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루이스의 잔혹과 유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젊고 강렬한 영국 페인터가 출현했다. 과감한 컬러, 잔인한 구상으로 들끓는 커다란 캔버스를 들고 나타난 1980년생 데일 루이스(Dale Lewis). 그는 중세와 바로크 시대 그림 속, 선과 악의 상징적 지표와 드라마틱한 구성을 현대 도시의 비극과 결합시킨다. 백인 동성애자의 시선으로, 폭력과 범죄를 망각하는 도시의 이면을 블랙 유머로 뒤집는 그의 작품은 서늘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청담동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선보인 그를 만났다. | 데일 루이스,최앤라거,영국페인터

전시 타이틀이다. 짧은 기간이었겠지만 ‘서울의 거리’에서는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는지 궁금하다. 도착 첫날 밤에 갔던 장소들이 인상적이었다. 좁은 골목길과 작은 바들, 그 사이의 일렁거리던 많은 조명들이 마치 누군가의 삶이 상연되고 있는 듯했다. 낙원상가 뒤쪽의 골목에서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사람들이 자는 모습까지 보였다. 숨겨져 있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도시의 밤 문화가 동시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저 관광객으로 왔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을 마주치는 게 너무 즐겁다. 서울에서 벌써 열 가지 정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어떤 아이디어인지 얘기해줄 수 있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영국의 피시마켓과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서울이 좀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데일 루이스더 긴장감이 있다고 할까. 한쪽으로 가면 차에 치일 수도 있는 그런 상황들이 더 흥미진진하고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언가를 먹으면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방식도 좋다. 같이 시간을 즐기고, 함께 앉아 있는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 말이다. 어쩌면 그건 페인팅과도 같은 건데, 페인팅 역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다시금 지나가도록 한다. 그것이 페인팅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당신 작품이 지닌 색채나 구도, 내러티브 같은 요소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큰 스케일이 주는 에너지가 압도적이다. 이렇게 큰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나? 난 그림 그리는 순간이 가장 즐겁고, 페인팅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겨내고 성취한다. 사실 스케일이 큰 작품을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캔버스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2×4m 사이즈 캔버스를 주문하고는 찾아가지 않거나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걸 내 스튜디오에 가져다 놓았다. 나중에 그 캔버스에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고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마치 어떤 시그너처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그 특정한 사이즈를 통해 나를 인식하면서 다시 화면 속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커다란 사이즈 덕분에 사람들은 화면의 ‘바깥’쪽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 점이 큰 스케일이 주는 강렬함이라고 생각한다.당신 내면에는 페인팅을 향한 두려움보다는 타고난 대범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맨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15명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작업을 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자기 그림을 누군가 쳐다본다는 생각, 뭔가 어색하고 부끄럽다는 느낌들을 빨리 떨쳐내야만 한다. 페인팅은 그저 실수로 가득 찬 무언가일 뿐이다. 난 페인팅을 통해 온통 틀리고 실수투성이인 것들의 흐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흐름들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다. 물론 나만의 비밀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할 때 난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한다. 그런 점이 내 작품을 완전히 열려 있도록 만들어준다.오래된 그림들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양동이에 넣고 다 섞은 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든다. 앨리스 닐, 데이비드 호크니, 바스키아, 구스통 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마치 속임수처럼 녹아들어 있다.작품 안에 당신의 상상이나 기억, 어떤 사건에 대한 당신의 느낌 등 스토리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런 요소는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나? 난 나와 동떨어진 것들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관찰하면서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취하는 편이다. 신문으로 접하는 일들과 내 모든 기억들 중 마음속에서 튀어나와 전진하는 것들이 있다. 벌어진 어떤 비극적인 사건을 생각하면 무척 슬프고 화가 나고 불행한 감정이 드는데, 그런 감정들을 페인팅에 담는 게 중요하다. 내가 슬픈 감정을 느끼면 페인팅도 결국 비극적인 감정의 과정을 겪게 되고, 그것을 마주하기 위해서 내 감정을 내보내는 것이다.그렇다면 수없이 느끼는 감정들 중에서 작품으로 표현되는 건 어떤 필터링을 거치게 되나? 내 안에서 어떤 선택을 거치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갑자기 일어나고 다가오는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되돌아본다. 