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김 크리스틴 선의 마음을 닮은 전시장에서

2026 맥아더 펠로십에 선정된 한국계 아티스트, 김 크리스틴 선을 만나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6.10.12

Grounding Mind


김 크리스틴 선(Kim, Christine Sun)이 긴 시간 다뤄온 것은 소리 중심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이 단단한 기반에 닿는 순간을 마주한 기록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의 예술 신은 점점 팽창하는 것 같아요.”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서울을 방문한 김 크리스틴 선이 촬영을 마친 전시장에 다양한 나이대의 관객이 입장하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ASL(미국 수어) 통역가인 베스 스테일이 영어와 수어로 통역하며 의사를 전했다. 지난 몇 년간 예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름이었던 그는 올해 프리즈 서울 기간 가장 분주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MMCA 서울관 서울박스에 거대한 장소 특정적 작업을 설치했고,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치렀으며, 내년 가을 LACMA에서 열리는 그룹전 «Minor Feelings»를 앞두고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 최찬숙과 대담을 마쳤다. 작가로서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김 크리스틴 선은 청인 중심의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유머러스한 영상 작업으로 선보이거나, 소리가 작동되는 방식을 탐구하며 음표와 악상 기호, ASL을 활용한 드로잉과 모션 작업을 펼쳐왔다. 이번 신작들은 보다 은유적이고 내밀하다. 점점 분열되는 세계에서 우리가 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엄마이자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건네기까지 어떻게 변화의 시간을 통과해왔는지 묻자, 단단함과 유연함을 넘나드는 답변이 돌아왔다.


<Mind Keep Stay> 연작 앞에 선 김 크리스틴 선. 드레스, 귀고리, 반지, 힐은 모두 Louis Vuitton.

<Mind Keep Stay> 연작 앞에 선 김 크리스틴 선. 드레스, 귀고리, 반지, 힐은 모두 Louis Vuitton.

지난해 «바자전 : IN-BETWEEN»에 참여하며 대표작 일부를 선보였을 때, “요즘은 서로 다른 마음의 질량을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각기 다른 한숨의 무게 같은 것들”이라고 밝힌 적 있다. 이번 전시를 보며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경험은 어떤 시간이었나?

한 친구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은 세계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지만, 갤러리현대의 «달 마음(Moon Mind)»은 마음의 여러 상태를 깊이 들여다보는 전시라 관람 경험이 더 개인적이고 생성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일과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시기가 동시에 겹치면서, 내 생각과 감정에 가만히 머물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의 리듬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내 자신과는 분리된 하나의 존재처럼 돌보려 했다. 갤러리에 걸린 페인팅과 드로잉을 바라보는 일이 내게 아주 큰 충족감을 준다.

먼저 회화와 드로잉으로 채워진 개인전에 관해 묻고 싶다. 당신에게 ‘달’은 어떤 상징인가? 드로잉과 영상, 소리에 관해 깊이 있는 작업을 시도한 뒤, 회화라는 매체를 받아들이는 데 구체적인 전환의 계기가 있었나?

‘Moon(달)’이라는 단어는 내게 정말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달’을 수어로 표현할 때 엄지로 마음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듯한 움직임을 만들고, 이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려 ‘mind(마음)’를 표현하는 점이 좋다. 어떤 면에서는 달을 다시 머릿속으로 넣는 것처럼 보인달까. 그래서 달이 내 마음속에 있거나, 마음이 달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회화로 표현했을 때, 달과 마음을 모두 땅, 덩어리, 혹은 산처럼 보여준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상부와 하부가 나뉘어, 마치 하나의 조각처럼 된다는 점도. 회화는 내게 개념을 확장해나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전환이었고, 특히 휘트니 미술관과 워커 아트센터에서 열린 서베이 전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13년에 걸친 작업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아카이빙하는 일은 한동안 내 머릿속의 많은 공간을 차지했고, 새로운 매체를 실험할 여유를 거의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가 개막하고 나자 머릿속에 갑자기 그 모든 공간이 다시 생긴 것 같았다. 비로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Christine Sun Kim: All Day All Night»를 보았을 때, 서베이 전시가 본래 그런 성격을 지닌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90여 점의 작업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자 비로소 당신의 정체성 대신 스스로의 삶과 고민을 꾸준히 작업에 반영해온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전시가 내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깨달았다. 내 작업이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변화해왔는지를 직접 확인할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최근에는 편집증적인 불안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다. 이런 감정은 오랜 시간 활동가적 실천을 이어오고, 분노를 다루어온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 그리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떠올리면,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엄청난 불안과 편집증적인 감각이 동반된다. 나는 수어 자체를 염려하진 않지만, 농인 공동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 불안에 휩쓸리지 않도록 내 자신을 지키면서, 엄마이자 작가로서 마주하는 큰 순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김 크리스틴 선,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 2026, 페인트, 접착식 비닐, 단채널 영상, 사운드, 가변 크기. 사진: 조준용

