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한 코에드 패션은 무엇일까?

성별로 패션을 나누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프로필 by 김경후 2026.03.23

NEW ERA, CO-ED


성별의 경계가 모호해진 요즘, 패션 하우스는 하나의 런웨이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펼쳐 보인다. 유니섹스, 젠더 플루이드를 넘어 동시대 패션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은 ‘코에드’ 패션에 대하여.


불과 며칠 전, 패션위크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 시즌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성별을 구분하는 방식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만 성별을 규정하는 반LGBTQIA+ 정책을 내놓은 지금에도, 패션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제 쇼는 남성복과 여성복의 트렌드를 나눠 보여주는 자리를 넘어, 브랜드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무대가 됐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선보이는 방식, 바로 ‘코에드(Co-ed, 남녀공학에서 파생된 말)’ 쇼다. 실제로 보테가 베네타를 비롯해 톰 포드, 구찌, 로에베, 발렌시아가, 페라가모, 토즈, 돌체앤가바나, 질 샌더, 디젤,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이 이 방식을 택했다. 그렇다면 코에드 패션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톰 포드 2026 F/W 컬렉션.

톰 포드 2026 F/W 컬렉션.

톰 포드 2026 F/W 컬렉션.

톰 포드 2026 F/W 컬렉션.


때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찌를 이끌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남성복과 여성복을 나누어 선보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성별을 통합한 컬렉션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를 두고 “지금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코에드 쇼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현재 그가 수장으로 있는 발렌티노 역시 같은 기조 아래 남성복과 여성복을 통합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후 톰 포드를 비롯해 보테가 베네타,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여러 패션 하우스가 런웨이 위에 남성과 여성을 함께 등장시키며 이 움직임을 이어갔다. 이처럼 남성복과 여성복의 구분이 흐려진 흐름은 1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지만, 개성과 정체성을 중시하는 동시대의 분위기만으로 코에드 쇼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고 하긴 어렵다. 그 이면에는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패션 업계의 절박한 목소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춰 섰던 2020년, 패션 디자이너와 패션 기업 CEO들은 패션계 캘린더의 변화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 그는 불필요한 생산과 이동을 줄이고, 패션쇼의 기능과 시기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버리, 질 샌더, 아크네 스튜디오의 CEO를 비롯해 크레이그 그린, 마린 세르, 에카우스 라타 등 41명의 디자이너가 서명에 동참하며 힘을 보탰다. “옷을 더 적게 만들고, 더 정확한 시기에 선보이며, 더 오래도록 판매하자”는 제안은 단지 브랜드 운영 방식이나 환경을 위한 지속가능성 방안에 머물지 않았다. 특히 남성복과 여성복 캘린더를 따로 유지해온 낡은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개인의 개성이 더욱 중시되는 오늘날, 코에드 쇼는 창의적 세계관을 한 번에 보여주는 무대이자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일부 하우스는 남성복과 여성복이 충분히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기에 하나의 런웨이에 선보여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디올의 체제 변화도 그런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디올은 2025년 6월 조나단 앤더슨을 남성복과 여성복, 오트 쿠튀르를 전부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했다. 이는 1957년 무슈 디올의 사망 이후 처음 있는 일로, 한 명의 디렉터가 하우스의 모든 패션 라인을 맡게 된 매우 파격적인 인사였다.

물론 코에드 쇼가 무조건 이상적인 방식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남성복과 여성복을 두고 ‘별개의 영역’이라고 말하며 지금도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남성복과 여성복이 지닌 고유한 성격을 지켜야 한다는 시선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남성복이 여성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거나, 독립적인 관점에서 읽힐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영국패션협회가 6월에 열리는 런던 남성 패션위크를 취소하고 파리에서 런던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쇼룸 이벤트를 개최한 것 역시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구찌 2026 F/W 컬렉션.

구찌 2026 F/W 컬렉션.

구찌 2026 F/W 컬렉션.

구찌 2026 F/W 컬렉션.

최근 코에드 쇼가 계속 힘을 얻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우스의 비전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6월 공개된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맨 데뷔 쇼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쇼의 오프닝 룩은 메종의 아이코닉한 ‘디올 바’ 재킷. 그는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곡선이 돋보이는 재킷에 풍성한 실루엣의 카고 팬츠를 매치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룩을 완성했다. 여기에 18세기풍 플로럴 자수가 새겨진 니트 톱과 새틴 소재의 보타이, 여리여리한 핑크 컬러 등 여성적인 요소를 남성 복식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젠더 플루이드의 기조를 이어갔다. 듀란 랜팅크가 장 폴 고티에의 수장으로서 처음 선보인 2026 S/S 컬렉션은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벌거벗은 남성의 몸을 프린트한 바디수트를 여성 모델이 입고 등장했는데, 이는 성별이 더 이상 옷의 고정된 출발점이 아니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순간이었다. 랑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터 코핑(Petter Copping)은 자신의 랑방 데뷔 쇼인 2025 F/W 컬렉션을 통합 쇼로 선보이며 “성별과 카테고리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통합된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변화는 런웨이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 1월,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와 함께한 캠페인을 공개한 디올은 하우스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모델이 함께 등장한 코에드 캠페인을 선보였다. 앤더슨이 모든 라인의 수장을 맡은 변화가 캠페인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남성과 여성 컬렉션이 서로 넘나들면서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또 옷을 입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앤더슨의 의도가 엿보인다. 메종 마르지엘라 역시 2017년부터 브랜드의 정체성인 해체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디투웨어를 말 그대로 성별을 나누지 않는 ‘코에드’ 컬렉션으로 선보이며 힘을 보탰다.

이쯤에서 우리는 코에드의 의미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성별이 뒤섞인 패션이나 쇼를 뜻하지 않는다. 성별의 서로 다른 요소를 한 컬렉션 안에 배치하고, 충돌시키고, 조합하는 방식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유니섹스와도 다르다. 강한 수트와 섬세한 장식, 남성적 구조와 여성적 곡선, 실용성과 관능이 한 컬렉션 안에서 동시에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패션 하우스들 역시 이를 신선함을 위해 시도하는 믹스 매치 스타일링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코에드 패션의 등장은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무작정 허물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 다른 요소를 한데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더 자유롭게 드러내려는 시대의 감각에 가깝다. 성별을 나누는 기준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은 지금, 패션 업계는 그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코에드 쇼의 확산은 어쩌면 정체성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 시대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Credit

  • 사진/ Launchmetric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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