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부산 상륙 작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이 물음 하나를 품고서 부산으로 향했다. 이례적으로 한-중-일 삼국 아방가르드 미술사가 수평선상에 올라 재조명 받았으며 다국적, 다인종 예술가들의 작품이 거대한 공장 안에 혼혈되어 있던 2016 부산비엔날레. 전위적이며 격정적이었던 그 현장 속으로. | 부산비엔날레,아방가르드

아수라장이었다. 엄숙한 전시장에서 괴성이 이따금 들려왔다. 바닥을 뒤덮은 구겨진 신문지를 밟으며 백발의 노인이 우렁차게 외쳤다. “레볼루션! 레볼루션!” 출구가 좁은 큐브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퍼포먼스 현장. 객석과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아 이불만 한 흰 천을 질질 끌며 지그재그 쫓아오는 일본 작가 호리 고사이를 피해 관객들이 도망 다니는 꼴이 되었다.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유명한 세계적 아티스트 오를랑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멀찌감치서 그 현장을 휘둥그레져 바라본다.2016 부산비엔날레 첫째 날. 단단한 각오로 출발했으나 이미 정신이 아찔하다. 벽에 걸려 있어야 할 그림(정복수 작가의 ‘바닥화-밟아주세요’)이 전시장 입구 바닥에 깔려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고 지층의 단면까지 딸려 있는 채로 뿌리 뽑힌 죽은 나무 한 그루(이건용 작가의 ‘신체항’)가 전시장 1층 전체를 압도한다. 평소 누구보다 아방가르드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농 던지곤 했던 내 인생. 여기선 입도 뻥끗할 수 없다. 장난이 아니니까. 똥, 구토, 누드, 경찰 연행, 동물 학대, 화폐 위조. 돋보기를 들이대면 저마다의 의도와 의미가 숨어 있겠으나 육안으로 봤을 때 수위 높고 자극적인 작품들이 눈에 먼저 띄었다.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란 타이틀로 열린 이번 부산비엔날레에는 23개국 1백21명의 예술인이 총 3백16점의 작품을 전시했으며, 이 여정은 11월 30일까지 계속된다. 지금까지의 장면은 ‘프로젝트 1’이 열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목격한 것들이다.통역기에서 4개 채널이 바삐 돌아갔던 지하 1층 기자회견장. 윤재갑 전시감독이 “한중일 아방가르드 연구자들이 역대 처음으로 모인 프로젝트”라고 운을 뗐다. 그의 왼쪽엔 베이징 민생현대미술관 부관장 구어샤오옌, 오른쪽엔 다마미술대학 교수이자 미술평론가 사와라기 노이가 앉아 있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한중일 5명의 큐레이터가 1960~80년대 삼국에서 자생적으로 피어난 아방가르드 미술을 조망했다. 구어샤오옌은 “중국의 전위예술은 중국 사회의 발전, 계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1976년 막을 내린 중국문화대혁명을 기점으로 사상해방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중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 그전까지 줄곧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던 미술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중국 전시관 입구엔 검은 돌로 입이 꽉 막혀 있는 왕거핑의 ‘침묵’이란 얼굴 형태의 조각이 놓여 있다. 그 옆으로 민중에 대한 억압을 잡지 발행으로 저항했던 예술가의 흔적이 유리관 속에 담겨 있다.관객을 인도했던 구어샤오옌이 그 일부를 읽어준다. “피로써 오랜 환상을 지울 수 없고 한순간으로 생명과 사망을 가를 수 없다.” 책을 찢어서 덕지덕지 붙인 황용핑의 ‘장서계획-의자’ 앞에 기자단이 잠시 멈췄다. 뒤샹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던 샤먼다다 주창자인 그는 중국 전통적 사상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했다. 세탁기 안에 중국과 서구의 예술을 한데 섞어버린 발상의 행위를 했던 적도 있다고. 중국의 또 다른 문제적 작가 쉬빙은 발정기의 수퇘지와 암퇘지 몸에 영문으로 문신을 새겨 교배시킨 충격적 퍼포먼스 ‘사례의 전환연구’를 펼쳤다. 동서양 문화가 말과 문자의 번역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 작업으로 이번 전시에는 당시의 현장이 다큐멘터리와 사진 형태로 공개되었다. 2층에서 3층으로 넘어가는 사이, 그 바통이 일본 큐레이터 사와라기 노이에게로 넘어갔다. 앞서 평면적이었던 시야가 보다 입체적으로 변했다. 수천 마리의 학으로 쌓아 올린 침↑폼의 ‘파빌리온’이 사람들을 한쪽 벽면으로 몰려서게 했다. 툭 건들면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커다란 무덤 앞에서 꽃 남방을 입은 사와라기 노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원폭 피해로 고통 받은 히로시마의 유령을 위로하고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종이학을 접었습니다. 이걸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죠. 고민거리였던 종이학 더미가 일본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양도되었습니다. 이따가 시간이 되면 무덤 안으로 꼭 들어가보세요.” 6명의 청년들로 결성된 침↑폼은 일본에서 전위미술을 펼치는 젊은 세대다. 일본의 전위예술은 전쟁 전과 후로 나뉜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모든 가치가 부정됐고 전위미술이 들어가는 중요한 입구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 일본의 전위미술 역시 중국처럼 일본의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이에 대한 반항으로 일부 작가들은 아름다운 것은 절대 그리지 않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기이한 그림들을 그렸다. 