앞의 캔버스를 응시할 때가 있는데, 그 시점에 작품 속에 있는 요소들을 새롭게 인지하게 되고 그 이후 새삼스레 미술사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다 객관적인 거리에서 주시하는 시간을 거듭 접하게 된다. 다시 말해 ‘회화’라는 그 본질적인 큰 산을 다른 측면과 다른 깊이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팔레트 위의 색들과 화면 위에 그어지는 선들의 본질적 의미, 페인팅 자체의 형식을 작품의 중심축으로 두게 되면서 회화의 기본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소위 ‘Contemporary Painting’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색상, 불규칙한 선, 컬러 톤의 변화만으로 캔버스에 생각을 더 많이 표현하면서, 감성적 테두리에서 노스탤지어와 멜랑콜리아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점점 줄어들었다.작품에 등장하는 형태와 색채의 요소들을 두고 ‘사유의 침전물’이라고 했는데, 이 인상적인 표현의 의미에 대해 더 듣고 싶다. 하나의 캔버스에서 보여지는 형태와 색상은 여러 번의 붓 터치에 의해 누적되고, 그로 인한 밀도를 ‘생각의 결정체’라고 표현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인사상,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그리고 고대 신화 중 이카루스나 시시포스는 때로 이 바깥세상의 코스모스를 관조하게 만든다. 예술이나 미술도 철학적 개념의 시대정신(Zeitgeist)을 형태나 색채로 연구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그림 위에서 부유하고 정착하는 이미지들에 대한 작가의 미적 판단은 붓을 들고 있는 시간 밖의(너머의) 사색이 관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이것은 결국 관객의 공감대 안팎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갤러리 엠에서의 전시 중 ‘Malerei Unserer Welt’라는 말이 지시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있었다. 캔버스에서 이 언어를 흐릿하게 표현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Malerei Unserer Welt’의 뜻은 ‘이 세상의 회화’, 즉 고대 동굴벽화에서 지금의 현대미술까지를 지칭한다. 무언가를 그린다는 원초적 몸짓은 예술이라는 개념이 있기 전부터 출발하여 인간이 열정을 가지고 각 시대를 넘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감동해온 한 장르라고 본다. 그런 이유로 늘 이젤 앞에서 바라보게 되는 이 영역을, 그 막연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그리고 내게 명제에 가까운 이 문구를 명료하게 작품 테마로 가져가고 싶었다.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 중인 'Connect 1: Still Acts' 전에서 샌 정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 전경 (Photo: Sang-tae Kim)빈 캔버스에 붓질이 시작되는 순간, 캔버스를 마주하고 어떤 사색의 과정을 거치나? 빈 캔버스, 팔레트 그리고 붓. 이 단조로움에서 오는 영감은 가끔은 나를 가장 넓은 회화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든다. 잠시 또는 한동안은 직관의 시간이다. 페인팅이라는 세계에서 시작되는 또 하나의 학습이자 다른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암시 속에서 응시가 길어지는 것이다. 화면에 이는 첫 번째 파문은 직감이며, 캔버스는 비어 있는 것만으로도 대기감을 허락하는 공간이라고 본다. 이후 그 위를 지나는 붓질은 형이상학에 근접하는 시도이자 새로 일구어지는 생각의 텃밭이라 여기면서 사색 가장 안쪽의 존재론과 세계관을 형과 색에 담아 화면에 붓을 긋는다. 이렇듯 생각의 숲 안에서 이는 소용돌이와 잔잔함을 시각화하는 고민의 반복이 그림에 임하는 시작에서의 긍정적인 불균형의 과정이다.현재 집중하고 있는 ‘회화 그 자체’라는 주제도 결국은 ‘재현’이라는 회화의 본령에서 출발되었을 것 같다. 재현에 충실한 작품들, 옛 거장들의 풍경화나 종교화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유럽 옛 거장들의 대작을 통해 ‘재현’이라는 카테고리에서의 회화적 정신을 마주하게 된다. 시몬 마티니, 사세타, 티치아노에서 푸생, 앵그르와 코로까지 이어지는 거장들의 고전적 진지함, 신화와 자연을 향한 고찰은 클래식한 레퍼런스가 영원한 가치에 다가서는 가능성을 확인시킨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라는 작품은 진정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보는 감흥을 주었다.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의 월페인팅 작업은 아주 의외의 장소, 주목하지 않는 장소에 완성되었다. 어떤 요소와 구상이 반영되었나? 레노베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기존 전시 공간 이외에도 건물 내 전반에 시각예술의 공기를 불어넣기를 원하는 아트선재의 의지가 있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염두에 둔 건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의 벽과 지하층의 천장 두 장소에 서정적이고 시적인 성격을 내포한 벽화의 컨셉트를 순수추상 안에서 전개한다는 것이었다.3층의 작품들은 여러 버전의 사이즈, 그리고 무엇보다 곡선의 하얀 벽에 그린 그림과 캔버스에 그런 회화들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회화 그 자체’라는 질문의 또 다른 변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업의 아이디어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선 캐주얼한 분위기의 설치를 원했다. 상대적으로 정적인 캔버스 회화 세계와 어느 정도는 산만해 보이는 다른 성격의 작품 배치를 구상했다. 