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디카! 방콕 초심자가 '아난타라 시암 방콕'을 고른 이유
처음 가는 이에게도, 여러 번 가본 이에게도. 방콕을 가장 편안하고 입체적으로 여행하는 일을 가능케 하는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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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 안 가봤다고 하면 지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왜? 몇 달에 한 번씩 출장 다니고 여행도 꼬박꼬박 챙기는 네가?" 그럴 때면 "글쎄,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화려한 루프톱 바의 야경, 북새통인 야시장, 거대한 쇼핑몰. 도시에 따라붙는 소란한 인상들에 좀처럼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바자 아트>기사를 쓰며 리크릿 티라바니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같은 태국 출신 예술가들에게 끌렸고, 최근 몇 년 사이 딥 방콕, 방콕 쿤스트할레 같은 미술 공간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궁금증이 커졌다. 수완나품 공항을 빠져나와 라차담리 로드에 들어선 순간 직감했다. 야자수와 툭툭, 알록달록한 건물과 매끈한 BTS 역이 뒤섞인 거리. 이 도시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
'가든 풀 빌라'에 자리한 프라이빗 풀.
풀장 및 테라스와 연결된 '가든 풀 빌라' 거실.
이미 가본 도시라면 첫인상에 따라 숙소를 고르면 되지만, 처음 가는 도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디에 짐을 푸느냐가 결국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 경험상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고층의 규격화된 숙소라면 인상은 금세 흐려지고, 반대로 로컬색이 너무 짙은 숙소에서는 잠자리를 가리는 탓에 방 안에서조차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내가 고른 아난타라 시암 방콕은 40년 넘게 라차담리 로드를 지켜온 호텔이다. 1983년 건축가 조지 윔벌리의 설계로 문을 열었고, 방콕의 랜드마크로 자리하는 동안 각국의 주요 인사와 여행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시암은 방콕 초심자인 내게도 익숙한 지명이다. 방콕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 고층 빌딩이 줄지은 거리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푸릇한 정원과 맑은 연못이 있는 로비가 정겨운 인상을 준다. 올해 5천만 달러를 들인 전면 레노베이션을 마쳤지만, 아난타라 시암 방콕은 새것으로 팬시하게 치장하기보다 태국 전통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Transformed. Timeless. Thai.'라는 슬로건 그대로다. 로비를 감싼 벽화는 태국을 대표하는 화가 아잔 파이분 수완나쿳트가 짜끄리 왕조 200주년을 기념해 손으로 그린 작품이다. 고개를 들면 천장 패널 19개에 태국 전통 사상 속 천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레노베이션 중에도 둘 다 세심하게 보존했다. 객실도 조화로운 무드를 따른다. 335개 객실 전체를 따뜻한 티크 우드와 실크, 수공예 디테일로 채웠다. 도착한 날 밤에는 도심에 자리한 호텔이지만, 소음 없이 오랜만에 고요히 숙면을 취했다.
낮에는 호텔과 연계된 툭툭 가이드 프로그램을 따라 방콕의 성수동으로 떠오른 딸랏너이 골목을 헤매고 차이나타운을 누볐다. 그러다 호텔로 돌아와 방에 들어서면 마음이 놓였다. 호텔이 일종의 '성소'처럼 느껴진 데는 이런 장식들이 한몫했다. 매일 저녁 6시면 로비에서 선셋 리추얼이 열린다.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며 리프레싱 티로 여독을 풀었다. 룸피니 공원과 에라완 사당은 호텔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다. 나는 주말 아침 공원 앞 시장을 한참 구경했고, 일행은 에라완 사당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물론 시암 파라곤, 센트럴월드 같은 쇼핑몰도 가깝다.
