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럼앤포의 선구자적 취향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블럼앤포 갤러리는 아웃사이더이고, 선구자이며, 인플루언서이다. 그들이 1994년 첫 공간을 마련한 L.A.는 그 당시 현대미술에 있어 황무지나 마찬가지였지만 20여 년이 지난 현재, 미술계의 가장 핫한 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뉴욕과 도쿄에 새롭게 마련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들은 현대미술사에 독특한 획을 긋고 있다. 이토록 독자적인 발걸음의 비밀은 무엇일까. | 블럼앤포 갤러리,팀 블럼,제프 포

현재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1995년만 해도 서양에서 무명이었던 요시토모 나라의 첫 미국 개인전을 L.A. 갤러리에서 열었다. 역시나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카시 무라카미를 아트바젤에서 소개하여 서양 미술계에 충격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20대였던 1990년대 초반, 도쿄 미술계에서 4~5년 동안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함께한 작가들이 나와 같은 세대인 슈퍼플랫(Super Flat, 일본 전통미술, 애니메이션, 만화, 그래픽디자인, 대중문화 등을 함축하여 평면화한 일본의 현대미술 사조) 작가들, 요시토모 나라, 다카시 무라카미였다. 1994년에 L.A.로 돌아와 그들을 국제적인 미술 무대에 소개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1994년 산타모니카에 작은 공간의 갤러리를 열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이 유럽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L.A.에 갤러리를 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2009년에 L.A.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라 시에네가 대로(La Cienega Boulevard)로 이전한 갤러리는 2만2천 평방피트의 미술관 급의 공간이 압도적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컬버시티(Culver City) 아트 디스트릭트가 조성되었다. 도시개발자와 부동산개발자 모두에게 무척 고무적인 예지력 아닌가?(웃음) 그런가?(웃음) 그런데 솔직히 나는 L.A. 사람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계속 하던 미술 일을 이어간 것뿐이다. 나 역시 갤러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20여 년이 지난 현재의 L.A 아트 신이 이 정도로 커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L.A.로 미술이 모여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다. L.A.는 계속해서 성장해왔고, 미술계가 발전한다는 것은 도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20여 년에 걸쳐 이미 자리를 잡아왔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의 변화가 우리의 계획 또는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도시 전체적으로는 좋은 홍보가 되므로,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그렇다면 20년 만에 거꾸로 뉴욕에 새 갤러리를 열기로 결정한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나? 20년 동안 쌓아온 갤러리 프로그램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후원했던 작가나 미술이 뉴욕의 다른 갤러리를 통해 소개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일본의 모노하(1960~7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미술 경향으로 물건, 물체라는 뜻의 ‘모노(物)’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 돌, 점토, 철판, 종이 등의 소재를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제시하여 물성의 근본적인 존재성을 부여한다.) 같은 경우,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크고 이미 국제 무대에서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다른 갤러리에서 다뤄진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뉴욕에서 주로 전시한 작가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개인전을 처음 연 경우가 많다. 한국 작가로는 하종현, 윤형근, 권영우가 우리의 뉴욕 갤러리에서 첫 미국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 작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후 유럽 미술 운동인 코브라(CoBrA) 그룹을 설립한 네덜란드 미술가 카렐 아펠(Karel Appel)도 소개했고, 뉴욕 갤러리의 개관전으로는 주요 미국 미술가인 마크 그로첸(Mark Grotjahn)의 회고전 형식 미술관 전시를 기획하였다. 그로첸의 전시는 우리와 20년간 함께 일해온 L.A. 작가를 선보인다는 데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블럼앤포의 뉴욕 갤러리는 다른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첼시가 아니라, 전통적인 올드 마스터 또는 아시아 미술 갤러리들이 자리한 고풍스러운 어퍼이스트사이드의 타운하우스에 위치해 있다. 언제나 지역 선정이 남다르다. 이는 갤러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어퍼이스트사이드를 고른 것은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미 L.A.에 같은 기간에 여러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넒은 화이트 큐브, 미술관 같은 공간을 갖고 있다. 