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Reality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NEW Reality VR 작품은 그저 관객이 뛰어들어갈 수 있는 360도의 거대한 버블일 뿐일까? 혹은 우리의 의식을 질적으로 뒤바꾸는 새로운 경험인가? 어쩌면 VR은 그 모두일 수 있다. |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여의도 벙커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다.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고 고개를 들면 을씨년스러운 회색 천장뿐이다. 갑자기 등장한 파란 옷을 입은 여자. 불가항력적으로 그녀를 쫓아 화장실 바닥에 도착했다. 더럽고 낡은 타일 위에, 그것도 누워 있다. 곰팡이 잔뜩 핀 변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더니 서울역 앞이다. 좁쌀만큼 작아진 나는 비둘기 떼 사이에 제물처럼 던져졌다. 비둘기가 달려드는데,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황급히 VR 헤드셋을 벗어젖혔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그제서야 발을 땅에 딛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무슨 끔찍한 악몽인가 싶겠지만 이건 에서 미술 기반 공동체 파트타임 스위트(Part-time Suite)의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작품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체험 후기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회 안에 닻을 내리지 못하면서 느끼게 되는 폐허 같은 감정 상태를 떠올리도록 제작했다는데, 정말 그 의도대로다. 360도 시야는 열려 있지만 진짜 ‘나’의 자리는 은폐돼버린 극도의 무력감, 그건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공포였다. 환영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오감이 움찔하고 특히 가상 속을 헤매다 현실세계로 ‘점핑’할 때의 감정 대비는 어찌나 극명한지 머릿속이 얼얼할 정도다. 2014년 일본 아트타워 미토 미술관에서 아티스트 정연두의 VR 작품 ‘Blind Perspective’가 전시됐을 때 역시 관객들은 보다 날것의 감정을 내비쳤다. ‘Blind Perspective’는 단순 관람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3차원 공간을 걸어다니며 VR 속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약 16톤의 지역 쓰레기로 만든 조각품이 설치된 복도를 걷지만 가상현실 속에서는 울창한 숲을 산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연두 작가는 처음으로 쓰레기 더미이자 숲길 속을 걸었던 한 관객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걱정스러웠습니다. 관객이 이 VR 헤드셋을 쓰고 걷다 조각품에 부딪히진 않을지 염려돼 조심스레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께 첫 시연을 부탁 드렸습니다. 이분은 VR을 쓰고 잠시 신기해하다가 40m가량의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양쪽으로 뾰족한 쓰레기 조각이 있는 거리를 눈을 감고 걸어가신 셈이었지요. 그리고 다시 VR 헤드셋을 돌려주러 오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을 걸어가셨다가 VR 기어를 벗었을 때 보이는 쓰레기 조각품들은 그분에게 2011년 해일 이후 잔해가 잔뜩 뒤덮인 풍경을 연상시켰었나 봅니다. 아트타워 미토 미술관은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2011년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이바라키 현에 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아마 이 작품이 한국에서 전시되었다면 그 아주머니 같은 반응은 없었을 것입니다. VR이란 매체는 몰입도가 대단해서 신기한 매체로 읽혀지겠지만, 신기하기만 한 작품은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매체를 다룰 때에는 반드시 그 매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지금 아트 신에는 ‘신기하고’ 그래서 문제적인 작품이 쏟아진다. 아티스트 존 라프만(Jon Rafman)이 2014년 마이애미 아트바젤 위크에서 처음으로 VR 작품 ‘Junior Suite’를 선보이자 극명하게 갈린 평을 생각해보라. 작품의 무대가 된 마이애비 도빌 호텔의 어느 방, VR 기어를 착용한 채 발코니에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면 좀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방이 산산조각 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발 딛고 서 있는 발코니까지도 무참히 말이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의심했다. 