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THE WONDERFUL WIZARD OF SHOPS

요즘 같은 리테일 환경에서 돋보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은 패션의 ‘발견’이라는 관점과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 시장을 빛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성공의 중심에는 애드리언 조프(Adrian Joffe)가 있었다.

프로필 by 이진선 2025.10.12

THE WONDERFUL WIZARD OF SHOPS


요즘 같은 리테일 환경에서 돋보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은 패션의 ‘발견’이라는 관점과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 시장을 빛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성공의 중심에는 애드리언 조프(Adrian Joffe)가 있었다.


런던의 초창기 도버 스트리트 마켓.

런던의 초창기 도버 스트리트 마켓.

꼼데가르송의 런던 인스톨레이션 2025 신디 셔먼의 작품이 걸린 런던 인스톨레이션. 도버 스트리트 마켓 뉴욕. 2021 시몬 로샤의 10주년 기념 컬렉션. 2025 F/W Simone Rocha

트렌디한 파리 마레 지구, 복원된 한 저택의 우아한 계단 아래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 자신의 영웅이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흰색 살로몬 운동화와 오버사이즈 후디를 입은 그는 직접 디자인한 명함을 들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이는 핫한 래퍼나 유행을 좇는 이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바로 예술성과 상업성을 융합하는 데 성공한 편집숍,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CEO이자 공동 대표인 애드리언 조프. 남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프에게 다가가 자신의 티셔츠와 후드 티 라인을 소개했다. “그의 작업물과 그의 숍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그 열렬한 팬이 내게 말했다. 평소처럼 검은색 셔츠와 바지를 입은 조프는 온화하게 대화를 하다 자리를 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나는 마치 타블로이드 유명인에게나 쏠아질 법한 에너지가 조프에게 향하는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네, 사실 좀 이상하죠.” 그가 답했다.

이상하긴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들의 융합체니까. 지난 20년 동안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매 공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이 취급하는 여러 브랜드만큼이나 잘 알려진, 어쩌면 유일한 소매 업체일 것이다. 이곳의 로고, 그러니까 삼각형 지붕이 있는 검은색 집 안에 화이트 헬베티카 서체의 로고는 패션계의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상징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성공은 패션 리테일 업계의 현황을 고려하면 더욱 놀랄 만한 업적이다. 수십 년 동안 소비자 행동 패턴의 변화와 더불어 수많은 디지털 혁신으로 인해 많은 도전을 받아온 만큼, 전통적인 멀티 브랜드 소매업은 이제 간신히 유지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소매업을 성공시키려면 반드시 변화를 거듭해야 하며,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현재 그 선두에 자리하고 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 지점은 17세기 귀족이자 재치 있는 논평으로 유명했던 마리 드 라뷔탱 샹탈(Marie de Rabutin-Chantal, 세비녜 부인)의 옛 저택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크 건물의 오리지널 디테일이 여전히 천장과 난간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매장 공간은 흰색으로 칠해진 곡선형 벽으로 세심하게 분할되어 있고 여기에 크롬 소재 행어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는 프라다와 릭 오웬스부터 덴마크의 니클라스 스코브가드, 뉴욕에서 파리로 옮겨온 바퀘라와 같은 화려한 신생 브랜드까지 130여 개 이상의 브랜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레이 가와쿠보가 디자인한 꼼데가르송의 아이코닉한 디자인도 있는데, 그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또 다른 공동 창립자이자 조프의 인생 파트너이기도 하다. 조프와 가와쿠보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종종 ‘아름다운 혼돈’의 대격변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만약 꼼데가르송이 패션의 가장 헌신적인 추종자를 위한 영적인 유니폼이라면,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그들의 예배를 위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가와쿠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언론을 꺼려하고, 그녀의 60년 경력 동안 아주 소수의 인터뷰에만 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2세의 조프는 회사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또한 수줍은 태도를 견지한다. 그는 분명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말하고, 각 문장과 의미를 고려해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것은 아마 수년간의 선불교 수행을 통해 얻어진 태도이리라. 조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라며 대학 시절 일본어와 선불교를 공부했다. 20대에는 일본에서 살았지만 가와쿠보를 만난 것은 1987년 런던에서 누나 로즈의 니트웨어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그는 가와쿠보가 유럽에서 꼼데가르송 확장을 계획할 때 통역사로 활동했다. 조프는 당시의 경험을 면접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1987년 파리에서 먼저 커머셜 이사로 회사에 합류했고, 클럽 메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잠시 일한 후 1993년 꼼데가르송의 사장으로 복귀한다. “돌아오라고 부른 게 아니라 지시를 받았죠.” 그가 말한다. 1992년 조프와 가와쿠보는 파리시청, 오텔 드 빌(Hotel de ville de Paris)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어느 분주한 봄날, 프랑스 매장의 중정에서 조프를 만났다. 웃고 있는 경비원들이 구식 숫자 클리커로 사람들의 출입을 세고 있었다. 우리가 그의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친구들과 지인들이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사무실은 흰색과 강철로 된 넓은 방으로 매장 공간을 닮아 있었다. 뒷벽 중앙에 큰 창문이 있고, 전형적인 CEO 스타일의 회의 테이블 대신 공용 작업대와 사이드 벤치가 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모순의 집합체이다. 규칙은 깨트리기 위해 존재하고, 전통적인 소매업의 관행은 무시된다. 매장은 평등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카테고리나 가격별로 컬렉션을 분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더 로우는 초포바 로위나와 섞여 있고, 구찌는 슈프림 옆에 놓여 있는 식. 레이아웃은 고객들의 변동하는 욕망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고급 의류와 캐주얼 웨어, 혹은 그것에 대한 열망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가와쿠보는 윈도 디스플레이를 싫어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대신에 과감히 여백을 선택하고, 파리 매장의 경우엔 잠재 고객이 내부 상품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리는 벽을 설치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는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신성시되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장려되고, 또 놀랍게도 그것들은 실제로 판매된다.(나는 조프에게 스웨덴 디자이너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의 숟가락으로 만든 수만 달러짜리 드레스가 파리 매장에서 판매되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고, 그는 간단히 “네”라고 대답했다.)