따라서 뉴욕과 도쿄의 갤러리에서는 관람객이 클래식하고 친밀한 경험을 하길 원했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마이클 버너 갤러리와 하우저앤워스 갤러리를 눈여겨보다가 결국 이 지역에 미국 내 두 번째 갤러리를 열었다. 예상은 들어맞아 이후에 펫첼, 글래드스톤, 사이먼 리 갤러리 등이 주변 타운하우스에 잇따라 개장하였다. 이 전통적인 동네에 새로운 현대미술 지역이 형성된 것은 멋지고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블럼앤포 갤러리가 홍콩이나 베이징이 아닌 도쿄에 오픈한 것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매우 놀라워했다. 우리가 만약 사업 자체만을 생각했다면 홍콩에 갤러리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과 문화에 중심을 둔다. 우리는 도쿄가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 문화, 음식 등 다방면에서 도쿄는 아시아의 뉴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많은 일본 작가들과 오랫동안 일해왔고, 현재는 한국 작가들과도 일을 하고 있다. 따라서 도쿄는 지리적으로도 유리하며 우리에게 갤러리를 열기에 매우 당연한 곳으로 받아들여졌다.당신들은 요시토모 나라, 다카시 무라카미 등을 세계적인 중견 작가 반열에 올린 것에 그치지 않고, 또다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2012년 전시를 통해 모노하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서양 미술계에 불 지폈는데 그 시작이 궁금하다. 나는 오랜 기간 앞서 말한 슈퍼플랫 세대처럼 나의 세대에 해당되는 작가들하고만 일해왔다. 이전 세대 작가와는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점점 미술사적인 호기심이 커지고 있을 즈음 L.A. 현대미술관(MOCA)에서의 다카시 무라카미 회고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때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였던 미카 요시타케가 박사 학위로 모노하와 이우환을 연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모노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나와 1991년부터 일해온 무라카미 작가도 본래는 일본 미술을 전공하였으며 지금도 전통 일본 미술에 많은 영향을 받아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아주 자연스럽게 모노하 전시를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블럼앤포 갤러리의 역사와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에 완벽한 서사였던 것이다. 모노하에 최초로 이론적인 토대를 세운 이우환과도 오래전부터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해왔기에 2010년 그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가 이우환의 첫 L.A. 개인전이었다. 우리가 오랜 기간 공들인 2012년 모노하 그룹 전시는 미카 요시타케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갤러리 역사상 가장 큰 전시였으며 그만큼 반응도 뜨거웠다. 이 전시는 우리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후 우리는 모노하 작가들 개개인을 더 연구하여 꾸준히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는 모노하, 단색화와 서양 미니멀리즘과의 각각의 관계에도 흥미를 갖고 각 작품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을 시도했고 앞으로도 구성할 예정이다.모노하에 대한 연구가 한국의 단색화로 확장된 것 같다. 2014년 조앤 기 미시건대 교수를 초빙하여 전시를 시작으로 ‘단색화(Tansaekhwa)’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해 꾸준히 미국 전시 및 세계 아트페어에서 단색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나는 이미 단색화에 대해서도 친숙했다. 1990년대 일본에 있었을 때 동경화랑이나 가마쿠라 갤러리 등에서 많은 한국 작가들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2013년 플라토미술관에서 다카시 무라카미 개인전 오픈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여러 한국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었다. 박서보 작업실에서 조앤 기 교수를 만나 단색화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만 해도 단색화가 국제적 수준으로는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최근 몇 년간 치솟은 인기를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놀라울 지경이다. 단색화는 미국에서 미니멀리즘이나 클래식한 미술 애호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주로 평면 페인팅이기 때문에 미적으로 더 잘 이해되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가격이 치솟고 각종 페어에서 너무 자주 선보여 소모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단기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제 미술계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더 전략적이고 현대미술사 내에서의 문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블럼앤포 갤러리는 최근 2년간 하종현, 윤형근, 권영우 작가 각각의 첫 뉴욕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그들의 예술세계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하고 있다. 올 11월에는 하종현 작가의 개인전을 L.A.에서 준비중인데 신작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 매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