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SAMA’S GARDEN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야요이 쿠사마는 50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수선화 정원’을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에 재구성했다. 작은 호수에 1천3백 개의 반짝이는 은빛 구가 떠 있는 드라마틱한 뷰는 이번 시즌 패션을 위한 완벽한 무대가 된다. | 야요이 쿠사마,글라스 하우스,필립존슨

야요이 쿠사마는 50년 전, 제3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Narcissus Garden(수선화 정원)’을 처음 선보였다. 그 작품은 두 개의 표지판과 함께 비엔날레의 주 전시관인 이탤리언 파빌리온을 수놓은 1천5백 개의 반짝이는 은빛 플라스틱 공으로 구성되었다. 표지판에는 각각 ‘수선화 정원 쿠사마(Narcissus Garden Kusama)’, ‘당신의 나르시시움 판매중(Your Narcisium For Sale)’이라고 쓰여 있었다. 실제로 비엔날레 사무국에서 상업적인 판매를 금지할 때까지 반짝이는 공은 방문객들에게 개당 2달러에 팔려나갔다.전설적인 일본인 예술가 야요이 쿠사마는 50년 전의 이 작품을 코네티컷 주 약 6만 평에 이르는 부지에 지어진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필립 존슨의 유작인 글라스 하우스에 재구성했다. 이 특별한 전시는 건축가 필립 존슨 탄생 1백10주년과 글라스 하우스의 대중 공개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열리는 특별전이다. 쿠사마는 50년 전과 같이 1천3백 개의 반짝이는 은빛 구를 작은 호수에 설치해 글라스 하우스 서쪽 면에 드라마틱한 뷰를 창조했다.“물에 떠 있게 했어요. 그 자체가 글라스 하우스의 일부가 되게 하면서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반사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죠.”쿠사마는 1960년대에 발랄한 색상의 물방울 무늬 작품으로 미니멀리스트와 팝아티스트라는 명성을 얻으며 몰입형 환경을 만드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여성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전시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그녀의 전시회는 인스타그램에서 늘 화제가 되었다. 재미있는 모양의 호박 조각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망각의 방에서 수천 개의 밝은 색 점을 붙이면서, 관객들은 쿠사마의 비전에 녹아들었다. 1929년 일본 마츠모토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1950년대에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당시에는 조지아 오키프의 아방가르드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던 때였다. 초창기 행위예술가로서 쿠사마는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예를 들면, 오로지 물방울 무늬로만 몸을 덮은 남녀 군사 무리를 UN과 자유의 여신상 앞에 배치하는 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주제는 ‘영원히 사랑하라’이며, 물방울 무늬는 ‘그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물방울 무늬는 우주와 인간,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것이며 태양, 달, 지구, 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방울 무늬의 아름다운 패턴을 엮어서 가장 깊은 사랑과 그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습니다.”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쿠사마는 글라스 하우스의 숲에 설치한 세 부분으로 된 작품에 물방울 무늬를 적용했다. 지난해 여름, 작업 팀은 유리 벽에 빨간색 비닐 점을 붙였고, 세 번째 요소인 ‘호박’이라는 제목의 조각 작품은 언덕 초원에 설치되었다.쿠사마는 걸어다니는 캔버스라 할 만큼 삶과 예술에 명확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에 물방울 무늬 의상과 일본 만화에 나올 법한 독특한 빨간 가발을 쓰고 다닌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스타일에 대해 묻자 “저 자신도 궁금해요, 어떻게 이런 스타일을 하게 됐는지.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예술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온 결과라기보다는” 저절로 그렇게 됐다는 것. 부분적으로는 특이한 옷차림 때문에 쿠사마는 패션계에서 예술적인 인물로 존경 받는다. 1960년대 후반에 그녀는 자신의 꿈을 펼치는 또 다른 수단으로 패션 회사를 설립했다. 그때 블루밍데일스 백화점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부티크에서 판매한 물방울 무늬 드레스는 시스루 스타일로 일부러 가슴이 보이게 재단된 디자인이었다. 2006년에는 획기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활발한 미술품 수집가인 마크 제이콥스가 정신질환 때문에 1973년부터 일본에서 지내고 있던 쿠사마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다.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도쿄에 있는 내 작업실에 왔어요.”라고 회상한다. 제이콥스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쿠사마는 제이콥스와 함께 루이 비통에서 도트 무늬의 발레 플랫과 팔찌, 핸드백 등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를 위해 루이 비통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에서 열린 쿠사마의 블록버스터급 회고전을 후원해주었다.두려움이나 걱정을 잊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해야 했고, 내 표현 안에 묻혀야 했으며 나 자신을 감춰야 했습니다.환각과 강박장애를 겪고 있는 쿠사마는 지난 39년 동안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서 살면서 매일 작업실에 다녔다. 그녀는 “내 병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어요.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일상적인 생각들을 내 예술 세계에 반영할 때면 좀 더 ‘인간적인’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지죠. 그런데 그러면 예술 활동이 점점 더 힘들어지니까 병원으로 돌아가서 쉬어요. 그리고 회복하고 나면 다시 작업실로 가서 치열하게 작품 활동에 몰두하죠. 그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한다.내년 2월이 되면 워싱턴 DC에 있는 허쉬혼 뮤지엄 & 조각 공원에서 야요이 쿠사마의 회고전이 열린다. 그녀가 50년 전부터 발전시켜온 ‘무한 거울 방(Infinity Mirrored Room-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이 전시된다. 압도 당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설치미술이며 많은 관객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거울로 된 벽에 진동하는 LED 조명을 비추게 설치한 어두운 전시실에서 45초 동안 무한한 공간이라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 2013년에 뉴욕의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회에서는 수천 명의 관객이 밖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줄을 서서 기다렸고 작년 개관한 L.A.브로드 미술관에서도 최고 인기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근사한 셀카의 배경이 아니라 우주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심도 깊은 사색을 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쿠사마가 늘 연구하는 주제이다. “우리 존재를 멈출 수도 없고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두려움이나 걱정을 잊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해야 했고, 내 표현 안에 묻혀야 했으며 나 자신을 감춰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