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R as ART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시적으로, 노골적으로, 전략적으로 혹은 절망적으로 게이 섹슈얼리티의 존재감을 담아낸 퀴어 아트의 짧은 히스토리. | 퀴어

최근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가 미국 네바다 주 사막에 10m 높이의 형광색 돌탑 조각작품 ‘Seven Magic Mountains’(2016)를 선보였다. 론디노네가 게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돌, 나무, 새, 물고기, 말 등 자연을 소재로 하는 론디노네의 작품은 전형적인 퀴어(Queer) 코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퀴어 코드에서 추출한 ‘다양성’의 논리를 좀 더 확장적인 영역, 자연에 접목시킨 ‘퀴어 아트’로 읽힌다. 퀴어 아트는 특정 시기를 풍미한 미술 사조도 아니고, 미술 운동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동성애자가 범죄자에서(적어도 일부 국가에서는) 평등한 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퀴어라는 정체성을 설정하는 울타리의 크기와 변화에 따라 퀴어 아트 역시 궤적의 좌표를 달리해왔다.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의 베를린과 1950년대 미국에서 퀴어 문화를 담은 미술작품은 연구자료로 활용됐다. 성소수자는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이들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하면서 퀴어의 특성이 주목 받게 된 것이다. 나치에 의해 짓밟히기 전 베를린의 번성한 게이 및 레즈비언 문화를 포착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동성애 인권운동의 선구자였던 독일인 의사 마그누스 히르시펠트(Magnus Hirschfeld)의 연구서에 대거 포함됐고, 1890년부터 1910년까지 시칠리아 섬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풍의 동성애 연출 사진을 찍은 독일 사진가 빌헬름 본 글뢰덴(Wilhelm Von Gloeden)의 작품과 미국 패션 사진가 조지 플래트 라인스(George Platt Lynes)의 남녀 누드 사진은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성 연구가 알프레드 킨제이(Alfred Kinsey)의 연구를 위해 수집됐다. 이후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남성 피트니스 매거진’의 형태를 띤 잡지가 적당히 가릴 곳만 가린 남성의 육체 이미지를 쏟아내며 게이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1950년대 도로변 가판대에서는 레즈비언을 묘사한 표지가 입혀진 레즈비언 삼류소설이 팔려나갔다.그러던 중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게이 바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서 LGBT 인권운동의 기원인 스톤월 혁명이 일어났다. 워낙 예고 없이 터진 사건인지라 기록 사진이 많지는 않지만, 주간지 소속 수석 사진기자 프레드 맥다라(Fred W. McDarrah)는 이 혁명 직후 스톤월 인 앞에 여러 게이들을 모아 놓고 축하의 셔터를 눌렀다. 이후 LGBT 작가들의 작품 혹은 LGBT를 다룬 이성애자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기록에 용이한 사진과 비디오부터 회화, 조각, 퍼포먼스까지 망라해 시적으로, 노골적으로, 전략적으로 혹은 절망적으로 그들의 삶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거리부터 침대까지, 주류문화부터 하위문화까지, 퀴어 아트를 둘러싼 울타리의 대대적인 확장이 진행된 것이다. 미국 레즈비언 작가 낸시 그로스먼(Nancy Grossman)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검은색 가죽을 씌운 두상 조각 작품을 제작해 하드코어 게이 성문화인 가죽 페티시와 사도마조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는 미국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찍은 일련의 사진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베트남 전쟁 반대, 인종차별 반대 등을 외치며 10대 시절의 일부를 거리의 방랑자로 보낸 로버트 메이플소프처럼 격동의 시기를 몸소 겪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남길 수 있는 사진은 중요한 매체였다. 피터 후자(Peter Hujar)는 자기 자신은 물론, 애인이었던 폴 텍(Paul Thek)과 데이비드 보이나로비치(David Wojnarowicz)를 비롯해, ‘뉴욕 지성계의 여왕’ 수전 손택(Susan Sontag), 일명 ‘워홀 슈퍼스타’였던 트랜스젠더 여배우 캔디 달링(Candy Darling), ‘드래그퀸’ 디바인(Divine) 등 지인을 촬영한 강렬한 초상 사진을 남겼다. 피터 후자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사진집 (1976)를 발간했는데, 손택은 그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피터 후자는 생생한 초상 사진은 늘 죽음의 초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말처럼 피터 후자의 흑백 초상에는 매혹적인 죽음의 빛이 드리워져 있다.이 죽음은 어떤 추상적 감정만은 아니었다. 피터 후자도, 그의 두 애인도 모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1980~90년대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이즈가 퀴어 문화를 송두리째 뒤바꾼 것이다.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의 수는 날마다 늘어갔지만 정부는 침묵했다. 