김 크리스틴 선,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 2026, 페인트, 접착식 비닐, 단채널 영상, 사운드, 가변 크기. 사진: 조준용

이번 전시에서 상하부가 나뉜 셰이프드 캔버스 회화 연작은 거리를 넓히고 좁힐 수 있는 설치 방식도 흥미로웠지만, 작업을 명명한 방식도 인상 깊었다. 마음과 돌(<Rock Mind>), 마음과 달(<Moon Mind>) 사이의 거리를 관객들이 추측하는 재미도 있다. 신작을 완성하며, 당신에게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순간은 언제였나?

네 글자로 된 단어를 좋아한다! 두 단어를 나란히 붙이면 아주 이분법적이고, 쌍을 이루면서도 은유적인 구조가 생긴다. 마음의 균형을 맞춰야 하므로,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길 즐긴다. 지난해 11월 로마의 아메리칸 아카데미에서 한 달간 레지던시에 참여했는데, 그 시간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가족을 데려오는 일부터 아이 돌봄, 통역 비용 지원, 든든한 식사와 와인 제공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세심하게 마련해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졌고, 실제로 어딘가에 내려앉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내 마음이 단단한 기반에 닿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서로 높낮이가 다르게 배치된 연작 <Mind Keep Stay>를 보면서, 흡족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현대인의 숙명을 떠올렸다. 모호하지만 ‘행복’이나 완벽에 가까운 상태는, 당신에게 어떤 조건인가?

로마에서 완성한 작업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름다운 스튜디오가 있었고, 매일 훌륭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아주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거의 완벽한 조건이었다. 오랜만에 주어진 진짜 숨 쉴 틈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조금 불안해졌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계속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을지 더욱 고심하게 되었다. 부모로서 현재에 온전히 머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동시에 내 생각과 아이디어를 마치 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분명하게 바라보고 싶은 바람도 커졌다. 그래야 그것들을 하나씩 연결하고, 작업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당신의 불안을 다스리는 데 어떤 역할을 해왔나? 불안과 집착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유효한 조언이 있다면?

심리 상담을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 자체는 괜찮다고 보지만, 그것이 개인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 집에는 이제 네 개의 마음이 있다.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나의 마음. 특정한 생각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리 네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흐름이 깨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집착하는 생각과 실제 삶을 어느 정도 분리해 두려고 노력한다. 미술계를 비롯해 이 사회는 철없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런 일들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불안이 아주 커질 때마다 심리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집착하는 마음을 일종의 명상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드로잉과 페인팅을 통해 하고 있다.

김 크리스틴 선, <Meet Ups>, 2025, 종이에 목탄, 29.7x42cm.

김 크리스틴 선, <Meet Ups>, 2025, 종이에 목탄, 29.7x42cm.

목탄 드로잉 작업에서는 선이 번진 자국이 선명했다면, 아크릴 물감을 활용한 신작에서는 일정한 형태 안에서 푸른빛을 띠는 붓질 자국이 눈에 띈다.