집에 있는 서재에서 옛날 그림들을 찾아보곤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때 본 그림의 구성이 떠오르는 식이다. 전에 봤던 그림에서 받은 영감이 떠오르면서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 걸린 ‘Hope Street’의 경우 20년 전 사건인데, 한참 후에 브론치노의 작품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을 보고 나서 사적인 스토리와 함께 만들어졌다. 나와 나 이외의 어떤 것이 점화되듯이 함께 스파크를 일으키는 거다.내셔널 갤러리가 당신 아이디어의 창구라는 인터뷰를 읽었다. 그곳의 옛 그림들이 당신을 사로잡는 이유가 뭔가? 내셔널 갤러리 세인즈버리 윙에 가면 많은 이탈리아 종교 제단화가 걸려 있다. 대부분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알려져 있지 않거나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지만, 그 삼면화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손이나 무릎이 잘리거나 심지어 잘린 사람의 머리를 테이블로 서빙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일면 무섭기도 하지만 종교를 주제로 한 그 그림들은 아주 명확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명쾌한 주제를 갖고 있는 그 이중적인 면이 난 무척 흥미롭다. 자꾸만 뮤지엄에 가서 그림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다.옛 회화 속의 구성과 상징들을 작품에 변주해내는 건, 회화적 전통의 줄기 안에 스스로의 작품을 위치시키려는 의지라고 봐도 될까? 흥미로운 질문이다. 난 미술사는 물론이고 페인팅이 이어져온 과정과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를 비롯한 그 누구도 과거의 이들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미켈란젤로나 브론치노가 될 수 없고, 그 그림의 일부일 수도 없다. 내가 50명이 넘는 옛 거장들의 그림을 보고 무언가를 가져오는 이유는 그들을 존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림들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양동이에 넣고 다 섞은 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든다. 마치 100% 나만의 스타일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앨리스 닐, 데이비드 호크니, 바스키아, 구스통 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마치 속임수처럼 녹아들어 있다.회화는 말이나 글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언어라고 생각한다.찰스 사치, 데이비드 로버츠 컬렉션이 주목한다는 사실은 당신 같은 젊은 아티스트에게 분명 좋은 신호일 거다. 이런 반응들은 당신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나, 아니면 부담으로 느껴지나? 스튜디오에 앉아서 10시간 동안 그림만 그리다 보면 사람들이랑 얘기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관심이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다. 다만 작업실에 더 이상 그림들이 남아 있지 않도록 내 그림이 팔리는 건 좋은 일이다. 10대 때 사치 갤러리에 가서 많은 아티스트의 그림을 보며 감탄하곤 했는데, 내 작품이 그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그림을 빨리 그리는 편인가? 그렇다. 하루에 한 점을 그리는데 14~15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그리기 전에 5일 정도는 계속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작은 드로잉을 그려보면서 구상한다. 한번은 모든 것이 완벽해질 때까지 한 작품에 3일 동안 매달린 적도 있었는데, 강렬함이랄지 어떤 거친 면모가 드러나질 않았다. 그건 내 흐름이 아니었던 거다. 삶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내 작업엔 결점들이 나타나야 하는데 오랫동안 그린 그림에는 그런 특징들이 사라지고 없었다.결점을 드러낸 완성이라는 지점이 오히려 더 어려운 상태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붓을 놓는 순간은 언제일지 궁금하다. 난 대개 시계 방향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쪽을 완성하면 다시 세워서 다른 쪽을 그리는 식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육체적으로 지치는 걸 느낀다. 완전히 소진된다. 모든 것이 카오스다. 모든 게 다 엉망이 되었을 때 그만둔다. 그리고 작업을 마치면 최대한 그 작업에서 떠나려고 한다. 충분한 내용이 들어갔다 생각하면 멈춘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하지 않는 건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다.페인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까? 모르겠다. 이미 대답을 하기 전부터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회화는 말이나 글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페인팅을 볼 때, 인터넷이나 다른 테크놀로지가 필요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 그런 게 진짜인(Authentic) 거다.우리의 환상과 달리 아티스트는 매우 규칙적이고 성실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어떤가? 8시에 일어나서 10시까지 스튜디오에 가서 일을 시작한다. 2시에 점심을 먹은 뒤 40분 동안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밤 8시까지 계속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자정쯤 잠에 든다. 이런 사이클로 주 5일 일을 한다. 어떤 날은 작업 때문에 주변이 지저분해지지만, 곧장 다음 날에는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림을 그리는 삶은 일면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게 사실이다. 늘 구상을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는 건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심리적인 부분이다. 엄밀히 말하면 준비라는 건 할 수 없다. 그저 많이 그리고 또 그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