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Art SCENE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오늘날 L.A.는 어떻게 현대미술의 ‘새로운 땅’이 되었을까? 몇 년 사이 새로 생기고 있는 억만장자 컬렉터들의 개인 미술관, 유럽에서 날아오는 갤러리스트, 개성 넘치는 공간 및 프로그램,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작가들. 드넓은 ‘천사들의 도시’를 종횡무진하며 L.A. 아트신의 인사이더들을 만나보았다. | LA,아트신,브로드미술관,LACMA

L.A. 아트 신을 돌아보기에 앞서1964년 영국 출신 데이비드 호크니가 도착했을 때 L.A.는 몇 개의 큰 고속도로 공사가 막 끝나고 있었다. 그는 고가도로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소리쳤다. “여기 사람들은 페인팅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피라네시(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18세기 이탈리아의 판화가)가 필요하다. 로스앤젤레스의 피라네시가 되기 위해 내가 왔다!”(Marco Livingstone, , 1981) 미국의 ‘새로운 땅’이었던 캘리포니아는 1960년대 개발에 박차를 가해 L.A.를 중심으로 동부의 뉴욕에 대척점을 이루며 무섭게 발전했다. 야자수가 늘어진 아름다운 해안과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 할리우드의 화려함. 이 천혜의 환경은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유럽 작가들은 물론 에드 루샤 같은 미국 방방곡곡의 작가들도 이 새로운 땅으로 끌어들였다.L.A.의 자유분방함과 특유의 에너지는 존 발데사리, 래리 벨, 폴 매카시, 제임스 터렐, 짐 쇼, 데이비드 살르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표현되었고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작가들의 성장에 비해 현대미술 현장의 발전은 뉴욕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그 간격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사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L.A. 미술계는 작가, 미술관, 갤러리 등 너나 할 것 없이 넓게 펼쳐진 땅 위에서 개척자 정신을 품고 가열차게 호황을 일으키고 있다. L.A.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목도하기 위해서는 직접 가는 것이 최선일 터, 여름휴가로 그곳을 찾았다.L.A.의 아트 신을 돌아보는 정해진 방법은 없다. 산타모니카, 컬버시티, 차이나타운, 할리우드, 다운타운 거기에 더해 코리아타운까지. 도시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이 모든 곳을 다 둘러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기름을 가득 채운 차가 필요할 뿐이다. L.A. 토박이인 아트 어드바이저 낸시 감보아조차도 일련의 변화 앞에서 평생 이 도시 주민이었던 사람들도 어리둥절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차고가 전시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고 그 건물 2층에서는 요가 클래스가 열려요. 헨리 테일러 같은 작가의 아파트에선 그가 큐레이팅한 다른 L.A.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죠. 다채로운 포맷의 전시와 이벤트, 해프닝이 도시 여기 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 L.A.에 온 지 6개월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아트 신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미술계 종사자들을 종종 보게 되죠. 저 역시 여기 사람인데도 엄청난 속도와 에너지로 변화하는 아트 신을 따라잡기 위해 매주 말 작가들 작업실로, 전시 공간으로 종횡무진합니다.”해머 미술관L.A. 미술의 입문으로는 해머 미술관의 전시가 안성맞춤이다. 미서부 대표 명문대학인 UCLA 소속 미술관인 해머 미술관은 학교의 훌륭한 미술 프로그램 및 영향력을 보여주듯 클래식 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범주의 예술을 망라하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는 3회를 맞이하는 비엔날레 전시로 L.A. 전역에서 활동하는 19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 작가, 특히 신진 작가들의 활동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는 26명의 작가들이 초청되었는데 해머 미술관 관장인 앤 필빈은 이번 전시가 “최신 예술의 국제적 종착지로서 L.A.가 얼마나 활력 넘치고 독창적인 도시인지 알릴 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작가들이 범주화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여주려 했다.”고 전한다. 이 비엔날레는 L.A.의 자선가이자 컬렉터인 얄&파멜라 몬 부부가 운영하는 몬 어워드(The Mohn Awards)와 함께 전시에 초청된 작가 중 세 명의 작가를 선정하는데 각각 상금 10만 불, 커리어 지원금 2만5천 불, 또 대중투표로 결정되는 대중공로상 2만5천 불을 지원한다. 올해에는 현대무용가인 아담 린더가 우승하여 시각예술의 지평을 무용과 퍼포먼스로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비엔날레와 몬 어워드는 L.A.