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타미 힐피거의 전설적인 마케팅 기술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시대를 반영한 셀럽 마케팅의 한 수

프로필 by 윤혜영 2026.04.09

패션 브랜드와 셀러브리티. 한때 이 관계는 명확했다. 브랜드는 이미지를 만들고, 셀럽은 그 이미지를 입었다. 셀럽은 브랜드가 만든 이미지를 전달하는 전달자일 뿐, 그 이미지를 함께 만드는 창작자는 아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패션은 이렇게 작동했다.

타미 힐피거는 달랐다. 그들은 셀럽을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닌, 시대를 읽는 키워드로 봤다. 1994년 3월, 힙합이 서브컬처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넘어가던 바로 그 순간, 스눕 독은 <Saturday Night Live(이하 무대에 섰다. 그가 입은 건 타미 힐피거 럭비셔츠였다. 빨강, 하양, 파랑 줄무늬에 ‘TOMMY’라는 로고가 크게 새겨진 그 옷은 다음 날 미 전역에서 품절됐다. 이것은 계획된 광고가 아니었다. 당시 <SNL> 리허설 중이던 스눕 독은 타미의 동생이자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던 앤디 힐피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앤디, 옷이 더 필요해.” “여기로 와.” “못 가, 리허설 중이야. 오늘 밤 호텔로 와줄래?” 앤디는 자정에 매장의 마네킹에서 옷을 벗겨 직접 호텔로 가져갔다. 스눕 독은 그 옷이 좋아서 입었고, 타미 힐피거는 그저 옷을 건넸을 뿐이다. 우연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선택이 있었다. 타미 힐피거는 이미 힙합 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1992년 그랜드 푸바가 자신의 곡에서 타미 힐피거를 언급했을 때, 이들은 변화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스눕 독의 <SNL> 무대는 운이었지만, 그 운을 잡을 준비는 타미 힐피거가 먼저 했던 것이다.

이후로도 타미 힐피거의 선택은 계속됐다. 알리야는 R&B가 패션의 언어가 되던 시기를, 지지 하디드는 소셜미디어가 런웨이를 대체하던 순간을, 젠데이아는 다양성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를, 지수는 K-팝이 글로벌 팝 문화의 중심이 된 지금을 각각 증명한다. 라파엘 나달과 루이스 해밀턴은 스포츠가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흐름을 먼저 읽었고, F1 아카데미는 여성 스포츠가 폭발하는 미래를 예고했다.

타미 힐피거가 선택한 이름들. 스눕 독, 알리야, 지지 하디드, 젠데이아, 지수는 단순한 앰배서더 리스트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30년간 대중문화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보여주는 타임라인이다. 타미 힐피거는 트렌드를 만든 게 아니라, 트렌드가 될 사람을 먼저 알아봤다. 타미 힐피거가 선택한 이름들은 곧 시대의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미 힐피거의 다음 선택을 주목한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에서, 내일이 보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미국 힙합 컬처의 아이콘 제이지, 알리야, 비주 필립스, 키다다 존스.

1990년대 미국 힙합 컬처의 아이콘 제이지, 알리야, 비주 필립스, 키다다 존스.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우연한 만남

중요한 건 타이밍이었다. 1990년대는 힙합이 서브컬처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MTV는 <Yo! MTV Raps>를 방영하며 힙합을 안방으로 들여왔고,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은 서부 힙합을 전국구 현상으로 만들었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읽은 브랜드가 타미 힐피거였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변화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1992년, 래퍼 그랜드 푸바가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한 <Yo! MTV Raps> 무대에서 자신의 곡 가사에 타미 힐피거를 언급했다. “Girbauds hanging baggy, Tommy Hilfiger top gear”라는 가사는 스트리트 패션의 새로운 아이콘을 예고했다. 이후 스눕 독의 <SNL> 무대까지, 이 모든 것은 타미 힐피거라는 감각적인 시대 예보가의 선택이었다.


타미 힐피거 쇼 백스테이지에서 포착된 알리야.

타미 힐피거 쇼 백스테이지에서 포착된 알리야.

새로운 여성의 탄생

스눕 독이 힙합의 시대를 알렸다면, 알리야는 여성 스트리트 웨어의 시대를 열었다. 1996년, R&B 가수 알리야가 타미 진스의 얼굴로 발탁된 것. 스타일리스트였던 퀸시 존스의 딸 키다다 존스의 소개로 만난 알리야는 타미 힐피거의 옷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크롭트 톱에 배기 진, 그리고 톰보이한 감성. 그녀는 힙합 룩을 여성스럽게 재해석한 최초의 아티스트였다. 알리야의 영향력은 단순한 광고 모델을 넘어섰다. 그녀가 입은 빨강, 흰색, 파랑 컬러 블록 밴드 톱과 로고가 새겨진 배기 진은 그야말로 ‘순삭’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스타일이 타미 힐피거 여성 라인 전체의 방향성을 바꿨다는 점이다. 기존의 프레피하고 스쿨걸 같던 타미 걸 라인은 알리야의 스트리트 감성을 흡수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그녀는 최초로 메이저 패션 브랜드와 공식 모델 계약을 맺은 R&B 아티스트가 됐다. 알리야 역시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을 함께 만드는 공동 창작자였다.