사와라기 노이는 오카모토 다로의 유화 ‘숲의 규칙’ 앞에서 “일본 미술사에서 부정하는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일본 지폐를 위조하여 감옥에 가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당시 저항정신과 급진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원폭사건 이후 일본에는 헌법이 생겼다. 헌법 제9조는 일종의 전쟁포기와도 같은 서약이었다. 야나기 유키노리의 인스톨레이션 ‘헌법 제9조’는 패전 후 일본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와르르 무너진 보드게임 젠가처럼 거대한 네온사인 막대기 위에 헌법 9조가 적힌 히라가나 글자들이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은 일정한 텀을 두고 점등과 소등을 반복한다. 전기가 꺼지는 순간은 원자력의 이면을 고민하게 하려는 의도다. 전력 없이 존재할 수 없었던 일본이 처참하게 붕괴됐던 그 순간. 사와라기 노이는 “부산 가까이에도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다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 창밖으로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국 섹션을 기획한 경기문화재단 뮤지엄 본부장인 김찬동 큐레이터의 강연이 시작되려던 참이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엔 ‘불온한 탈주’라는 부재가 붙어 있었다. 1960~80년대 기성 제도권에 이의를 품고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작가들을 소개했다. 이 시기는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캔버스 위에 철조망을 칭칭 감은 단색화가 하종현 화백의 작품 ‘무제 72- C’도 이번 기획전에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정치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언어였다”고 설명했다. 누드 퍼포먼스가 지금은 센세이셔널하지 않지만 1968년 강국진, 정찬승, 정강자가 존 케이지의 음악이 흐르는 실내 공간에서 펼쳤던 ‘투명 풍선과 누드’는 당시 상당히 도발적인 행위예술이었다. 여성의 육체를 판타지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에 일침을 가했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였다.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정강자 작가의 고증을 통해 다시 재연한 영상이 전시장에서 상영 중이다. 바람, 물, 불 등의 비정형적인 재료를 통해 ‘반개념’과 ‘비조각’을 다뤘던 이승택의 작품은 독립적 방에 따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재조명의 가치가 있다.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붙은 화판’, 나뭇가지에 종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종이 나무’, 철사로 감은 ‘묶인 돌’처럼 단순하지만 표현하는 바가 즉시 촉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강연이 끝나고 전시장 밖에서 나이 지긋한 노장들이 돌아가며 악수를 나누고 있던 장면에 눈길이 머물렀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살았던 아방가르드 최전선 작가들이 온화한 모습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이미지를 떠올리며 청바지, 검정 중절모, 긴 수염을 통해 단서를 찾은 성능경 작가. 그의 주변에서 우물쭈물 서성이다 용기 내어 말을 건넸다. 작가는 1층부터 3층까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단숨에 올라가 본인 작품 ‘신문: 1974.6.1 이후’로 안내했다. “두 달 내내 신문 기사만 오렸어요. 오려낸 쪼가리는 저기 아크릴 통에 넣고 다음 날 새 신문을 또 오려요. 오리는데 손이 발발발 떨렸어요. 잡혀갈까 봐. 그래서 오리고 나면 얼른 도망갔죠.(웃음) 정치적인 상황에서 파생된 정보라는 것은 결국 허구죠. 실제와 파생된 정보 사이엔 항상 괴리가 존재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내 행위예술에 근간이 되는 출발점이 됐던 작품이죠.”흰머리를 질끈 묶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전시장 곳곳을 누비던 김구림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종류의 작품을 전시했다. 김 작가는 기존의 대학교육을 거부한 채 독학으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설치작품, 퍼포먼스, 영화, 무용, 음악 등 전방위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1970년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사건이었던 ‘제4집단’을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결성해 당시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나 정부 당국에 의해 두 달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당시 이들의 행위예술은 미술전문지가 아닌 과 같은 대중잡지에 소개되곤 했다. 지난 7월엔 부산비엔날레 측 기획으로 김구림이 주축이 되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제4집단의 ‘기성문화와 장례행렬’ 퍼포먼스를 재연했다.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나를 빼면 우리나라 미술사 중간에 공백이 생겨요.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미워도 이번 전시에 나를 안 넣을 수가 없지.”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는 취업에 실패한 청년이 하루 동안 겪은 일들을 엮어놓은 작품이다. 1969년 당시 청계고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샤워기 앞에서 멍하게 물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 걸어가는 사람들, 담배 피우는 모습처럼 무미건조한 흑백 장면이 11분 동안 이어진다. 