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뿐 아니라 도시미술 공동체가 서로를 도우며 건강하게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Hammer.ucla.edu)브로드 미술관다운타운으로 넘어가면 L.A. 현대미술의 메카인 MOCA 길 건너편에 개장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벌집 모양의 브로드 미술관이 있다. 수십 년간 L.A. 미술에 후한 후원을 아끼지 않은 엘리 & 에디스 브로드 부부가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서 설립한 사립 미술관으로 관대하게 무료 입장을 제공한다. 신디 셔먼, 제프 쿤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가장 큰 컬렉션으로도 유명한 브로드 부부의 컬렉션은 2천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드 미술관은 작년에 개장하자마자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할 수 있는 무료 관람권이 이미 한 달 전부터 동이나는 등 평일 아침부터 입장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인스타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야요이 쿠사마의 환상적인 작품 ‘Infinity Mirrored Room’도 그 인기에 한 몫을 한다.(Thebroad.org)L.A.에 브로드 미술관 같은 개인 미술관이 또 하나 들어설 예정이다. 게스의 창업 가문인 마르시아노 아트 재단이 내년 초에 10억 평방피트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미술관 개장을 준비 중인 것. 1990년대부터 모리스와 폴이 컬렉트한 게스 아트재단 컬렉션 및 개인 컬렉션 도합 1천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MOCA 전 선임 큐레이터였던 필립 카이저가 큐레이팅하여 개관전이 열릴 예정이다.LACMA 그리고 MOCAL.A. 미술관의 쌍두마차로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모마(MoMA)에 각각 비교할 수 있는 LACMA(L.A. 카운티 미술관)와 MOCA(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가 있다. 라크마 현대미술부의 재릿 그레고리와 MOCA의 랑카 테터살은 젊은 여성 큐레이터라는 것 이외에도 뉴욕의 큰 미술관에서 굵직한 커리어를 쌓고 그 다음 행보를 L.A.로 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라 휘트니 미술관과 뉴 뮤지엄에서 경력을 쌓은 토박이 뉴요커 재릿은 L.A.에 온 지 벌써 5년이 됐다. “L.A.로 이사온 2012년에 게티 재단 후원의 일환인 ‘퍼시픽 스탠더드 타임’ 아트 페스티벌 중 라는 전시가 있었어요. 이 전시는 전후 현대미술사에 있어 L.A.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록한 40여 종에 이르는 출간물, 수십 개의 관련 전시, 순회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전까지 충분하게 인정받지 못한 L.A. 아트 신이 전 세계 이목을 끌며 로컬 프라이드를 갖는 기회가 되었죠.” 그녀가 L.A.에서 보낸 지난 5년은 도시의 현대미술 역사에 있어 가장 변화가 많고 흥미진진한 시기였을 것이다. 아직도 슈퍼마켓에 갈 때도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 적응되지 않으며 어떤 부분들은 여전히 뉴욕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느끼지만 그런 점들이야말로 재릿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라고 한다. “L.A.에서는 뉴욕에 비해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요. 그래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도 적고 사람들과 더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느끼게 되죠.”MOCA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인 랑카도 이에 동의한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뉴욕 모마에서의 4년과 하버드대 미술사 박사 과정을 거쳐 일 년 전 고향에 돌아왔다. 이렇게 신나는 격변의 시기에 고향에 돌아와서 기쁘다는 그녀는 이 지역 출신답게 L.A. 아트 신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논지를 펼쳤다. “L.A.는 우선적으로 훌륭한 미술대학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UCLA, 캘아트(California Institute of Art), USC 등 교수진들도 스스로가 작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을 다음 세대 작가가 될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며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미술대학들이 L.A. 미술 공동체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또 L.A.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며 전시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MOCA, 해머 미술관 같은 큰 미술관이 함께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더하며 소규모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더 알려지기도 하죠.”