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의 시노그래피를 맡은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의 실험
루이 비통 비저너리 서울의 문화체험형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고심한 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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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SPACE BECOMES A JOURNEY
여행을 향한 루이 비통의 유산과 서울이라는 도시의 감각을 색다른 공간으로 풀어낸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이곳의 문화 체험형 공간을 기획한 건축사무소 OMA의 시게마츠 쇼헤이는 관람객을 하우스의 축적된 서사를 느낄 수 있는 무대로 이끈다.
1854년부터 꾸준히 트렁크 디자인을 선보여온 루이 비통. ‘기원(Origins) 룸’에서는 다양한 트렁크를 통해 시대에 따라 달라진 여행 문화를 목격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은 매장을 넘어 카페와 레스토랑, 문화 체험형 공간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장소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내 총 6개 층에 걸쳐 자리한 이곳은 한국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펼쳐낸다. 특히 3개 층을 관통하는 문화 체험형 공간의 시노그래피가 이곳의 묘미다.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는 이번 전시를 위해 여행과 장인정신, 하우스의 유산을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각각의 방으로 구현했다. 세계적 건축사무소 OMA의 파트너인 그는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건축과 미술관 프로젝트는 물론, 브랜드 공간과 전시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작업을 이어왔다. 그런 그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24시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도시 서울과 루이 비통이라는 하우스의 에너지를 하나의 무대로 엮어내는 일이었다. 이들이 함께 빚어낸 서사를 더 깊이 경험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시게마츠 쇼헤이가 전하는 감상법을 소개한다.
악기 케이스, 휴대용 스피커, DJ 박스 등 다양한 음악 관련 오브제를 배치한 ‘음악 룸’.
‘협업 룸’에는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완성한 백들이 회전 장치를 통해 움직이며, 백 월에 이미지가 투사되어 몰입감을 선사한다.
아트리움 계단에 앉은 시게마츠 쇼헤이. 모노그램이 새겨진 한지로 만든 트렁크 기둥이 커다란 랜턴처럼 공간을 비춘다.
하퍼스 바자 방콕, 상하이에 이어 세 번째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전시의 시노그래피를 기획했다. 처음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의 모태가 되는 공간을 보았을 때 받은 첫인상은 어땠나?
시게마츠 쇼헤이(이하 쇼헤이) 서울의 주요 관광 중심지에 자리한 이곳의 맥락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한국 최초의 백화점이 들어섰던 장소이자 지금까지도 백화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는 방콕, 상하이에서의 전시보다 규모가 더 크고,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열리는 전시다. 백화점 안에 자리하지만 온전히 루이 비통만을 위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전시를 리테일 공간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형태로 새롭게 구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아트리움 계단의 아름다운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이를 전시와 매장을 자연스럽게 잇는 이동 동선이자 공간의 중심 포인트로 활용하고자 했다.
하퍼스 바자 전시 디자인은 뇌의 또 다른 영역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 적 있다. 총 12개의 챕터로 나뉜 공간을 구성하며, 당신의 뉴런을 가장 자극한 공간은 어디였나?
쇼헤이 ‘협업 룸’은 단순히 전시 콘텐츠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증폭해 즉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우리의 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특정 콘셉트를 따르거나 아카이브적인 성격을 지닌 다른 공간과 달리 ‘협업’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행위이자 정신이기 때문이다. 건축가에게 이러한 형태 없는 개념을 물리적 환경으로 해석하는 일은 또 다른 방식의 사고를 요구한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백(mirrored bags)은 과거의 협업과 앞으로 펼쳐질 협업을 위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캔버스라는 초기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 백들로 이루어진 벽이 회전하는 캐러셀 디스플레이 시스템과 LED 스크린 같은 역동적인 요소를 반사하며, 공간 전체는 협업의 에너지를 전하는 살아 있는 환경으로 변모한다.
하퍼스 바자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음악(Music) 룸’과 ‘패션(Fashion) 룸’은 한정된 공간을 극대화해 활용한 디자인이 특히 인상적이다. 흡음재를 연상시키는 폼 패널 사이로 맞춤 제작한 악기 케이스가 놓이고, 한국 작가 박서보와의 협업 의상 같은 착장이 컬렉션 사진이 프린트된 얇은 플랩과 어우러진다. 이러한 세부 요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쇼헤이 두 공간 모두 ‘비저너리 저니’에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특히 서울과 이번 장소를 위해 마련된 갤러리다. 이번 전시가 1년 이상 이어지며, 루이 비통의 리테일과 문화가 결합된 통합적 생태계의 일부로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해 음악 룸은 작은 공연장처럼 접근했다. 콘서트나 리스닝 세션 같은 이벤트가 가능한, 일종의 무반향실(anechoic chamber) 같은 공간으로 구상한 것이다. 반면 패션 룸은 음악 룸처럼 프로그램 중심으로 구성하기보다 사운드를 보다 추상적인 방식으로 활용했다. 여행(voyage)은 루이 비통 DNA의 핵심 요소다. 상하이 전시에서는 여행 자체를 주제로 한 공간이 개별적으로 존재했다면, 서울에서는 여행이 여러 주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레이어로 자리한다. 이를 위해 과거 공항과 기차역에서 볼 수 있었던 스플릿 플랩 디스플레이(split-flap display)를 전시 요소로 재구성했다. 개별 모듈이 끊임없이 뒤집히며 기계적인 소리를 내는데, 그 리듬이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분명하면서도 은근한 암시로 작동한다.