로스앤젤레스 스토어. 2025 F/W Vaquera 2025 F/W Louther 2025 F/W Matières Fécales 2025 S/S Torishéju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의 공간.

오늘날 알고리즘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고, 틱토커들은 그것을 얻는 방법을 지배한다. 키보드 비평가들은 전체 컬렉션의 성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무시무시한 관세와 생활비 상승은 분명 우리가 쇼핑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패션 업계의 폭풍 속에서 하나의 항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물론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도 갖고 있지만 지역 오프라인 매장에 더욱 집중한다. 업계의 차세대를 정의할 이들에게는 큰 베팅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의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어필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타협하지 않는 브랜드를 선보이며 패션에 가장 헌신적인 팔로어들을 전략적으로 타깃하는 식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지지는 업계에서 일종의 성공의 상징이며, 때로 이들은 위험을 감수할 만큼 용감하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버 스트리트 마켓이란 단순한 리테일 공간이라기보다는 갤러리를 방문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직원들조차 패션 감각을 기준으로 특별히 선발된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나는 그들만의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조프에게 물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그답게 만드는 DNA는 무엇인가에 대해.

“그런데 그 DNA라는 것이 규칙과 같은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프가 대답한다. “좋아요. 그럼 규칙이라 하죠.” 내가 명확히 했다. “저는 어떤 것들이 정확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길 바라요.” 그가 말했다. “물론 여기엔 논쟁이 있을 수 있겠죠.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는 불문율이 있어요. 규칙이 필요하죠. 막무가내일 순 없으니까요. 아니면 길을 잃어버릴 테니까요. 혼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거든요. 룰은 때로는 좋죠. 하지만 동시에 규칙은 깨지기 위해 존재해요. 애초에 규칙이 없으면 깰 수도 없으니까요. 저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이 우리가 원하는 DNA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공유하고, 시너지를 믿고,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발생하는 우연과 1+1=3 같은 걸 믿는 것요. 저는 우리의 DNA가 커뮤니티, 우리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매우 중요해요. 또한 운도 좋았죠. 왜 이렇게 운이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조프와 가와쿠보의 비정통적인 접근 방식은 2004년 9월 첫 번째 도버 스트리트 마켓이 런던의 도버 스트리트에 문을 열면서 형태를 갖추었다. 조지아 양식 건물로 유명한 메이페어의 한적한 구역이었다. 기성 아트 갤러리와 상류층 회원제 클럽이 있었지만,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등장과 그 이후의 성공으로 인해 이 거리에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쿨함이 그들에게 투여되기를 바라는 다른 브랜드들이 점차 모여들면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상업 지구로 변모했다.

사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베를린의 미테 지구에서 열린 꼼데가르송의 게릴라 스토어에서 시작됐다. 이 스토어는 단돈 2천500달러로 만들어졌고, 1년 안에 사라지도록 디자인됐다. 이 아이디어는 돈은 많지만 아이디어는 적은, 화려한 패션 부티크 경쟁자들에게 일종의 해독제를 제공했다. 2004년, 캐시 호린이 이 콘셉트 매장에 관해 쓴 <뉴욕 타임스> 기사의 헤드라인은 ‘쇼핑은 매장이 없어질 때까지(You Shop Until It’s Dropped)’였다. “뉴욕에서 캐시 호린이 여기까지 온 것을 기억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저는 이걸 1면에 실을 거예요’라고. 그래서 잘 알려졌고, 성공적이었어요. 10년 동안 47개를 운영했으니까요.” 당시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이 경력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 혁신적인 숍 브라운즈는 런던에서 운영하던 꼼데가르송 프랜차이즈 매장을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대 계약이 만료된 거였어요. 저는 레이에게 말했어요. 브라운즈에서 독립해서 직영 매장을 열 때인 것 같다고요.”

