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인센스를 찾아서! 취운향당에서 보낸 하루
전통 방식으로 천연향을 만드는 취운향당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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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빚는 날
전통 향을 만드는 취운향당에서 보낸 정화의 시간.
가루향을 마음 심(心)자 모양의 향틀에 채우는 모습.
향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약재들. 베트남, 태국 등의 밀림 지역에서 자라는 침향은 가장 귀한 재료 중 하나로 꼽힌다.
살아가는 모든 것에 향이 있다
종일 집 안에 머물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매일 아침 인센스 스틱을 피우는 일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다. 칼칼한 인도산 향 나그참파도, ‘겨울 정원의 비’ 같은 곰살맞은 이름이 붙은 일본산 향도 슬슬 지겨워질 즈음, 인사동의 한 향 가게에서 낯선 향을 발견했다. 얼핏 공진단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 원산지 ‘메이드 인 코리아’ 표기 옆에 ‘취운향당’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불교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 방식으로 향을 만드는 곳이라고 했다. 어릴 적 절에서 맡았던 향은 눈이 매콤했던 기억뿐인데, 전통 향은 과연 어떤 향일까. 막연한 궁금증을 안고 경상북도 성주로 향했다.
“이 세계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것들은 저마다의 향을 품고 있어요. 옛 향과 오늘의 향이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향에는 인위적으로 조합된 화학 향이 많다는 거죠.” 능혜 스님이 말했다. 누군가의 체취, 혹은 향수의 잔향. 매일 엘리베이터와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가며 맡은 냄새가 기억났다. 능혜 스님은 30여 년 전 취운향당을 열었다. 사찰에서 피우던 매캐한 향 대신,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향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불교의 전통 향방, 즉 향을 만드는 옛 방식을 깊이 탐구하게 됐다.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금강산 마하연으로부터 전해 내려와, 송광사 해봉 스님을 통해 대대로 이어진 방식을 익혔다. <본초도감> <동의보감> 같은 한의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향의 재료가 되는 약재의 원리를 터득했다.
제조실 문을 열자마자 공기가 달라진다. 한약방에 들어온 듯, 묵직하고 깊은 약재 냄새가 퍼진다. 향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몸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좋은 향은 ‘수승화강(水升火降)’이어야 합니다. 머리는 맑고 시원해야 해요. 대신 배와 발처럼 몸의 아래쪽은 따뜻해야 하죠. 전통 향에는 다섯 가지 기본 재료가 들어갑니다. 폐를 돕는 백단, 심장을 돕는 정향, 신장을 돕는 침향, 위 기능을 돕는 유향, 그리고 간 기능을 돕는 목향입니다.” 능혜 스님은 여기에 수십 가지 야생 향 약재를 더한다. 후각을 더 예민하게 유지하기 위해 단식을 하며 향을 완성한다.
향당 안쪽에는 포대가 층층이 쌓여 있다. 약재 스무남은 가지를 쌀가루보다 더 고운 입자로 빻은 다음 비율에 맞게 섞어 반죽한다. 느릅나무 껍질 같은 식물성 접착 재료를 더해 점성을 만든 뒤, 국수 가락처럼 길게 뽑아내면 인센스 스틱, 즉 선향의 형태가 된다. 일정한 습도와 온도에 맞춰 1~2주 자연 건조하면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이다. 이외에도 형태는 각양각색. 가루향을 다양한 향틀에 다져 문양을 만든 후 마른 솔잎이나 나뭇잎을 활용해 불을 붙여 태우는 분향(粉香), 가루향을 반죽해 원뿔 모양으로 굳힌 탑향(塔香)도 만든다.
선조처럼 향 즐기기
초창기부터 향당을 이끌어온 채명희 부장은, 한자로 ‘마음 심(心)’자가 쓰인 틀에 가루 향을 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차의 세계에 다도가 있듯 향의 세계에도 ‘향도’가 있다고. 좋아하는 향로에 향을 하나 피워두고, 연기가 피어나는 모양을 지긋이 바라보는 일은 일종의 명상과 다름없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입으로 들어가는 식재료가 중요한 것처럼, 내 코로 들어가는 향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돼요. 화학적인 냄새나 매연을 당연시하지 않게 되었어요.” 새삼 시각과 미각에는 민감하게 피로감을 느끼면서, 후각은 그저 악취를 피하는 데 급급해 향기로운 자극을 좇아온 지난날이 떠올랐다. 하나의 향료가 도드라지는 향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마다 본연의 향을 가늠해 보려 후각을 곤두세웠다. 향수 시향과는 전혀 다른, 꽤 낯선 경험이다.
불교에서의 향 문화는 단지 방향의 효능이나 공예적 기법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랜 수행의 일부이기도 하다. “향을 피우는 것도 하나의 수련입니다. 신분과 관계없이 연기는 모두에게 퍼져 나가죠. 모든 존재에게 공양이 되고, 중생에게는 깨달음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작은 책상 위에 향을 피우고 좌정에 들면 영혼이 맑아집니다. 세상의 번뇌가 밀려올 때, 그 사이로 향연이 지나가는 거죠.”
향을 즐겨온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 이집트에서 향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로 여겨졌고, 인도에서는 향료를 탄 물인 향탕수로 몸을 씻거나 향을 몸에 바르는 풍습이 있었죠. 우리나라는 인도로부터 불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삼국시대, 번성한 고려시대에 향 문화가 자리 잡았어요. 스님들이 <팔만대장경>처럼 향의 문법을 정리해둔 책도 있죠.” 능혜 스님이 고서 한 권을 보여주며 말했다. 머릿속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백제 금동대향로’에 향을 태우던 백제 왕족들의 모습이 스쳤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대부들은 분재처럼 수석에 탑향을 태워 하나의 세계관처럼 고상한 향 문화를 누렸다고. 돌에 물을 뿌려 향 연기를 폭포수처럼 연출해 공기를 정화했다. 그동안 옛 시대의 향은 제사 같은 제례 의식에서만 쓰이던 것이리라 추측했는데, 옛사람들의 호젓한 취미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일제강점기, 중국 다롄의 향료 공장에서 값싼 인공 향료가 들어오면서 전통 천연 향은 점차 자취를 감췄습니다. 삼나무와 인공 향료가 주재료인 일본식 향이 새롭다고 인기를 끌면서, 우리가 어떤 향을 써 왔는지조차 잊혀갔죠. 그래도 누군가는 지켜야 할 문화이기에 계속 이어 가야지요.” 10여 년 전 한국향도협회를 세워 대중에 향 제조 방법을 알려온 스님은 머지않아 향 문화 박물관을 세울 계획도 갖고 있다. 사람의 감각기관으로 일일이 재료를 검수하고, 대량생산의 문법에서 벗어나 옛것을 복원하는 사람들. 흠뻑 나무 향을 맡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 인파로 번잡한 서울역에서 조용히 불교에서의 향의 의미를 읊조렸다. ‘스스로를 태워 삿된 기운을 정화한다’는 뜻을. 어쩐지 소란한 정신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일제강점기, 중국 다롄의 향료 공장에서 값싼 인공 향료가 들어오면서 전통 천연 향은 점차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지켜야 할 문화이기에 계속 이어 가야지요.
고려시대 문인들은 수반 위 수석에 원뿔 모양의 탑향을 올려, 향 연기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도록 연출했다.
Credit
- 사진/ 박규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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