일종의 느슨한 풍경 같은 느낌의 앙상블로 가져가는 것을 계획한 거다. 종이에 담긴 생각이 캔버스 위에 실리고 어느 작품은 벽에 직접 그려졌다. 특히 벽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미술사에서 읽히는 것처럼 더 직접적이고 필연적이고 원초적인 느낌을 앞세우며, 촉각적인 표면을 만들어낸다. 아직 작품이 끝나지 않은 듯한, 설명하기 힘든 결핍으로 이어지는 이 벽화는 시각적인 ‘미완성 교향곡’에 비유하고 싶다. 이 중 가장 큰 사이즈의 작품 속 ‘jazz oder nie(jazz or never)’라는 문구와 다른 쪽에 걸린 오래된 풍경 엽서 한 장, 비스듬한 포즈의 인물 그림은 서로 해석의 미묘함을 허락하며 지난 시간에 대한 향수와 우수적 정서를 표현한 대목들이다.계단의 벽화, 그리고 3층의 페인팅에서도 사각형은 여러 색과 크기, 맥락으로 변주를 이루고 있다. 추상적 요소의 한 가지로서 ‘사각형’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계단 벽화의 사각형들은 핑크색으로 씌어진 ‘The Synthetic Flower Scent(인위적인 꽃향기)’라는 문구를 통해 사각의 색면들이 ‘향기’라는 대상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인위적인 꽃’이라는 단어를 통해 대자연에 반하여 2차적 창조라고 여겨지는 ‘아트’을 떠올려본 거다. 기하학적 기본 도형인 사각형이 캔버스 작품에 사용될 때, 그건 주로 사유 안의 어떤 단단한 형이상학적 구조물에 대한 알레고리나 상징에 가깝다. 하지만 3층 벽화에서 보이는 색이 없는 사각형들은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사고 안에서 부유하는 느슨함을 표현한 것이다.어느 소설가는 ‘삶이란 지루함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에겐 예술이 지루함을 이기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엇이 페인팅이라는 이 지난하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을 계속하도록 하는 건가? 어린 시절 지루했던 어느 날, 하늘 아래 매 한 마리가 선회하던 깊이를 알 수 없는 풍경이 떠오른다. 우주가 막연하듯 생각의 막연함에서 시작한 하나의 붓질이, 가끔은 매가 허공에서 가졌을 법한 자유로움이길 바라본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때로 수도원의 원칙처럼 담담하고 단조로운 형식 안에 있다. 난 페인팅이 하나의 우주일 수도 있다고 보는데, 이 페인팅이라는 코스모스 안에서 무중력에 가까운 느린 흐름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그 다음 작품을 구상하도록 만든다.다른 매체와 달리 회화는 엄연한 축적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 시대에 여전히 회화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2만 년 역사 안에서의 회화는 단순한 ‘흥미로움’ 이상의 영역이다. 땅바닥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것에서 진화하는 회화는 표현의 역사 아주 앞쪽에 자리한다고 본다. 선사미술이나 아이들의 그림처럼 프리미티브한 수준에서도 회화가 내면세계를 직접적이고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임을 입증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회화는 스스로의 힘과 가치를 이유로 그 중요성을 더할 것이며, 인간의 생각과 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그리는 형식 안에서 심도 있게 누적되리라 확신한다.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회화는 스스로의 힘과 가치를 이유로 그 중요성을 더할 것이며, 인간의 생각과 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그리는 형식 안에서 심도 있게 누적되리라 확신한다.‘무엇이 회화인가?’라는 주제는 다양한 시각으로 여러 시대의 작가들이 질문하며 표현해왔다. 당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거나 여전히 흥미로운 작가가 있다면? 타임라인에서 ‘The Story of Painting’이라는 영역을 만나면 각 대가들의 위치는 마치 하나의 장엄한 다리를 지탱하는 큰 바위와 같다. 하지만 4세기의 간격이 존재하는 15세기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19세기 폴 세잔이라는 두 작가의 회화를 이해하는 자세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새 지평을 열었다. 특히나 세잔이 그의 말년에 보여준 ‘Bather’ 연작은 여전히 내게 큰 영감의 대상이다.이 시대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나? 수세기 전 자연의 그늘 아래서 생각의 여유가 세피아 톤으로 묻어나던 시절의 향수는 서서히 엷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시대보다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더 높은 조감도에 일종의 힌트가 있다고 본다. 한 예로 미술관 작품에서 받는 정서적인 자극은 취향을 넘어 이 시대 일상의 자리에 다른 성격, 다른 빛깔의 사색을 가져온다고 믿는다.당신의 미학과 어울리는 음악이나 문학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와 재즈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쇼팽의 녹턴, 빌헬름 켐프 피아노 연주와 레너드 코언의 1970년대 곡을 들고 싶다. 문학에서는 호메로스의 와 , 에밀리 브론테의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그리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가 떠오른다.당신이 향하고 있는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작품의 표현요소가 서서히 순수 추상의 영역으로 기우는 성향을 가진다. 작품의 중심에 자리하는 기하학적 형상들을 한 발짝 더 감성의 세계와 연결시키면서, 추상회화의 스펙트럼을 한계점 안에서 몰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