언더그라운드 미술관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32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작가 노아 데이비스가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미술관이 있다. 시애틀 출신의 데이비스는 17살 때부터 개인 작업실이 있을 정도로 젊은 시절부터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이다. 뉴욕 쿠퍼유니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L.A.로 이사한 그는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흐릿한 흑인 형체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카라 워커 같은 명성 있는 흑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이때 그는 그림을 넘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미술과는 거리가 먼 듯한 흑인, 라틴계 노동계층이 모여 있는 알링턴 하이츠에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가 여러 작가와 큐레이터들에게 이 공간에서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는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꾸준히 헨리 테일러, 윌리엄 포프 엘, 데이비드 헤먼스 같은 작가들의 초상화를 그릴 뿐 아니라 본인이 직접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였는데 2013년 제프 쿤스, 댄 플라빈, 온 카와라 같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재현해낸 전시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제프 쿤스가 사용한 것과 똑같은 빈티지 ‘후버’ 청소기를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 ‘크레이그 리스트’에서 70불에 구입하여 전시하는 등 고급 갤러리의 높은 문턱에 일침을 가하며 미술이 어떻게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그의 노력은 점점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마침내 2015년 노아 데이비스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 MOCA와 협업 프로그램을 체결하였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를 포함하여 앞으로 수년간 7천여 점의 MOCA 컬렉션 작품들을 언더그라운드 미술관 전시에 대여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미술관의 스태프들은 데이비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날카로운 전시들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흑인 인권 문제에 대하여 논의의 장을 제공한다. 미술관의 뒤쪽 정원에 나가면 이런 무거운 이야기는 잠시 잊게 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낮에는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햇살을 만끽할 수 있고 밤에는 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소담스러웠다. (theunderground-museum.org) 아트+프락티스에서 열린 알렉스 다 코르테의 전시 전경아트+프락티스아트+프락티스와 해머 미술관과도 앞서 말한 언더그라운드 미술관과 MOCA와 비슷한 양상으로 협업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흑인 지역인 레이머 파크에 있는 아트+프락티스는 아티스트 마크 브래포드와 자선사업가이자 컬렉터인 에일린 해리스 노튼, 그리고 사회운동가인 앨런 디카스트로가 만든 공간으로 L.A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해머 미술관은 이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해 각 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갤러리를 방문 하였을 때 아티스트 알렉스 다 코르테(alexdacorte.com)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전시장을 지키고 있던 흑인 직원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어요. 여기서 5분 거리에 아버지가 10여 년간 운영한 서점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곳에서 일을 도왔죠. 이 동네에 이런 전시공간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이곳에서 저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artandpractice.org)블럼앤포 갤러리L.A. 아트 신의 매력은 작가, 미술관, 갤러리 등 미술계를 이루는 여러 층위의 사람과 공간들이 균형 있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때 작가들을 발굴, 지원, 홍보하는 갤러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블럼앤포 갤러리는 1994년 산타모니카에서 한 칸짜리 갤러리로 개장한 이래 22년간 L.A. 미술계를 지키며 샘 듀란트, 데이브 뮬러, 데이비드 그로첸, 샤론 락하트, 안야 갈라치오 등 L.A. 