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냉소주의가 완연한 시대 속 패션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패션계의 희망적인 순간을 기록하다

프로필 by 김경후 2025.10.25

ETERNAL OPTIMISM


냉소주의가 완연한 시대. 허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평론가 로빈 기번(Robin Givhan)은 이렇게 말한다. “패션이 가장 빛날 때는 희망을 비춰줄 때”라고.


Nina Chanel Abney, <DANCE 1>, 2022, COLLAGE ON PANEL, 57 1/2 x 39 3/8 IN (Paper), 59 x 40 7/8 x 1 3/8 IN (Framed). ⓒ Nina Chanel Abney

Nina Chanel Abney, <DANCE 1>, 2022, COLLAGE ON PANEL, 57 1/2 x 39 3/8 IN (Paper), 59 x 40 7/8 x 1 3/8 IN (Framed). ⓒ Nina Chanel Abney

최근 패션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창의적이고 친근했으며, 매출 역시 상승가도를 달렸다. 패션은 늘 누구라도 기대할 만한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결코 완벽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패션은 가능한 가장 최선을 위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몸 긍정주의(body-positivity) 운동은 런웨이, 광고, 잡지 등에 다양한 체형의 모델이 등장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역사상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한 의식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또 다양성과 공평성, 포용성은 문화 담론에서 바람직한 측면으로 여겨졌다. 젠더는 크고 아름답고 모호함이 공존하는 스펙트럼이었다. 그리고 2013년부터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2021년까지, 럭셔리 스트리트 패션에 새로운 지평을 연 버질 아블로는 패션계가 시야를 넓히기만 한다면 수많은 비주류 인재들이 주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상징적 존재가 됐다.

패션에는 낙관주의가 넘쳐 흘렀으며, 낙관주의는 쿨해 보였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버질 아블로가 창조한 패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루이 비통 남성복 최초의 흑인 아티스틱 디렉터였으며, 오프화이트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패션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장벽을 허물었다. 패션을 너무나 사랑하고 특히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사랑하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폐쇄적인 세계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는 어떻게든 소수의 고상함을 친근하게 만들어냈다. 놀라울 정도로 짧지만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던 버질 아블로의 이력은 내 연구의 주제였다. 그 결과물이 책 <Make It Ours: Crashing the Gates of Culture with Virgil Abloh(우리 것으로 만들기: 버질 아블로와 문화의 문턱을 깨부수다)>다. 이 책은 버질 아블로의 전기이지만, 동시에 디자인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수많은 견습 경력을 자랑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부유한 가문의 후손도 아니었던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패션계의 변화를 다룬 책이기도 하다.

아블로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그의 재능이다. 그 외에도 패션의 생태계에서 남성복, 스니커즈, 소셜미디어, 흑인 남성이 중요한 존재로 부상한 것도 요인이 됐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은 낙관적인 감각이었다. 아블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에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능하고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이죠. 저는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어요. 분명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옷들이 낙관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옷들은 훌륭했지만, 많은 옷들은 그저 괜찮은 정도였다. 그 외의 것들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의 고객들과 소통하는 방식 역시 낙관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버질 아블로가 해낼 수 있다면, 그들도 해낼 수 있다. 아블로는 자신의 성공을 즐김과 동시에 타인의 성공 또한 열광하며 기뻐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창의성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그룹 채팅방에 가까웠다. 버질 아블로는 친절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말한 단어가 ‘착하다(nice)’는 것이었다. 아블로의 친절함은 그가 이뤄낼 것들을 예고하는 보증수표 같은 것이었다.

나이키에서 아블로와 함께 스니커즈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레이저 쿡은 “단순히 아블로가 착해서 성공했다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에요. 아블로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공평하게 대하는 것 같았죠. 그게 사람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했으며, 아블로를 따뜻하게 대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많지 않죠. 정말 특별한 부분이에요”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패션계에는 친절함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상황을 보자면 미국 전체에 친절함이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는 비열함을 자랑하는 현 행정부에 점점 더 깊이 휘둘리고 있다. 한때 ‘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며 스스로를 경계하던 테크 업계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파괴하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현재 정치적, 상업적 변화와 함께 미학적인 분위기 또한 180도 바뀌었다. 전통적인 주부의 모습을 전시하는 ‘트래드와이프(tradwife)’, 그리고 반여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커뮤니티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돈은 안정을 찾기 위한 형태나 즐거움을 주는 멋진 물건들을 사기 위한 수단보다는 인간 가치의 척도가 되었다.