정부의 치명적인 묵살에 저항하고자 1986년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에는 ‘침묵=죽음(Silence=Death)’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퍼져나갔다. AA 브론슨이 에이즈로 죽어가던 동료 펠릭스 파르츠(Felix Partz)를 촬영해 가로 6m, 세로 3m 길이의 기념비적 크기로 프린트한 작품 ‘Felix, June 5, 1994’(1994~99)는 에이즈 환자의 존재와 위기를 알렸다. 하지만 자극제에 굶주린 미디어가 배포하는 병환 짙은 에이즈 환자의 이미지까지 가세해 ‘에이즈’라는 낙인과 ‘백인 게이’라는 정체성을 동격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뉴욕의 뉴 뮤지엄, 히스패닉 현대미술관, 할렘 더 스튜디오 뮤지엄 등 3개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선보였던 전시 (1990)는 게이와 레즈비언 이슈를 오직 에이즈 카테고리에서만 다뤄 논란을 샀다. 퀴어의 울타리는 수정이 불가피했다.이렇게 늘 변두리로 밀려났던 퀴어 아트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작업에서 어떤 전환을 목격했다. 그는 1960~70년대 주류를 이룬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자신의 작품에 전용해 퀴어 아트의 정체성을 전복시켰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도발적인 퀴어 아트와 달리 대다수 관객의 눈을 어지럽히지 않는 미니멀리즘의 옷을 입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내러티브는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이었다. 그러나 물론 게이 코드가 매복하고 있다. ‘신화적인 작가’라는 미술사의 타이틀을 감히 더럽히지 않으려 비평계가 굳이 강조하진 않지만, 가령 밝게 빛나는 전구를 줄줄이 달아 발처럼 걸어 놓은‘Untitled (For Stockholm)’(1992)는 항문성교에 사용되는 섹스 토이의 모양새를 의태하고 있다.이성애자 작가의 퀴어 아트도 있다. 1989년에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은 에이즈 위기의 시대에 대한 발언으로써 뉴욕에 거주하는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전시 을 기획했고, 조각가 조지 시갈(George Segal)은 공공미술 작품 ‘Gay Liberation’(1992)을 스톤월 인 앞에 설치해 스톤월 혁명을 기념했다.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The Cremaster Cycle’(1994~2002), 모니카 본비치니(Monica Bonvicini)의 가죽 벨트, 찰스 레이(Charles Ray)의 단체성교, 폴 매카시(Paul McCarthy)의 버트 플러그(Butt Plug) 등처럼 자기 작품에 퀴어 코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경우도 있다. 이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퀴어 아트의 외연을 넓혔다. 퀴어라는 정체성 자체를 정립해야 했던 시기가 지나고 퀴어 아트 역사의 더께를 공고히 하는 작품도 나왔다. 그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전략도 이어졌다. 베트남 출생의 덴마크 작가 얀 보는 2012년 휴고 보스 상을 수상하고 2013년 이를 기념하는, 즉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을 기리는 개인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계 미국 게이 작가 마틴 왕(Martin Wong)의 방대한 개인 소품 컬렉션을 아카이빙해 펼쳐보였다. 자신을 매료시킨, 가까운 미술사의 주요한 작가를 다시 한 번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저명한 기관의) 포디움에 세움으로써, 서로가 공유하는 미학적 특성, 게이 정체성, 이민자 가정이라는 배경, 미술계에서의 위치 등을 묘하게 중첩시켰다. 결국 얀 보 역시 함께 그 포디움에 오른 셈이다. 이 오묘한 선 잇기, 선 긋기의 전략은 퀴어 아트의 정체성 확립, 확장,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지도 그리기는 퀴어 작가의 작품, 이성애자 작가의 퀴어 코드/문화 차용, 퀴어 작가의 퀴어 역사화 단계를 지나 퀴어 주체가 헤테로섹슈얼 진영에 퀴어 코드의 울타리를 치는 전략으로 넘어갔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덴마크관과 북유럽관에서 참여 작가 겸 큐레이터를 맡은 북유럽 듀오 작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북유럽관을 자살한 중년의 게이 컬렉터의 집으로 구성했다. 그의 컬렉션으로 여겨지도록 설치된 작품으로는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사이먼 후지와라(Simon Hujiwara), 톰 오브 핀란드(Tom of Finland) 등 게이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간 퀴어 아트로 해석되지 않았지만 두 큐레이터가 퀴어 맥락 안으로 끌어온 이성애자 작가의 작품도 있다. 관객들이 조나단 몽크(Jonathan Monk)의 ‘Maquette for a Giant Spinning O’(2006)에서 페니스 액세서리 콕링(Cockring)를 연상하고, 새 둥지 안에 흰 당구공 2개와 새빨간 당구공 1개를 놓은 기욤 비질(Guillaume Bijil)의 ‘Sorry’(1987)을 다른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최근에 존재감을 드러낸 젊은 퀴어 작가들은 더 이상 남과 여로 구분될 수 없는 섹스와 젠더의 넓어진 스펙트럼을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 1981년 출생의 게이 작가 라이언 트레카틴(Ryan Trecartin)의 영상에서 활개 치는 드래그퀸들, 1982년 출생의 트랜스젠더 작가 우 창(Wu Tsang)과 퍼포먼스 작가 보이차일드(Boychild)의 협업은 범성애(Pansexual), 무성(Sexlessness)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간 축적되고 논의된 퀴어 코드와 여전히 진행 중인 전 지구적 LGBT의 인권 운동, 이 두 요소의 접점에서 퀴어 아트는 지금도 그 울타리를 고쳐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