작가들과 동고동락하였다. 현재는 2~3개의 전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미술관급 공간을 가진 명실상부 L.A. 대표 갤러리이다. 블럼앤포에서는 최근 논란이 된 카니예 웨스트의 프라이빗 1일 팝업 전시를 열어 카다시안 가족이 총출동하기도 하였는데 L.A. 문화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갤러리의 영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이벤트였다.(Blumandpoe.com)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L.A. 미술 성공신화를 공유하는 다른 곳은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일 것이다. 캘아트 출신의 유망한 조각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였던 코단스키는 2003년 차이나타운에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그가 처음 소개한 8명의 작가들은 그의 친구들로 반은 그가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코단스키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현재 라브레아 대로에 위치한 2만 평방피트의 아름다운 전시 공간은 두 건물을 합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성룡의 무술 스튜디오였다고 한다. 갤러리에 방문했을 때 전시장에는 L.A.에서 작업하는 루비 네리의 토기가 가득 차 있었다.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여신의 현대 버전인 그 작품들은 익살맞으면서 L.A.의 햇살을 한껏 머금은 듯 유쾌한 기운을 발산했다.(Davidkordanskygallery.com)M+B 갤러리이러한 대형 갤러리 이외에도 다양한 갤러리들이 L.A.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 지원하고 있다. M+B 갤러리에서는 정말 L.A.다운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애니몰’을 비롯한 5개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스타 셰프 비니 도톨로가 음식을 주제로 37명의 L.A.작가 작품을 큐레이팅한 것이다. 전시 기간 중 에드 루샤의 ‘선인장 오믈렛’, 해롤드 앵커트의 ‘프렌치가 아닌 벨기에 프라이’ 같은 레시피가 수록된 요리책을 판매하는데 여기에는 작가들이 직접 그린 그림도 삽입돼 있다.(Mbart.com)ltd 로스앤젤레스 갤러리본햄스 경매회사 옆에 위치한 ltd 로스앤젤레스 갤러리는 변호사 출신인 갤러리 관장 셜리의 흥과 정이 넘치는 성격을 보여주는 듯 자유분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 미술이 너무 좋아서 후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리 집 빈 방에서 작가 레지던시를 시작했어요. 타인을 집에 들이는 일이 얼마나 골치 아픈 건지 모르고 저지른 무모한 결정이었죠. 곧 그만두었지만 그 시도는 직접 갤러리를 여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16살인 제 아들은 저보고 최고의 도박꾼이라고 놀린답니다.” 지금 ltd 로스앤젤레스 갤러리에서는 전시장 내부에 L.A.의 살아 있는 전설인 DJ 로드니 빈전하이머의 1970년대 클럽 VIP룸을 재현하여 L.A.의 음악 신을 회고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실제로 전시 기간 중 스펜서 스위니, 로드니 빈전하이머, 알렉스 베케라가 직접 디제이를 하는 파티를 세 차례 열었고, 전시 클로징을 축하하는 바비큐 파티에서는 해머 미술관 전시 큐레이터이자 시카고 미대 교수인 함자 워커가 디제잉을 하기도 했다.(Ltdlosangeles.com)하우저 워스 & 시멜L.A. 내부에서뿐 아니라 유럽 메이저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L.A.에 둥지를 마련하는 것도 최근 몇 년간의 경향이다. 이는 대부분 유럽 갤러리들이 L.A. 출신 작가들과 오랜 기간 관계를 맺은 인연과 관련 있는 동시에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시장을 선점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까닭이다. 스위스 갤러리인 하우저 앤 워스는 6번째 갤러리 장소로 L.A.를 선택하여 MOCA 선임 큐레이터 폴 시멜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하우저 워스 & 시멜을 열었다. 하우저 워스 & 시멜은 다운타운 아트디스트릭트에 클래식한 은행 건물, 밀가루 공장 등 7개의 건물을 인수하여 미술서점, 북앤프린티드 메터라는 다기능 공간, 레스토랑, 넓게 펼쳐진 휴식 공간까지 겸비한, 무엇보다 미술관급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전시 공간을 마련하였다.(Hauserwirthschimmel.com)스푸르스 마거스바바라 크루거, 스털링 루비, 에드 루샤 등 L.A. 작가들과 오랜 기간 동안 일한 독일 갤러리 스푸르스 마거스도 라크마 미술관 건너편에 작년 봄 갤러리를 열었다. 갤러리 공동운영자인 필로메네 마거스가 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L.A.는 예술가의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한다. 이 도시는 뉴욕 또는 유럽의 다른 도시와 비교해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넒은 공간과 삶의 공간을 제공한다고 그들은 파악하고 있다. 