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와 열대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너무 많은 정보 속에 살아 가는 요즘,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좋을 때가 있다. | NOHANT,DESIGNER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의 일기예보를 체크하는 습관이 있다. 늘 새벽 두시 즈음이니까 정확히 말해 오늘의 날씨다. 그건 언젠가부터 서울이란 곳에 혼자 살게 되면서 어머니가 챙겨주는 삼단우산이거나 기상 캐스터 못지않은 일기예보 브리핑을 듣는 귀찮음이 사라진 대신 갑작스레 쏟아진 비에 회사입구에서 넋 놓고 있었던, 소외된 감정에서 오는 조금은 쓸쓸한 습관이다. 내일은(아니 오늘은) 몇 년 만에 찾아온 살인적인 폭염경보, 열대야 기승, 외출자제라는 재난경보 아니 경고 식의 뉴스이다. 아직까지는 그런 갱년기 울화통 같은 더위는 아닌데 하며 이불을 배정도까지 덮고 누워선 열대야라는 단어를 자꾸 곱씹어본다.몹시 창피한 고백이지만 어릴 적 '열대야'를 '열대어'라고 알고 지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아주 아주 어릴 적 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방에 살았던 나는 뉴스에서 한강에 돗자리를 펴고 부채질을 하는(민 소매를 입고 반바지를 반쯤 걷어 올린) 서울사람들은 열대어의 출몰 정도를 기다리고 있는 구경꾼인줄 알았다. 후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열대야라는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무지한 상상력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기억이 있다. 다행히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진 않었다. 그 단어의 의미를 알고 나서부터 였을까 잠자리에 반듯하게 누워 열대야라는 단어를 듣게 되는 그 순간부터 속이 후덥지근해지고 내 몸 어디선가 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고 숨이 끈끈해지는 둣한 뒤척임에 시달린다.이런 '백치' 에피소드를 꺼내놓는 이유는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모름의 미학'때문이다. 반면, 모르고 사는 게 부끄러울 이 시대에 '필터 없이' 아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터넷 연예 찌라시에 솔깃 하는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일수도 있고, 베트멍이 제시한 쥬시 꾸뛰르 트레이닝 복에 구겨 신은 마놀로 구두를 매치한 여자가 거리에 넘쳐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수도 있겠다.우리가 '쿨함'이나 '힙함', '우아함'이 어떤 디자이너의 옷이나 혹은 그 동네에 있을 맛집 간판 정도로 정의 내려져 알고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한참 지나온 겨울, 친구가 새로산 검정 머플러를 하고 나온 적이 있었다. 3.1 필립 림이라는 브랜드였는데(지금은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겠지만 그 당시 만해도 편집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목에 숄처럼 내려뜨려 재캣 마냥 단추로 여밀 수 있는, 그리고 머플러 양쪽 끝에는 코트처럼 주머니가 하나씩 달려 있던. 그 당시 내 기억에는 조금은 획기적이었던 그런 머플러였다. 어디서 샀냐는 나의 질문에 “이거? 임필립이란 사람이 만든 건가봐.” 그가 말한 임필립은 철수 같은 존재였으리라. "임필립? 필립 림이 아니고?" "....(그게 뭔데?)" 물론 틀린 건 아니라며 둘이 한참을 깔깔댔었다.그 후로도 그 친구는 한동안 그 머플러를 코트 위에도 매치했다가 니트 입은 목에도 두어 번 감았다가 반팔티셔츠에도 걸치고, 그 머플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을 하도록 혹은 디자이너가 의도치 않고 생각하지 않았을 부분까지 잘 스타일링하고 다녔다.(물론 걸레를 목에 걸쳐도 간지나는 친구이다.) 그 머플러는 누구보다 훌륭한 임자를 만나 자유롭게 매달려 다니다 옷장 속에서 편안히 잠들었으리라. 그때 어찌할 바 모르게는 그 머플러를 내가 구매했었더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필립 림의 컬렉션을 찾아 스타일링 팁을 구하는 방법 밖엔 없었을지 모른다. 혹은 그 머플러에 매치된 풀착장을 구매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월급쟁이였던 그 당시에 감사할 따름이다.'"자연스러운 쿨함과 우아함은 옷을 입는 방법과 태도를 통해 표현된다"라고 말한 뎀나 바잘리아의 말처럼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새 옷도,새 구두도 아닌 바로 당신이 이 옷을 소화하는 태도이다.' 지난 7월호의 'New Swag' 기사에서 발견한 이 문장만큼 정확한 한방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쿨함'이나 '힙함', '우아함'이 어떤 디자이너의 옷이나 혹은 그 동네에 있을 맛집 간판 정도로 정의 내려져 알고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는 내가 그렇게 쿨해지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당장 이 옷을 구매하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스웨그'로 품어내는 구멍 하나 정도는 본질적으로 누구에게나 있다고 믿는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촌스러워지지 않길 바란다. 내가 추는 춤이 나를 위한 것이었으면 한다.오늘 산 비싼 구두가 내 발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것이 나를 위한 경종이었으면 한다. 또 다시 컬렉션 준비를 시작하며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알만한 디자이너의 컬렉션 자료와 신규 브랜드 론칭 현황, 경쟁 브랜드 협업소식, 그간 몇 년의 인기 제품 판매자료들을 슬며시 쓰레기통에 넣고 브랜드를 처음 론칭했던 5년전 8월,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절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차라리 열대야라는 단어를 몰랐었더라면 오늘 밤 뒤척이지 않고 잠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멍청한 생각과는 일맥상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