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도예가 박종진의 작업
도예가 박종진의 작업실에서 포착한 작가의 작업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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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은 것은 무너진다
확실한 의지와 불확실한 우연, 통제와 붕괴 사이에서 도예가 박종진(Park Jongjin)이 일궈낸 포용의 도예.
박종진은 백자 슬립(porcelain slip, 흙물)을 먹인 키친타월을 한 장씩 쌓아 올린 뒤 가마에 넣어 태운다. 종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주름과 결만이 도자기의 형태가 된다. 한때 백자에 갇혔던 청년은, 영국 카디프에서 물레와 흙을 빼앗기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도예를 다시 만났다. 지난 12년 동안 그는 계획대로 나오지 않는 형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다. 쌓는 일은 통제하되 무너지는 일은 가마, 즉 불이라는 우연에 맡긴다. 작가는 이 태도를 “의존과 의지”라고 부른다. 불의 작용에 다시 한번 기대어보는 것, 그렇게 나온 결과를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는 것. 그렇기에 무너진 형태도, 찢어진 조각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쌓은 것은 잘 무너진다.
(1) 작가는 여전히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간다.
」
프리즈 기간에 맞춰 까사 로에베 서울을 위해 제작한 벽면 작업.
로에베 재단 공예상 대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축하 인사가 쏟아지기 전, 찰나에 스쳐 지나간 솔직한 감정이 궁금해요. 떨리면서 무서웠어요. 엄청난 기회이지만 동시에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항상 그다음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수상이 확정된 순간에도 기쁨보다 ‘이제 매체에 소비될 텐데, 다음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정작 발표되고 나서는 오히려 어리둥절했고요.
수상 이후 인터뷰나 대외 활동으로 일상이 꽤 분주해졌을 텐데요. 소란함 속에서 꼭 지키는 나만의 일상이 있나요?
가족과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걸 지키려고 해요. 맞벌이라 아내와 아이 등·하원을 나눠 맡고, 아이를 씻기고 함께 먹고 재워요. 밖에서 낯선 관심을 받다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 ‘나는 별거 아닌 사람이야’ 하고 스스로 느끼게 돼요. 그 평범함 속에 나를 두는 게 중요한 균형인 것 같아요.
(2) 백자로 상을 받고도 백자 안에 갇혔던 청년 작가는 물레와 흙을 버린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도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작업실에서 실제 작업에 몰두할 때는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냥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수많은 길 중 도예를 평생의 작업으로 결정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는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는데, 입시 결과가 도자공예였어요. 대학교 3학년 여름, 가구 브랜드 헤펠레(Häfele)에서 연 대학생 워크숍에 참여해 처음 제대로 나무를 접한 적이 있어요. 막연히 목공은 흙처럼 자연 친화적인 재료일 거라 상상했는데, 실제로는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하고 엄격한 세계였어요. 그때 알았죠. 나는 이미 흙에 적응된 사람이라는 걸요. 도예가 나의 천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우연히 흙을 만지게 됐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한국에서 작업을 이어오다 2013년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로 훌쩍 떠났어요. 당시 어떤 갈증이나 고민이 유학이라는 선택으로 이끌었나요?
백자 작업으로 광주백자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는데, 오히려 그게 제 발목을 잡았어요. 상을 받은 뒤 1년 넘도록 작업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죠. 크기만 커졌을 뿐 완전히 갇혀버린 거예요. 그러다 우연히 BBC 다큐멘터리 <Ceramics: A Fragile History>를 봤어요. 영국 도예의 근원부터 현대까지 다룬 3부작이었는데, 풍부한 문화를 가진 영국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을 찾았을 때 달항아리를 마주한 후 “나는 행복을 안고 돌아갑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그 문장을 영국 유학을 위한 저의 스테이트먼트에 첫 문장으로 가져왔을 만큼, 당시 백자에 몰두한 내게 와닿는 이야기였어요. 리치가 조선 땅에서 느꼈을 그 감정을, 나는 반대로 영국에서 느껴보고 싶었어요.
박종진 작가의 작업은 흙물을 입힌 키친타월을 겹겹이 쌓아서 만든다. 키친타월을 뜯어 밑작업을 하고 있다
카디프는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시도를 많이 권하는 곳으로 유명하죠. 그곳에서의 시간이 도예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바꿔 놓았나요?