한때 비열함은 금을 캐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불운하게도 빠져들고 마는 수렁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비열함 자체가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이다. 지금의 정치적, 사회적, 미학적 온도를 드러내는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가장 아찔한 것은 크리스티 놈(Kristi Noem)과 금시계다.


윌리 차바리아 2026 S/S 컬렉션 디올 맨 2026 S/S 컬렉션 루이 비통 2019 S/S 남성복 컬렉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오프화이트 2022 F/W 컬렉션

패션은 우리가 스스로를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자신을 표현하고 영감을 줄 때 진정성을 갖는다.


리스티 놈은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다. 국토안보부는 하루 3천 명가량의 미등록 이주민을 추방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를 관리 감독하는 정부 기관이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연방 요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와 주차장, 신호 대기 중인 차에 있는 사람들을 포위하며 단속 활동을 했다. 억류된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는 최근 ‘앨리게이터 알카트라즈(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가운데 지었으며 허리케인, 모기, 파충류가 많은 다소 불안정한 수용소)’를 공개했는데, 그전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구금자들을 보낼 엘살바도르에 위치한 거대한 창고형 감옥 ‘테러범 수용 센터(Terrorism Confinement Center)’에 집중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시설을 시찰하던 놈 장관은 현장에 모인 언론에 범죄, 추방, 이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때 그녀는 긴 소매 흰색 티셔츠, 회색 스트링 팬츠, 국토안보부 야구모자 차림이었으며, 여기에 5만 달러짜리 18K 금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다.

시계가 눈에 띄는 일 없이 이날을 넘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놈은 수감자들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빽빽이 서 있는 감방 앞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다. 미국에 오는 것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민자들을 향해 그녀가 이 엘살바도르의 감옥이 당신들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자 금빛 시곗줄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유타 컬(Utah curl)’ 스타일의 긴 갈색 머리칼은 어깨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카메라 촬영을 대비한 메이크업이 아니었더라도 명백히 화려한 차림이었다.

옛날 광고 속 ‘브렉 걸(Breck-girl)’처럼 반들거리는 이미지를 추구하며 부를 과시하는 크리스티 놈의 행동에는 어딘가 악의적인 면이 있다. 놈의 차림새는 그녀가 수감자들에 비해 특권층일 뿐만 아니라, 그들과 달리 더욱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놈은 1950년대에 정의됐던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수감자들은 머리가 깎여 있었고 많은 이들이 상의를 입지 않았다. 옷을 다 입은 사람들은 흰색의 죄수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는 개성이나 자율성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파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몇 해 동안 패션계에 등장한 많은 트렌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랄하고 냉담한 태도를 갖도록 부추겼다. 패션은 부, 지위, 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단추를 채우고 끈을 묶는 온갖 종류의 스타일을 쏟아냈고, 그 스타일을 입은 사람들을 차갑고 무표정하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마스터즈 오브 더 유니버스(Masters of the Universe)>를 보고 있자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상류층 여성들의 유행과 당시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 떠오른다. 이 시기 남성들의 ‘파워 타이(Power Tie)’와 아르마니의 수트, 또 크리스찬 라크루아의 푸프 스커트가 사치와 권력을 드러냈다. 동시에 어딘가 퇴폐적이고 나름의 유머 감각이 엿보였다. 개인의 성공을 자랑스레 내보이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이제 옷은 타인의 실패, 혹은 여성성이나 남성성, 애국심에 기준을 설정한 후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타인의 무능함, 혹은 타인의 무엇이라도 손가락질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테크 업계의 남성 리더들은 너절한 옷들을 흐트러지게 입는 행위로 권력의 전당을 누비며 자신들의 능력을 즐겼다. 그들이 입었던 후드티와 축 늘어진 청바지는 권력에 관한 일종의 이상주의를 제시했다. 권력은 혈통을 통해 계승되어서는 안 되며, 전통이나 어떤 가정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세상을 열고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이상주의 말이다. 허나 이제는 너무나 많은 테크 업계 리더들이 트럼프식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비열함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다. 그 옷차림은 만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느껴진다.