사실 호텔 밖을 나서지 않아도 할 일은 차고 넘쳤다. 가장 먼저 신청한 건 쿠킹 클래스 '스파이스 스푼스(Spice Spoons)'. 수업을 맡은 이는 레스토랑 스파이스 마켓의 총괄 셰프 악카윈 '푼' 핏라찻. 태국의 라이징 셰프로 꼽히는 그는 태국 네 지역의 요리를 한 장의 지도처럼 펼쳐내되, 전통의 강렬한 맛만큼은 타협하지 않는다. 거기에 파인다이닝의 정교함을 더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태국 음식은 극단적으로 짜고 셔요." 태국에 여러 번 가본 일행의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똠얌꿍을 만들었는데, 셰프는 간을 볼 때마다 라임을 더 짜 넣었다.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태국 요리는 결국 네 가지 맛의 균형이라고 했는데, 푼 셰프는 이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태국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 ‘스파이스 마켓’에서 팟 타이, 그린 커리 같은 태국 대표 음식부터 다양한 메뉴를 맛봤는데 실망한 적이 없었다. 이밖에도 선택지는 넉넉하다. 이탈리안 비스코티, 일식 신타로, 매디슨 스테이크 애비뉴, 남미 요리를 내는 길티 방콕까지 레스토랑과 바만 9곳이다. 그중 특별했던 건 아침 조식과 주말 샴페인 뷔페가 열리는 라운지. 연못을 곁에 두고 앉아 있으면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바를 좋아한다면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처음 이름을 올린 아쿠아 바가 반가울 것이다. 멀리 가지 않고도 만나는 매혹적인 선택지다. 오후의 허기는 로비의 애프터눈 티로 달랬고, 하루는 아쿠아에서 마무리했다. 호텔 연못을 누비는 귀여운 오리가 새겨진 시그너처 칵테일과 함께.
테크노짐의 최신 기구로 설비된 '시암 스포츠 클럽' 피트니스 공간 내부.
운동 후 회복할 수 있는 콜드 플런지와 사우나 시설.
다음 날 아침엔 무에타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격투기를 배우는 것은 오랜 위시리스트였는데, 호텔 안이니 쉽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 수업은 리노베이션으로 새 단장한 시암 스포츠 클럽의 야외 링 공간에서 열린다. 7살때부터 무에타이를 배워 온 코치들의 실전 수업이 흥미로웠다. 개운하게 야외 링에서 땀을 흘리고 나서는 실내 기구들을 하나씩 체험했다. 클라이밍 월과 기능성 트레이닝 존, 테크노짐 장비를 갖춘 피트니스 센터, 필라테스 스튜디오까지. 여행지에서 반드시운동을 챙기는 편이 아닌데도 짐에 마련된 기구를 하나씩 써보고 싶어졌다. 곳곳에 이용자를 배려한 디테일이 보인다. 콜드 플런지와 사우나를 갖춘 회복실은 물론, 레몬수와 단백질 바까지 마련돼 있으니 '럭셔리 프라이빗 짐'이라는 말이 어리는 공간. 바로 옆에 자리한 태국 전통 치유법을 바탕으로 한 아난타라 스파에서는 타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머문 ‘아난타라 스위트룸’ 외에도 눈여겨볼 객실이 있다. 태국 실크 하우스 짐 톰슨과 협업한 투 베드룸 '짐 톰슨 익스플로러 스위트'. 미국인 건축가 출신으로 1951년 태국 실크 회사를 세워 태국 실크를 세계에 알린 그 짐 톰슨이다. 디자인을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경험하기 좋을 것 같다. 나는 도심 한가운데서 휴양지 빌라처럼 지낼 수 있는 가든 풀 스위트에 완전히 반했다. 울창한 열대 정원과 전용 수영장(물론 넓은 풀장이 가깝지만) 안팎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따른다. 풀빌라 여러 개를 빌려 커넥팅해 쓸 수도 있어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야자수와 빛바랜 원색 건물들이 신성한 사원 곁에 서 있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깨끗한 골목 뒤에 소박한 노포가 숨어 있고(일행들은 방콕이 너무 깨끗해졌다며 아쉬워했지만), 툭툭과 오토바이와 차들이 저마다의 질서로 도로를 내달린다. 극단적으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겹겹이 포개진 도시. 그 사이에서 성소처럼 곁을 내어준 숙소 덕분에, 방콕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자꾸 늘어간다.
Credit
- 사진/ 마이너 호텔 그룹
- 아난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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