첫 수업에서 피터 캐슬(Peter Castle) 교수님이 무슨 주제를 하고 싶냐고 물으셔서 컨테이너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어요. 내가 만든 항아리를 보면서 “너가 생각하는 컨테이너가 뭐냐”고 다시 물으셨죠. 그러곤 눈앞에 걸레, 주전자, 종이컵 세 개를 내려놓으며 “이것도 모두 액체를 담을 수 있으니 컨테이너 아닐까?”라고 말했어요. 형태와 재료의 선택지를 좁혀가는 사고 훈련 없이 그저 익숙한 걸 답습하겠다고 온 거라면 굳이 유학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고 하셨죠. 뼈아프지만 백번 맞는 말이었어요. 교수님은 물레를 치우고 흙조차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대신 박물관에 3시간 동안 머물며 익숙한 이미지 10개와 낯선 이미지 10개를 찾아오라는 과제를 줬죠. 유물만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과 공간까지 모두 관찰 대상이라고 하면서요. 그렇게 나를 완전히 낯설게 만드는 훈련을 거치는 동안 도예가 담아야 할 대상보다 도예를 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질문하게 됐어요.
기법은 완전히 새로워졌지만, 형태를 불과 중력의 흐름에 맡겨두는 태도는 달항아리의 자연스러운 철학과 닿아 있는 것 같아요. 한국 도예의 뿌리는 지금 작가로서의 자신 안에서 어떤 자양분으로 흐르고 있나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강진, 부안 가마터에서 나온 도자 파편을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도예 석사 전공자를 찾았어요. 마침 조건이 맞아 1년 반 동안 학예사 선생님 아래에서 미술부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죠. 사실 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그전부터 있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경기도자박물관에서 발굴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고요. 전통 도예의 뿌리를 연구하던 그 시절이 내 정체성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내 작업의 근원이기도 하고요. 그때 과거를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았다면, 의미 있는 것과 무의미한 것을 구분하는 감각을 기를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물레로 항아리를 만들지 않지만, 여전히 서울여대에서 학생들에게 기초 물레를 가르쳐요. 내 작업 방식을 그대로 주입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 스타일을 찾게 하기 위해 도예의 기본부터 하는 거예요.
(3) 흙을 쓰지 말라는 스승의 말 한마디가 12년째 이어지는 실험의 시작이었다.
」
가마에서 나온 작업의 표면을 갈고 남은 부스러기.
낯선 환경에서 흙과 종이라는 뜻밖의 일상 재료를 고르셨어요. 흙물과 종이를 결합해보자는 생각은 어떻게 처음 떠올랐나요?
유학 시절 교수님이 한 학기 정도는 흙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작업을 흙으로 국한하지 말라는 거였죠. 그때 마침 책상 위에 무료로 받은 잡지가 있어 낱장으로 뜯어 구겨가며 형태를 만들어봤어요. 온전히 종이만 사용한 거죠. 처음엔 도자와 접목할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러다 마트에서 키친타월을 발견했는데, 물에 적시니 형태가 잘 잡히고 약간의 투광성도 있었어요. 램프 갓 위에 씌워봤더니 느낌이 좋더라고요. 학교 작업 공간 한쪽에서 키친타월을 이용해 텐트를 만들어봤어요. 천장에 실을 늘어뜨려 구조를 잡고, 그 사이를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기와처럼 한 장씩 얹어 쌓았죠. 본드 없이 물로만 붙였는데 건조되고 나니 종이가 서로 엉겨 붙으며 단단하게 굳었어요. 그 순간 이걸 흙으로 옮겨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처럼 키친타월이라는 재료에 안착하기까지 수많은 종이를 실험했을 것 같아요. 가마에서 부서지고 터지는 과정을 지나며 “이 종이다”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신문지는 오일 성분 때문에 흙물이 표면에 들떴고, 휴지는 너무 얇아 다루기 어려웠어요. 결국 키친타월이 유일한 해법이었죠. 구웠을 때 종이는 타서 사라지며 다공질 구조가 남는데, 그 덕분에 표면을 갈아내는 가공이 가능했고 지나치게 두껍거나 딱딱해지지도 않았어요. 