하퍼스 바자 상하이, 방콕에서 열린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전시는 지역의 특수성과 연관지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상하이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방콕은 미래적인 원형 캡슐이 인상적이었는데. 서울 전시에서 한지 랜턴으로 아트리움을 구현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쇼헤이 한지 랜턴은 ‘트렁크스케이프(Trunkscapes)’라 부르는 작업의 새로운 변주다. 루이 비통 트렁크로 구성된 설치물과 환경을 뜻하며, 하우스의 상징적 요소를 하나의 건축적 장치로 구상하는 것이다. 지상층의 모자 박스 터널 역시 전시가 새로운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트렁크스케이프가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전시는 여러 층에 걸쳐 열리며, 관람객이 층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전시장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 동선을 고려할 때 두 층으로 이루어진 아트리움은 구조적으로 매우 적합한 공간이었다. 각 층에서 리테일 공간과 전시 공간이 만나는 교차 지점이기도 하다. 한지 랜턴은 두 층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역사를 지닌 아트리움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의 전통 소재를 자연스럽게 공간에 통합한다.
하퍼스 바자 후쿠오카 태생으로 어릴 적부터 한국 문화에 관해 익숙하다고 밝힌 적 있다. 최근 몇 해간 서울을 방문하면서 서울의 팝업 문화에 관해 흥미롭게 느꼈다고 들었다. 흔히 ‘역동성’, 이라 표현하는 서울의 정체성을 정의해 본다면?
쇼헤이 그 표현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서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놀라운 변화를 거치며 문화, 기술, 비즈니스의 글로벌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오랜 역사를 품으면서도, 동시에 ‘24시간 도시(24-hour city)’로서 강렬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건축물이 있는 지역과 고층 빌딩, 그리고 그 사이의 다양한 하이브리드 환경이 공존하는 다층적 구조는 도시를 공간적·문화적으로 역동적이게 만든다. 특히 오늘날 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점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유연성이다. 팝업, 임시 설치, 글로벌 이벤트 등 새로운 문화 현상을 놀라운 속도로 흡수하고 일상 속에 녹여낸다. 이런 맥락에서 루이 비통과 같은 대규모 전시가 이 도시에서 열린다는 것은, 서울이 이미 주요 문화적 이벤트의 무대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전시는 단순한 선형 서사 대신 서로 다른 분위기와 환경이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 전개되며, 그 다양성과 리듬은 도시의 역동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퍼스 바자 건축과 하우스의 전시, 미술관 프로젝트를 넘나들며 한 해 수십 건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과정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성격이 다른 각각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궁금하다.
쇼헤이 건축, 뮤지엄 프로젝트, 패션 전시를 서로 다른 분야로 나누어 보기보다는 하나의 작업 안에서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패션 전시는 특유의 즉각성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이 산업은 매우 민첩하고 실험에 열려 있으며, 프로젝트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동시에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분야 간 협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환경은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공간적 서사를 확장하며, 보다 몰입적인 시노그래피를 탐구하도록 이끈다. 반면 건축은 전혀 다른 차원의 지속성과 엄격함을 요구한다. 구조, 기능, 장기간의 사용 같은 요소들이 설계 과정의 중심을 이룬다. 동시에 전시 작업을 통해 발전시킨 서사적 사고—공간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관람객이 공간을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대한 감각—는 다시 건축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교류가 양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전시는 공간적 스토리텔링을 실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건축은 그 아이디어들을 실제 형태로 구현하도록 하는 틀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을 오가는 과정이 작업을 유연하게 유지하고 계속해서 발전하게 만든다.
하퍼스 바자 과거에 당신은 미술관 프로젝트가 점점 공공에 가까워지고, 건축에 비해 특정 프로그램이 정해지지 않은 ‘완충 공간’의 잠재력이 흥미롭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오늘날 리테일 공간의 디자인도 열린 공공성을 지니며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람객이 공간 속에 참여하고 교류하는, 하우스의 시노그래피를 설계할 때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지점은 무엇인가?
쇼헤이 브랜드 전시를 위한 시노그래피 작업은 이야기, 오브제, 레퍼런스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루이 비통처럼 깊은 유산을 지닌 하우스의 경우, 자료가 너무 많아 어려움이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이 구체성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디자인적 접근을 할 때, 우리는 항상 클라이언트의 정체성과 문화적·물리적 맥락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실험에 열린 태도를 가진 클라이언트와 함께 작업하면, 다양한 서사를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유희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간 경험으로 전환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때 전시는 관람객이 이야기 속에 참여하게 되는 하나의 무대가 된다. 패션 브랜드는 현대 문화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 특히 빠르게 반응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협업,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이러한 개방성이 전시가 좀더 공공적인 성격을 띠게 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더 이상 전통적인 디스플레이에 머무르지 않고, 만남과 호기심, 교류가 이뤄지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Credit
- 사진/ 표기식(공간), 루이 비통(인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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