내게 흔적을 남기는 일은 하나의 정치적인 행위다. 인류의 역사 안에 농인들의 존재를 새기고, 그들이 지워지지 않을 자리를 만드는 일로 여긴다. 회화에는 목탄보다 더 많은 세부적인 요소와 움직임을 기록할 수 있다. 얼룩의 흔적으로 회화의 질감이 이루어지는데, 어디를, 어떻게 그렸는지가 보인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조합, 새로운 기법에 열려 있는 상태다.

흑백을 주로 사용하기에 푸른색 아크릴을 쓴 회화 작업 <Mind Mind>가 인상적이었다. 딸에게 “엄마, 작품에 색을 좀 넣어야 해. 색이 없으면 너무 지루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당신에게 색은 어떤 의미인가?

딸의 말에 동의한다.(웃음) 사실 이전에도 가끔 색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신작처럼 색이 전면에 드러나는 방식은 아니었다. 예전에 나는 최대한 명확하게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작업이 변화하고 있고, 의도를 조금 더 추상적으로 남겨두고 싶은 지점에 도달한 것 같다. 푸른색에 끌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유니버설 액세스와 장애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파란색이고, 둘째는 농인 커뮤니티의 상징적인 색으로 튀르쿠아즈 블루가 통용되기 때문이다. 흔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색 역시 파란색과 초록색이다. 그런 색들은 ‘농인 됨’을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의료적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예상보다 더 깊은 결함을 남기기도 한다. 아마 이것이 내가 색을 바라보는 출발점인 것 같다.

MMCA 서울관에서 선보인 모션 라인 작업은 점점 양극화되고 분열되고 있는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룬 작업이다. 모션 라인은 팬데믹 시기 퀸스 지역 주민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은 극심한 피로와 무기력을 담은 작업 <Time Owes Me Rest Again>이 계기였다. 한때 개념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어린 시절 팀 버튼을 좋아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런 영향이 이 작업에도 반영된 걸까?

모션 라인은 다양한 기호가 움직임, 임팩트 라인과 함께 수어로 표현되지만 정작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저자성의 문제,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어린 시절 그런 모션 라인이 가득한 수어 책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작업에도 분명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내 자신을 직접 터치해야 하는 수어 표현의 목록을 만든 적이 있다. 예를 들어 ‘have’를 표현할 때는 구부린 양 손바닥이 가슴 위쪽에 닿으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중 여섯 개의 수어 표현을 골라 제목과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마 팀 버튼보다 가필드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김 크리스틴 선, <Mind Mind>, 2025, 종이에 아크릴릭, 목탄, 오일스틱, 29.7x42cm.

김 크리스틴 선, <Mind Mind>, 2025, 종이에 아크릴릭, 목탄, 오일스틱, 29.7x42cm.

알고리즘 안에서 개인이 파편화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농문화나 수어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고 읽어내기에 부적합한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세계의 흐름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내 세대에서는 괜찮은 편이지만, 더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점점 하나의 기준에 맞춰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소수 언어가 희석되고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아카이빙의 중요성이 크게 다가온다.

‘접근성’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당신은 예술계 첫 커리어를 휘트니 미술관 에듀케이터로 시작했다. MMCA를 포함해 국내 여러 미술관도 최근 몇 년 사이 접근성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유럽 각 나라마다 다른 수어를 접한 경험이 작업을 지속하는 동력이 됐다고 들었다. 이런 ‘접근성의 시차’에 작가로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때도 있나?

기관 차원에서 접근성을 조율하고 대응하는 일은 종종 내 마음을 무너뜨릴 만큼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많은 부분 협상과 양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SL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원래 두 명의 ASL 통역사가 필요하지만,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통역사에게 여러 차례 휴식 시간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내용을 입력해달라고 부탁하는 방식으로 타협하곤 한다. 접근성은 정치적 환경, 예산, 인식 수준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내 위치에서도 여전히 아주 순탄한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커리어 초반에 있는 다른 농인 작가들에게는 어떨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사실, 어떤 상황일지 너무 잘 알고 있긴 하다.

어린 자신을 위한 조언으로 “예술사의 거장을 카피해보는 시도도 괜찮다”고 답한 적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 존 케이지처럼 사운드와 시각을 결합한 20세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 받았다고도 밝히기도 했는데.