도시의 문화적 학구적 수준이 높고 이미 꽤 많은 컬렉터 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컬렉터를 만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L.A.에 왔다는 것. 이 외에도 뉴욕의 마카로네(Maccarone), 매튜 마크스(Matthew Marks), 플로리다의 가블락(Gavlak) 갤러리들이 그 반열에 동참한 곳들이다.(Spruethmagers.com)프라즈 드라발라드프랑스 갤러리인 프라즈 드라발라드는 10여 년간 샘 듀란, 줄리안 호버 같은 로스앤젤레스의 자유분방한 작가들을 파리에 소개해왔다. 매년 L.A.에서 여름을 보내는 등 도시에 애정이 많은 갤러리 파트너인 르네-줄리앙 프라즈와 브루노 드라발라드는 “유럽에서는 관습 등 차려야 하는 격식이 있어요.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L.A.의 자유로움에 이끌려 이곳 작가들을 유럽에 전해왔죠. 우리는 항상 L.A. 아트 신에 속해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이 이곳 아트 신에 물리적으로 자리 잡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생각에 이번에 갤러리를 내려고 합니다.” 그들은 마침내 라크마 미술관 건너편에 갤러리 공간을 계약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Praz-delavallade.com)스키범 맥아더 갤러리L.A.는 가장 큰 한국인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 도시기도 하다. 특히 오는 2019년 양혜규의 규모 있는 회고전을 준비 중인 MOCA의 랑카 테터살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도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커뮤니티와 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듯 L.A.에서 한국계 인사들의 행보도 흥미롭다. 올해 맥아더 공원 근처에 스키범 맥아더 갤러리를 연 김기범은 10년여 간 뉴욕에서 미술법 변호사이자 소더비 인스티튜트의 아트비즈니스 교수, NEWD 아트페어 공동 설립 등 다채로운 이력을 쌓아왔다. 그가 뉴욕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L.A.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L.A.는 현재 미술뿐 아니라 음식, 패션 등 다양한 문화가 골고루 발전하고 있는 생기 넘치는 도시이죠. 현대에도 개척자 정신이 어느정도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전히 뉴욕에 큰 애정을 갖고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L.A.라는 새로운 곳에서 재미있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스키범 맥아더에서는 아직 L.A.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작가들을 위주로 소개하며 아티스트와 미술이란 것이 어떻게 전시되고, 어떤 맥락 속에 다뤄지며 또 순환되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통해서 여성 인권문제를 이야기하는 카르멘 위넌트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는 11월에는 한국 작가인 박민하의 첫 L.A. 개인전이 진행될 예정이며 내년 초에 NEWD 아트페어를 L.A.에서 진행하려고 계획 중이다.(Skibummacarthur.net)커먼웰스 앤 카운실L.A. 미술계의 ‘비밀 아지트’는 놀랍게도 코리아타운에 위치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영 청(Young Chung)이 운영하는 커먼웰스 앤 카운실이다. ‘비공식적 인디미술계의 리더’로 지칭되는 영은 인디미술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우리는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미술계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그렇다고 꼭 인디는 아니죠.” L.A. 코리아타운에서 자랐다는 영은 자칫 미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곳을 자연스럽게 선택하였다. “내 아파트의 거실에서 작가 갈라포라스 킴을 초대해 작업하면서 전시 공간을 시작하였습니다.” 2011년 현재 갤러리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방 한 칸에서 시작한 영 청은 꾸준한 노력 끝에 점점 공간을 넓혀 5년이 된 지금 꽤 널찍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자랑한다. 한의원과 스페인어 알코올중독 치료 모임 같은 다양한 가게들과 건물을 공유하는데 그 독특한 분위기조차 커먼웰스 앤 카운실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가 발굴한 갈라포라스 킴이나 케네스 탬 같은 작가들은 현재 해머 미술관의 전시로 이어져 유기적으로 작가들의 활동과 커리어를 쌓아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는 최근 L.A.로 쏟아지는 관심에도 일침을 놓는다. “L.A. 아트 신이 미디어 등에 소개될 때 글 쓴 사람들은 대개 뉴욕이나 외부 출신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 미술계를 갑자기 생긴 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공간을 운영한지도 어느덧 6년이 되었고 우리는 항상 여기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에요.”(Commonwealthandcou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