1999년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토미 진스의 브리트니 스피어스 콘서트 투어 스폰서십 발표 기자회견.

1999년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토미 진스의 브리트니 스피어스 콘서트 투어 스폰서십 발표 기자회견.

타미 힐피거 패딩 재킷을 입고 영화 <스크림 2> 할리우드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한 그웬 스테파니.

타미 힐피거 패딩 재킷을 입고 영화 <스크림 2> 할리우드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한 그웬 스테파니.

1990년대 황금기, 문화 현상이 되다

1996년, 타미 힐피거는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로부터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을 받았고, 그들은 힙합과 R&B 신 전체를 장악했다. TLC, 데스티니스 차일드, 어셔, 메소드 맨이 타미 힐피거를 입었고,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웬 스테파니도 그 흐름에 합류했다. 타미 힐피거는 음악 투어 스폰서로도 나섰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1999년 투어, 레니 크래비츠, 셰릴 크로의 공연을 후원하며 패션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었다. 16세의 비욘세가 데스티니스 차일드로 패션쇼 무대에서 공연했고, 래퍼들이 런웨이를 걸었다. 이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모델이 아니라 1990년대라는 시대 그 자체였다.


2017 레디투웨어 런웨이에 선 지지 하디드.

2017 레디투웨어 런웨이에 선 지지 하디드.

젠데이아가 타미 힐피거 글로벌 앰배서더로 참여한 2018년 캠페인 촬영 현장.

젠데이아가 타미 힐피거 글로벌 앰배서더로 참여한 2018년 캠페인 촬영 현장.

2010년대, 공동 디자이너라는 혁신

타미 힐피거의 협업은 문화계만이 아니었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브랜드는 혁신을 만들어냈다. 2015년, 테니스 챔피언 라파엘 나달을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로 다시 영입하며 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스트립 테니스’ 이벤트를 열었다. 포인트를 잃을 때마다 정장과 언더웨어를 하나씩 벗는 퍼포먼스는 엄청난 바이럴을 일으켰다. 2016년, 슈퍼모델 지지 하디드는 소셜미디어가 런웨이를 대체하던 순간의 얼굴이 됐다. 타미×지지 컬렉션은 ‘시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로 즉시 구매 가능한 혁신을 선보였다. 지지는 컬렉션의 콘셉트부터 디자인까지 결정하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였다. 2018년, 타미 힐피거는 17년 만에 F1으로 돌아왔다. 7번이나 F1 월드 챔피언을 거머쥔 루이스 해밀턴과의 협업 컬렉션은 모터스포츠가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흐름을 읽었다. 2019년, 배우 젠데이아는 다양성이 필수가 된 시대를 증명했다.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 다양한 연령과 사이즈의 흑인 여성 모델 59명이 무대에 올랐다. “콘셉트부터 패키지 폰트까지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젠데이아의 말이 타미 힐피거가 정의한 협업의 본질이었다.


타미 힐피거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블랙핑크 지수.

타미 힐피거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블랙핑크 지수.

2024 멧 갈라에 타미 힐피거 룩을 입고 참석한 스트레이 키즈.

2024 멧 갈라에 타미 힐피거 룩을 입고 참석한 스트레이 키즈.

2020년대, K-팝과 할리우드 레거시

2023년 9월, 타미 힐피거는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를 아시아 앰배서더로 발탁했다. 2024년 5월엔 전체 멤버가 멧 갈라에 참석해 최초로 K-팝 그룹 전체가 참석한 역사를 썼다. 뉴욕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한 캠페인까지, 스트레이 키즈는 세 시즌 연속 타미 힐피거의 얼굴이 됐다. 2024년 가을엔 블랙핑크의 지수가 글로벌 앰배서더로 합류했다. 그리고 2025년, 아이브의 장원영 역시 타미 진스 브랜드 앰배서더로 합류하며 타미 걸 캠페인의 얼굴이 됐다. K-팝이 글로벌 팝 문화의 중심이 되는 순간을 읽은 것이다. 30년 전 스눕 독이 힙합의 시대를 알렸듯 스트레이 키즈, 지수, 장원영은 아시아 시장에서 타미 힐피거의 새로운 문화적 파트너가 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타미 힐피거는 또 하나의 흐름을 읽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아들이자 배우 패트릭 슈워제네거와 아내 애비 챔피언을 2024 가을 캠페인의 얼굴로 발탁한 것이다. ‘차세대 파워 커플’로 불리는 이들은 할리우드 레거시와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구현했다. 스타 2세에 대한 대중의 관심,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가문’의 이미지. 타미 힐피거는 이 흐름 역시 놓치지 않았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Tommy Hilfiger, Getty Image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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