이건 새로운 게임인가? 아니면 경이로운 걸작일까? 그보다 20여 년 앞서 1995년에 3D 컴퓨터그래픽과 소리를 이용한 가상현실 작품 ‘Osmose’를 공개한 샤 데이비스(Char Davies) 역시 온라인 아트 플랫폼 와의 인터뷰에서(위키피디아에 가상현실의 개척자로 소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이 과연 강력한 예술 매체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중요한 건 아티스트들이 기술을 이용한 예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윤창출을 부추기는 기업들을 넘어서 의미 있고 중요한 작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입니다. 시간만이 알려줄 수 있겠죠.”VR 예술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다. “예술은 시대정신과 함께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뉴욕의 뉴 뮤지엄 최초로 가상현실을 추구한 아티스트 레이첼 로신(Rachel Rossin)의 코멘트처럼 지금은 스마트폰과 타임라인 같은 가상의 소통이 주가 되는 때다. 우리는 스크린 앞에서 일상 대부분을 보내게 됐고, 매번 더욱 강렬한 자극을 갈구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가상과 현실이 혼재한 시대를 살고 있다. ‘Junior Suite’에 이어 작년 런던의 자블루도비츠 컬렉션에서 ‘Sculpture Garden’으로 관객들을 가상의 정원으로 초대한 존 라프만은 작품 캡처 사진과 함께 짧은 의견을 보내왔다. “예술이 현실을 하나의 사물로 포착하기 위한 시도라면 지금 현실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VR은 그런 환경에 부합하는 우리 시대 특유의 기술이자 완전하게 새로운 미학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이 매체를 점점 파악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 실험 중 하나로 그는 2016 베를린 비엔날레 9에서 동물들이 먹고 먹히는 생생한 광경을 선사하는 VR 작품 ‘View of Pariser Platz’를 선보였다. 지금 가장 핫한 디지털 매체인 VR을 통해 우리가 디지털미디어에 흡수되고 있는 현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지난 3월 런던의 개스웍스(Gasworks) 갤러리에서 열린 시드셀 마이네케 한센(Sidsel Meineche Hansen)의 전시 역시 매체의 속성에 의문을 품은 예다. VR 기어를 쓰는 순간 퇴폐적인 광경이 펼쳐지는데 어딘지 좀 낯설다. 성적인 특색이 강조됐음에도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몸과 몸, 그야말로 남녀할 것 없는 무차별적 사정의 향연이 포르노보다도 더욱 자극적이다. 작가노트에 따르면 이는 냉정한 시선의 결과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의 선두에는 포르노 산업이 있었다. VR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여성의 몸은 객체였고 이제는 그 객체의 재구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VR에선 페미니즘과 퀴어 담론, 비판적 시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매체에 대한 비판과 성적 행동주의를 담고 싶었다.”분명 VR은 열광할 만한 시대적 예술의 재료다.(아트 웹사이트 아트넷(www.artnet.com)에서 ‘Virtual Reality’를 검색하면 2백 개, 에서는 3백 개에 가까운 결과가 도출된다!) 역사상 이토록 생생하게 감각을 확장시키고, 아티스트의 의도에 적극적으로 인도했던 매체가 또 있었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에겐 의심이 필요하다. 2015년 전의 기획자이자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따지는 태도와 시각화된 태도가 만날 때 예술과 과학기술은 융합한다”고 했듯 새로운 매체의 정의엔 비평과 적절한 맥락이 공존해야 하는 법이다. 정연두 작가는 예술적 재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 더 나아가 미래로서 VR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기차의 영상을 상영했을 때 사람들은 현실 같은 착각과 극심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요즘 영화를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VR은 한동안 사람들이 신기해했던 그런 매체가 될 것입니다. 사진이 나왔다고 회화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동영상과 사진의 표현 방법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네마토그래피, 1950년대의 말하는 박스였던 TV가 그랬듯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읽는다면 헛웃음을 짓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마 당신은 별일 아니라는 듯 VR 작품을 실컷 즐긴 후일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