특별히 아이돌 같은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있다. 차학경, 존 케이지(John Cage), 백남준, 사이 톰블리(Cy Twombly) 같은 작가들이다. 현존 작가 중에는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많지만, 몇 명만 꼽자면 메그 스튜어트(Meg Stuart), 글렌 라이곤(Glenn Ligon), 데이비드 호비츠(David Horvitz), 조안 조나스(Joan Jonas)를 이야기하고 싶다.

«달 마음(Moon Mind)»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재킷, 팬츠, 톱은 모두 Miu Miu. 안경과 링은 아티스트 소장품. 헤어&메이크업/ 김채은, 스타일리스트/ 변홍식

«달 마음(Moon Mind)»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재킷, 팬츠, 톱은 모두 Miu Miu. 안경과 링은 아티스트 소장품. 헤어&메이크업/ 김채은, 스타일리스트/ 변홍식

«바자전 : IN-BETWEEN»에서는 남편 토마스 매더와 함께한 영상 작업 두 개가 소개된 적 있다. 남편의 미국 수어 실력이 점점 좋아지면서 두 사람의 협업도 해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그런 변화가 작업에 영향 미친 부분도 있나?

독일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 자신이 한 말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말을 훨씬 덜 완곡하게 하게 되었다. 부모가 된 이후로 톰과 나는 하나의 커다란 의사 결정 기계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매일 아주 작은 결정을 만 번쯤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가로서뿐 아니라 한 가족으로서 이뤄낸 것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장 평범한 하루의 일과를 들려준다면?

남편은 정말 든든한 팀메이트다. 내가 출장을 가야 할 때마다 아이 돌봄을 도맡는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돌아오면 빡빡한 일정 안에 모든 것을 최대한 맞춰 넣고, 가족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시차 적응이 꽤 힘든 편이라, 늘 되도록 빨리 회복하려고 하고 출장 일정도 짧게 잡으려고 한다. 우리의 평범한 하루는 대략 이렇다. 기상, 아침 식사, 아이들 등교, 스튜디오, 아이들 하교 픽업, 방과 후 활동, 놀이터, 귀가, 저녁 식사, 취침, 그리고 둠스크롤링.

베를린의 클럽 문화를 좋아해 주말 아침에 문을 여는 클럽에 가기도 하고, 일상에서 패션의 즐거움을 놓고 싶지 않다고도 밝혔다. 최근 가장 즐거웠던 순간, 혹은 좋아하게 된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요즘은 춤출 시간도 거의 없다. (웃음) 사실 아이들이 잠들 때 같이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바디 마사지를 정말 좋아해서, 마사지 베드 위에서 코를 골며 잘 때도 자주 있다.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마사지사가 있는데, 요즘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분이다.

텍스트는(주로 대문자로 표기하는) 목소리를 쓰지 않는 당신과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잇는 가장 확실한 접점이자, 의미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밝혀왔다. 최근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을 공유해준다면?

사실 예전에 사귀던 사람의 아버지가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만 쓰는 것을 보고, 자신감이 가득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룩셈부르크 무담(MUDAM)에서 열릴 «For Ever»라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ASL에서 ‘forever’를 표현할 때는 엄지로 마음을 바깥으로 끌어낸 뒤, 끝이 없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이마에서 멀어지듯 앞으로 움직인다. 이 개념은 영원이라는 것이 순환 속에서 온다는 생각에 관한 것이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농인 공동체는 영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ASL은 영원하다.

슈퍼볼 같은 이벤트는 물론 아트 비엔날레, 페어까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자리에서 방대한 규모의 작업을 선보였는데, 지난 시간의 스스로를 어떤 예술가였다고 여기나?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커리어 초반에는 작가로서 활동의 기반을 넓히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이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바깥으로 확장하기보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내 작업은 이전보다 더 내밀하고 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주위를 유쾌하고 환하게 밝히는 작가를 만난 뒤, 작업을 감상하는 재미가 배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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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기원영(인물),갤러리 현대,MMCA(작품)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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