문제는 처음 구워냈을 때 너무 쉽게 부서진다는 거였어요. 고민하다 주변에 있던 대패로 표면을 한번 긁어봤는데, 면이 매끄럽게 갈리면서 정돈되더라고요. 작은 전동 공구로 마감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숱한 시행착오 속에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만의 기법을 끝까지 밀어붙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신기하게도 이 작업을 시작한 뒤로 ‘잘못됐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가마에서 나온 결과물을 내가 의도한 걸 실현한 것이 아니라, 발굴된 유물이나 우연히 찾은 물건처럼 바라보거든요. 만들 때는 내 의도가 있지만, 불에 구워져 나오면 그 의도와 상관없이 변형되잖아요. 나무를 다루는 목공예가의 심정과 비슷해요. 목공예가가 나뭇결과 상태를 관찰하며 어디를 더 깎고 어디를 살릴지 조율하듯, 나도 그 변형된 결과 안에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지를 살피는 거죠. 로에베 재단 공예상 1회 대상 수상자인 에른스트 감펄(Ernst Gamperl)이 그런 태도를 잘 보여주는 작가예요. 태풍에 쓰러진 나무처럼 이미 주어진 재료로 작업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변형을 오히려 작업의 내러티브로 끌고 와요. 재료에 순응하면서 그 안에서 최선을 찾아내는 태도가 좋아요. 예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왜 달항아리는 저렇게 비정형으로 무너진 형태인데 깨지 않고 남겨 두었을까, 왜 그걸 좋다고 판단했을까. 저는 완전히 찢어진 작품도 일단 두고 봐요. ‘저런 대로 좋다, 언젠가 다르게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그런 태도가 없다면, 자꾸 전통적인 통제 방식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 같아요.
(4) 공들여 쌓은 것을 스스로 무너지게 둔다. 그의 도예는 완성이 아니라 결과를 유보하고 끝내 포용하는 태도로 완성된다.
」
박종진 작가의 도예에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과감한 색감이 돋보인다. 색에 대한 영감은 주로 그가 좋아하는 축구팀의 유니폼에서 얻는다.
수천 장의 종이를 한 장씩 쌓는 일은 지독한 노동과 정성을 필요로 하잖아요. 그런데 완성작은 마치 지층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긴장감을 품고 있어요. ‘공들여 쌓는 일’과 ‘자연스럽게 무너지게 두는 일’은 각각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쌓는 일은 철저히 내 통제 아래 있는 노동이에요. 종이 한 장에 슬립(흙물)을 발라 얹는 과정은 정성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반면 무너지는 일은 가마, 그러니까 불의 영역이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최대한 결정을 미루는 편이에요.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내 기대 이상으로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요. 그래서 가마에 넣을 때 결과를 미리 규정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일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고민을 최대한 붙잡고 있는 편이거든요.
1200℃가 넘는 가마 안에서 형태가 어떻게 변할지는 사실 불의 몫이잖아요. 완벽히 통제하려 하기보다 결과를 불에 맡겨둘 때, 어떤 감정이 드나요?
‘잘 무너진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일종의 의존이자 의지예요. 가마라는 작용에 다시 한번 기대어본다는 뜻이죠. 나 스스로 작업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겨요. 그래서 협업할 때 내 고집보다 상대의 역량을 빌리는 쪽을 선호하고요. 불도 마찬가지예요. 불이 만드는 우연을 신뢰하고, 그 우연에 기대보는 거죠. 불 조절로 산화와 색감을 조절할 수 있지만, 형태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무너질지는 내 경험 밖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가마 앞에 설 때 늘 기대와 긴장이 함께 와요.
가마 문을 딱 열었을 때, 애초 생각과 다르게 주저앉았는데도 이거라고 알아차리게 되는 작가만의 순간이 있나요?