김구림 작가는 한국에서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으나 정작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은 후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테이트 모던에 그의 실험영화가 소장되어 있다.) 갤러리 아라리오 서울에서 김구림의 최신작으로 구성된 이 열리고 있다.(10월 16일까지)그날 저녁, 폭우를 뚫고 달린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뱉어낸 곳은 과거 고려제강 수영공장이 있던 자리다. 얼마 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F1963은 이번 부산비엔날레를 위해 ‘프로젝트 2’의 전시장으로 사용되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이곳은 약 3천 평의 대규모 공간으로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사각형으로 구멍이 뻥 뚫린 독특한 구조다. 개막식에 등장한 건축가 조병수는 “부산의 역사를 재현해보겠다는 의도로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오늘처럼 비가 내릴 때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개막식 축하 공연이 열린 무대와 객석엔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묶었던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재킷까지 벗어 던지며 춤을 추던 이탈리아 출신 아티스트 이벨리세 과르디아 페라구티의 격정적 몸짓 사이로 하늘에서 비가 특수효과처럼 내렸다. 객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카페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고 왼쪽의 브루어리 ‘프라하993’에선 체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과거 공장이었음을 알려주듯 어둑하고 먼지까지 그대로 쌓여 있는 F1963은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이번 전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의 예술인과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토론하는 비엔날레야말로 다중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형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윤재갑 감독의 기획의도와 맞닿아 있었다. 마침내 전시장 셔터가 올라가자 부산 지역 주요 인사들을 선두로 여러 사람들이 뒤엉켜 밀물처럼 우르르 돌진했다.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다국적 작가들의 여러 작품이 거친 공간 속에 서로 혼혈되어 있었다. 관람객의 밀도가 특히 높았던 구간은 냉소적 사실주의로 일컬어지는 작가 팡리쥔의 8미터 대형 회화가 걸린 곳이다. 그의 신작 ‘2014-2015’는 족히 1백 명은 되어 보이는 민머리 아기들이 저 멀리 있는 태양을 동시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그 뒤로 붉은 천막이 마치 놀이기구처럼 인공적인 바람의 힘에 의해 활짝 부풀었다 다시 쪼그라드는 설치작품 ‘Poppy’가 소음을 발생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방가르드한 배기팬츠를 입고 있던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 조로 파이글이 작품 옆에서 사진 찍는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귀비 꽃을 형상화한 작품이에요. 꽃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꽃이 피는 움직임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모습이죠. 꽃의 우아한 움직임은 때때로 난폭해 보이기까지 해요.”개막식에서 격정적으로 춤추던 그 아티스트가 이번엔 양손에 검은 채찍을 들고 찰싹찰싹 흰 벽을 세차게 때려대는 아찔한 퍼포먼스 현장을 지나 중국의 개념미술가 선샤오민의 대형 인터랙티브 설치작품 ‘Art History’ 앞에 당도했다. 중년의 작가는 회색 시집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책엔 이런 문장이 수백 개 있다. “Some say art is ○○○”. 빈칸에는 ‘Freedom, Drug, Sprit, Death’ 등 수백 개의 단어가 들어 있다. 중국어 통역사가 오고 있는 동안 그는 보디랭기지로 천장에 매달린 헤드폰을 써보고, 마이크에 대고 말도 해보고, 뒷벽에 글씨를 써보라며 무성의 언어를 열연했다. 마침내 말문이 트인 그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 들려주었다.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같이 논해보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예술에 대한 1천여 가지 정의가 나오더군요. 그걸 읽어서 음성으로 녹음했어요. 헤드폰에서 나오는 예술에 대한 정의 말고도 만약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기 있는 컴퓨터가 그 음성을 인식해서 종이에 자동으로 글자가 출력돼요. 비엔날레가 끝날 무렵 그것이 모두 모이면 예술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담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죠. 만약에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귀찮으면 저기 회색 벽에 붓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대해 써보세요.” 그래서 선샤오민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그 어떤 것.(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