정부의 사업과 정부 내 일자리를 한창 썰어내던 때 일론 머스크는 어두운 컬러의 MAGA 야구모자를 쓰고 보수 활동가들의 컨퍼런스 무대에 오르며 전기톱을 트로피처럼 들어올렸다. 사실과 허위 정보를 구분하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 페이스북의 수장 마크 저커버그는 스타일 변신을 감행했다. 그는 짧은 크루컷 헤어스타일에 후드티를 입은 이상적인 청소년의 모습에서 벗어났다. 그는 머리를 길렀고 아이들이 잠에 들기 전 자신이 노래해준다는 유대교 기도문이 새겨진 골드 참 목걸이를 착용한다. 여기에 래퍼 티페인(T-Pain)에게서 선물 받은 골드 체인 목걸이도 가끔 함께 착용한다. 두 목걸이의 조합은 저녁 시간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빠의 모습이 아닌, 디지털로 가득한 세상에서 힘 있는 남성을 코스프레하는 효과를 낸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이미 오래전에 책을 좋아하는 사업가에서 몸에 붙는 티셔츠와 선글라스를 쓰는 자신감 넘치는 억만장자로 변신했다. 그의 모습은 환경, 취약계층,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모든 규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의 경제 성장을 저해했다고 넌지시 암시했다.

비열함이 유행이다. 잔인함은 일종의 미학적 장식이 되었다. 너무나 많은 문화적 기준들이 엄격한 젠더 도상학을 건드린다. 여성은 길게 흘러내리는 머리, 밝은 색상의 몸에 꼭 맞는 드레스, 하이힐, 주얼리, 모피를 떠올리게 하고, 남성은 파워 수트, 포마드 헤어, 단단한 팔뚝, 그리고 붉은 넥타이 군단들(트럼프를 묘사한 표현으로 해석된다)이다. 하지만 패션은 우리가 스스로를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자신을 표현하고 영감을 줄 때 진정성을 갖는다. 염세주의에 반발할 때, 낙관주의를 좇을 때, 특권층이 아닌 아웃사이더(괴짜라고 불리는)로부터 영감을 얻을 때 패션은 가장 빛난다.

최근의 컬렉션들을 돌이켜보면, 기벽과 젊은 에너지로 관중을 즐겁게 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대상을 진지하게 녹여내면서도, 우리는 투지와 친절함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확고하게 표현한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조너선 앤더슨은 디올에서의 데뷔 컬렉션인 2026년 봄 남성복 컬렉션에서 브랜드의 역사에 존경을 표하면서도 유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부활절 달걀에 칠하는 밝은 컬러를 디올 그레이에 섞어 넣었고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장식적인 디테일을 적절하게 녹여냈다. 조너선의 데뷔 쇼는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몸을 기울이게 만드는 컬렉션이었다. 마찬가지로 지난 6월 파리에서 선보인 윌리 차바리아의 2026년 봄 컬렉션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공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흰색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은 흑인과 유색인종 모델들이 영어와 스페인어로 부른 ‘California Dreamin’의 선율에 맞춰 런웨이를 걸었다. 그리고 많은 추방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감옥으로 보내진 후 강제로 그래야 했던 것처럼 대형을 이뤄 무릎을 꿇었다. 이 컬렉션의 타이틀은 캘리포니아 산호와킨 계곡에 있는 멕시코계 미국인인 디자이너의 고향 이름을 딴 ‘휴런(Huron)’이었다. 햇살 같은 노란색, 홍시색, 청록색 톤의 옷을 입은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남녀 모델들이 런웨이에 등장해 지금의 이민자들이 내면에 갖고 있는 멋, 활력 그리고 낙관주의를 담아내며 찬양했다. 패션은 어쩌면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속 깊은 곳의 작은 목소리를 증폭하는 역할을 할 때 가장 놀랍다.

아블로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화려하고 멋지고 세련된 세상을 들여다본 아웃사이더였다. 그가 패션을 사랑한 건 패션이 남들보다 더 권력을 가졌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거나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패션을 사랑한 이유는 패션이 그에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낙관주의 위에 세워진 공동체. 패션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좋은 공동체 말이다.

Credit

  • 글/ Robin Givhan
  • 번역/ 박수진
  • 사진/ Getty Images(인물), Launchmetrics(런웨이)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