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at the Museum: 백남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음악가, 철학가, 행위예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미학자, 산문가. 인간과 기술, 동양과 서양, 예술과 반예술 그 간극을 자유로이 줄 타던 영원한 청년. 세기의 예술가 백남준이 예술사에 남겨온 일련의 지점들은 결정적 탄생이자 문제적 사건이었다. 2016년은 그가 타계한 지 10주년을 맞이한 해로서, 작년 겨울을 기점으로 올해 연말까지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삶을 되돌아보는 회고전이 도미노처럼 열리고 있다. 관객으로 그의 작품과 마주하는 1차원적 감흥 그 너머의 순간을 찾아 <백남준 쇼>가 열리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 백남준

관람객 입장이 통제되는 어느 월요일. 일주일 중 단 하루 동안만 전시장의 모든 전원이 꺼진다. 화려한 네온 조명과 쿵쿵 울리던 음악 진동이 모두 멈춰버린다.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 외친 백남준의 서거 10주년을 기념하는 가 열리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스태프 열댓 명이 어둑한 동굴 같은 전시장으로 하나둘 은밀히 들어간다. 비디오아트 거장과의 접선을 시도하기 위해 우리는 그날 그곳에서 잠자고 있던 백남준의 작품을 모두 깨웠다. 총 5개의 방으로 구성된 전시장을 마치 탐험하듯 돌아다니며 아트와 패션의 궁극적 장면을 고대했다.‘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 불리던 백남준은 사실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신문도 거뜬히 들어갈 만큼 비정상적으로 큰 호주머니가 달린 셔츠, 헐렁한 청색 바지, 엉성한 멜빵, 싸구려 시계, 천으로 특수 제작한 신발. 누군가 그것을 지적하면 “내 식대로 만들어 입은 것일 뿐”이라 답했다. 심지어 그가 한국인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홈리스로 오해 받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정도. 그가 오늘의 촬영 장면을 봤더라면, 어떤 위트 넘치는 코멘트를 했을까?사람의 키를 훌쩍 넘긴 다비드 로봇, 허리춤 높이쯤 되는 꼭두각시 로봇 앞에서 글래머러스한 옷을 입은 모델이 포즈를 취한다. 작품과 닿을 듯 말 듯한 그 순간은 하나의 퍼포먼스라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인간화된 기술’ ‘인간화된 예술’이란 수식어가 붙는 백남준의 작품 앞에서 벌어진. 전시장 3번 방엔 백남준과 기념비적 행위예술을 함께했던 샬롯 무어만을 위해 만든 작품 ‘TV 첼로’가 있다. 이 둘은 음악과 섹스를 엮은 오페라 ‘섹스 트로니크’로 뉴욕의 법정에서 재판까지 받았다.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의 창립 멤버로서 과격하고 충격적인 행위예술을 펼쳤던 백남준의 관심은 차츰 텔레비전으로 넘어갔다. “나는 처음에 작곡가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미학자, 산문가였죠. 그리고 행위예술을 했지만 배우는 아니었어요. 심지어 나는 수줍음을 타기도 합니다.(웃음) 그래서 나는 TV를 연구했죠.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싶었던 거예요.” TV 브라, TV 십자가, TV 페니스, TV 안경, 숱한 작품 가운데 이번 전시에는 1백66개의 TV로 만든 거대한 거북이가 공개됐다. 디지털 공연연출 분야의 베테랑 디스트릭트(D’strict)와의 협업으로 펼친 미디어아트와 수백 개의 모니터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빛과 이미지가 바닷물결처럼 일렁였다. 언젠가 백남준은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들은 화면에서 끊임없이 깜빡이는 불빛을 보게 될 것이다. 붉은색... 기다리고 생각하라, 파란색... 빨리 하라, 초록색... 정상 속도로 하라, 오렌지색... 개인적인 속도, 하얀색... 음악 없이, 검은색... 음악, 아주 세게, 노란색... 음악, 천천히.”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 특별전 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10월 30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