확신으로 알아채기보다 오히려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순간에 가까워요. 학부 시절 기초 도자 수업 때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마지막 날 비닐을 잘못 덮어 제작 중인 작품이 다 말라버린 적이 있어요. 남은 시간은 딱 4시간. 그래서 흙을 그냥 주물러 대충 얹었어요. 발표할 때 이렇게 말했죠. 30시간이 주어졌다면 30시간의 공력이 보여야 좋은 작업이지만, 내게는 4시간밖에 없으니 4시간이 보이는 작업으로 만들었다고요. 그게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지금 가마에서 예상과 다르게 무너진 형태를 마주할 때도 비슷해요. 계획과 달라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이 순간의 결과라고 수용하는 편이에요.
작업실에서의 박종진 작가. 로에베 재단 공예상 대상을 수상한 후 로에베에서 선물로 받은 셔츠를 착용하고 있다.
보기엔 나풀거리는 종이나 부드러운 패브릭 같은데, 만지면 차갑고 단단해요. 이런 ‘감각의 배반과 착시’를 마주한 관객이 어떤 표정을 짓기를 바라나요?
도자 역사에서 흙이 다른 재료를 흉내 내는 ‘미미킹(mimicking, 모방)’은 오래된 전통이에요. 옛날에는 값비싼 옥이나 금속을 대신해 흙으로 그 질감을 흉내 냈다면, 나는 반대로 접근했어요. 종이는 흙보다 훨씬 흔하고 평범한 재료잖아요. 종이가 가진 취약성,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성질을 흙으로 영속시킨다는 개념인 거죠. 관객이 내 작품 앞에서 도예와 천 사이에서 헷갈려 하다 직접 만졌을 때의 무게와 단단함에 다시 한번 놀랐으면 좋겠어요. 그 감각의 배반이 작품 제목이기도 한 ‘착시’예요. 평범하고 사소한 재료가 예술적인 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각색될 수 있다는 걸, 그 낙차를 통해 느꼈으면 해요.
도예라고 하면 보통 ‘무언가를 담는 그릇’을 먼저 떠올리곤 하죠. 쓰임을 과감히 덜어내고 순수한 조각의 언어로 나아갈 때, 마주한 고민은 없었나요?
도예는 리서치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했어요. 훗날 이 시대의 공예를 돌아볼 때 ‘이런 장르가 있었다’고 한 줄, 사진 한 장이라도 언급되는 작업이면 좋겠다는 게 목표예요. 그러려면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작품의 영역으로 이해되어야 하니, 판매를 의식한 타협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어요. 교육자가 되는 게 꿈이었던 것도 컸고요. 나는 좋은 작업을 하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요.
(5) 그는 흙을 만지지 않을 때도 운동선수처럼 산다. 매일의 컨디션을 관리하듯, 작업을 생활의 중심에 두는 자세로.
」
유학 시절, 키친타월을 실로 이어붙여 만든 지붕 형태의 작업. 사진: 박종진
평소 이 작업실의 공기를 채우는 건 완전한 고요인가요, 아니면 음악이나 라디오 소리인가요?
완전한 고요는 아니에요. 팟캐스트, 유튜브, 음악 등을 들어요. 최근엔 시사 관련 콘텐츠를 자주 들었어요. 뉴스를 접하는 방식 자체가 레거시 미디어에서 유튜브 쪽으로 많이 옮겨졌더라고요. 다양한 채널에서 재미있는 걸 찾아 듣는 편이에요.
뜻밖의 취미가 있나요?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직접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다 좋아해요. 헬스처럼 혼자 하는 운동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공놀이 쪽이요. 그리고 운동선수에게 영감을 많이 받아요. 학생들에게도 운동선수처럼 작업하라고 자주 얘기해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아들에게 했다는 말에 특히 공감해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과 2부 리그에서 뛰는 것, 어느 쪽이 더 즐겁겠냐”는 거였죠. 좋은 무대에서 최고의 동료들과 겨루는 게 가장 즐거운 일 아니겠냐는 얘기였어요. 그러니 목표는 자연스럽게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잡을 수밖에 없죠. 내 작업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생활의 중심엔 늘 작업이 있어야 해요.
임나리는 20년 가까이 디자인을 중심에 두고, 디자인이 미처 가보지 못한 영역으로 넘어가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가령 전시, 책, 해프닝 같은 것. 말과 글이 된 디자인은 무엇이 가능할지 궁금한 사람.
Credit
- 글/임나리
- 사진/ 정진우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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