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Back Home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6년 9월 한 달 동안 강익중의 ‘집으로 가는 길’은 런던 템스 강 밀레니엄 다리 앞에서 영롱하게 빛을 내며 떠 있었다. 이 설치 작업으로 런던 현지에 머물고 있던 작가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나눴다. | 강익중,토털리템스

“죄송. 숙제가 너무 늦었죠? 지난 일주일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도 집에 가고 싶습니다. ᄒᄒ” 9월 초 강익중 작가로부터 받은 이메일이다. 런던 템스 강에 설치된 작품 ‘집으로 가는 길(Floating Dreams)’로 인해 숨 쉴 틈 없이 바빴을 그는 이 짧은 기사를 쓰겠다고 오타를 남발하며 밤낮 안 가리고 보내는 내 답변 요청에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랬을 것같이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2016년 9월 한 달 동안 강익중의 ‘집으로 가는 길’은 런던 템스 강 밀레니엄 다리 앞에서 영롱하게 빛을 내며 떠 있었다. 강익중은 매년 열리는 런던 시 주최 문화 페스티벌인 ‘토털리 템스(Totally Thames)’의 2016년 메인 작가로 선정되어 이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로 세 번째로 열린 이 축제는 9월 한 달 동안 약 68km 길이의 템스 강 주변으로 다양한 전시, 콘서트 등 문화 행사들이 열려 런던 시민을 포함한 많은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신생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행사에 실제로 참여한 관객만 2백60만 명이라니 벌써 런던 최대의 문화 축제가 된 셈이다.작년의 메인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중 조각을 만든 제이슨 디클레어 테일러(Jason DeClaires Taylor)였으며, 2014년에는 거대한 러버덕으로 유명한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의 커다란 하마 ‘Hippopo Thames’(2014)가 템스 강 위에 유머스럽게 떠 있었다. 덕분에 올해도 등 유럽과 영국의 대표 언론들은 물론 까지 이 축제를 소개했는데, 강익중이라는 이름과 아울러 ‘북한’ ‘통일’이라는 단어들이 기사 맨 앞 문단 혹은 메인 사진으로 실려 보도되었다. 영국 는 스마트폰에 빠진 현대인들은 길거리의 다양한 공공미술품들을 놓치기 십상인데 이 작품은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라며 특히 밤에 아름다운 그의 작품을 직접 보러 가라고 소개했다.‘집으로 가는 길’은 가로와 세로 70cm의 한지에 북녘 고향을 떠나온 우리나라 어르신네들이 그린 그림 5백 점이 높이 7m에 달하는 정육면체 등에 고스란히 나열되어 있고 위에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한 아이가 손전등을 밝히며 서 있다.“로봇으로 제작된 이 아이의 모델은 실향민 3세인 이수민(계성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고향 그림을 그리실 때 만난 70년 전의 바로 그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세계평화’와 ‘조국통일’이라는 꿈을 꾸는 작가 강익중은 작년 봄부터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과 함께 실향민들의 그림을 수집했다. 자신의 고향을 그림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처음에는 쑥스러워하고 어려워하던 이들이 결국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사무치는 감정을 작은 한지 위에 쏟아낸 그림들이다. “실향민 어르신들의 그림을 모으러 속초 ‘아바이 마을’을 찾았습니다. 고향 얘기를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우시니까 말씀을 듣던 통일부장관도 울었습니다. 실향민 어르신들의 그림을 모은다는 것은 결국 그분들의 말씀을 듣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익숙지 않은 크레용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보는 사람을 울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 감동적입니다.”지난 8월 30일 새벽, 바지선 위에 놓인 ‘집으로 가는 길’이 강 하류에 있는 로열 빅토리아 부두를 빠져나와 타워 브리지, 그리고 런던 브리지를 지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앞에 닻을 내릴 때 강익중도 그곳에서 작품 수집 및 현장 설치 등 많은 과정을 같이한 자원자들, 건축가들과 함께 눈물지었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루빅 큐브’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저는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유럽 난민과 우리 실향민은 나이와 모습, 이야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함께 풀어야 할 루빅 큐브 같은 숙제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작품입니다.”강익중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도 그의 한글 작품 ‘내가 아는 것(Things I Know)’(2010)을 통해 “남북이 풀리면 세계가 풀린다. 정말이다.”라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브렉시트, 테러 등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의 중심에 우리의 남북 문제를 넘어 유럽 난민들의 마음까지 품은 ‘집으로 가는 길’을 선사했다. “모든 강은 살아 있어서 우리와 똑같이 숨을 쉬고 말을 합니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면 모든 강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템스 강에 우리 어르신들의 희망의 그림 5백 점이 모였습니다. 이제 임진강은 우리를 나누는 분단선이 아니라 연결선이 됩니다.”뉴욕에서 부인, 아들 그리고 진돗개 허드슨 강(Hudson Kang)과 함께 살며 작업하고 있는 강익중은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의 2인전 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나가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9·11 테러 직후에는 뉴욕의 UN 본부에서 1백20개국 어린이들의 그림 3만4천 점을 모아 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들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빌바오의 구겐하임 박물관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등에 소장 또는 전시되어 있다. 난해하고 어두운 작품들이 ‘대세’인 현대미술계에서 강익중의 작품들은 ‘기쁨과 감사가 우리가 사는 별의 요술 암호’가 됨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작가의 소신 있는 작품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일깨우는 감동을 넘어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관객에게 아름다움 혹은 예술적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만이 예술가의 역할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북한’ ‘조국’ ‘통일’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우리 주위의 모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무뎌진 나에게 ‘집으로 가는 길’은 무지개를 보는 것 같은 경이롭고 따뜻한 울림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