부부는 작은 매장을 찾아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기를 원했다. “중개인이 우리에게 1층과 지하층을 쓸 수 있는 건물을 제안했는데, 임대인이 상층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임대할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말했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매장을 통과하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레이와 저는 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리가 전체 건물을 쓰고 임대를 관리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건, ‘차라리 여기서 매장을 운영하고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면 어떨까?’였죠.” 가와쿠보와 조프는 런던의 전설적인(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켄싱턴 마켓에서 영감을 받았다. 펑크, 파티 피플, 고스들이 사랑하던 3층짜리 실내 공간으로, 도시의 새로운 하위문화 본거지로 명성을 떨친 곳이다. “레이는 켄싱턴 마켓을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방식을 좋아했죠. 그것은 게릴라 스토어의 진화였어요. 사람들에게 정말 값싼 공간을 내줄 수 있었거든요.” 이 매장은 랑방의 알베르 엘바즈, 라프 시몬스, 아자딘 알라이아의 컬렉션으로 문을 열었다. 조프는 이 새로운 매장이 게릴라처럼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게릴라 스토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니에요. 비용을 보세요. 2천 달러 이상이잖아요!’라고 말했죠.” 실제로 들어간 비용은 몇 백만 파운드였고, 초기 팝업에 비해서 엄청난 도약이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싱가포르. 2025년 도버 스트리트 마켓 긴자의 꼼데가르송 인스톨레이션.

매장은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현재 매장은 런던 매장을 포함한 7개 지점(도버 스트리트에서 2016년 헤이마켓의 옛 버버리 사옥으로 이전), 뉴욕, 로스앤젤레스, 긴자, 베이징, 싱가포르, 파리에 있다. 각 매장의 느낌은 비슷하지만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은 카페(조프의 누나 로즈 카라리니가 운영하는 로즈 베이커리)가 있고, 희귀 서적 판매점인 아이디어(Idea)가 큐레이션한 서점이 있다.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와 섹스 피스톨스의 아트 디렉터인 제이미 리드가 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다. “창작은 계획할 수 없어요. 열려 있어야 하죠. 하나하나를 보세요.” 그들의 연금술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연간 매출은 1억 6천만 달러를 초과한다.

조프는 ‘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우리’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유산이 그가 육성한 재능만큼이나 귀중한 것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지원이 이타주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프는 ‘양방향’이라고 말한다. “교류죠. 그것이 도버 스트리트 마켓이 먹고사는 것, 영양분을 얻는 것이죠.” 이를 위해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브랜드 개발, 생산, 디자인, 제조를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에 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젊은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데 자신들의 리소스를 제공해왔다. 토리세주, ERL, 로이신 피어스, 바퀘라는 현재 이들과 함께하는 브랜드이며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와 비영리 단체인 스카이 하이 팜 워크웨어는 일종의 졸업생이라고 할 수 있다. “도버 스트리트는 조프와 그의 감정에서 나와요.” 재활용 의류로 해체적 디자인을 선보이는, 파리지앵 브랜드 올인의 벤자민 배런이 말한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올인의 초기 지지자였다. “그들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모든 규칙에 반대하죠.” 공동 디자이너 브로르 아우구스트 베스트보가 덧붙인다. 내가 대화한 디자이너는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디자이너에 대한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배려는 놀랍다는 것. “그들은 당신이 자신의 목소리와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존중해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잘 없죠.” 10년 넘게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판매해온 시몬 로샤가 말한다.(조프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갓 졸업한 그녀의 컬렉션을 구매하기도.) “이제 많은 디자이너들이 저보다 더 신진이죠. 하지만 저는 그의 헌신과 충성심, 그리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열려 있되 그들을 계속 지지하는 증거로서 이곳에 함께 있는 게 정말 행복해요.”

로샤가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인정받고 패션의 주역으로서 자신의 길을 가는 디자이너를 대표한다면, 마티에르 페칼은 그다음 세대를 예고하고 있다. 디자이너로 변모한 이 DJ 듀오는 포스트 종말론에서 영감받은 모습(대머리와 파격적인 블랙 메이크업)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팔로어를 모은 바 있다. 그들은 마돈나 콘서트의 백스테이지에서 조프를 처음 만났다.(두 사람은 그녀의 공연을 오프닝하고, 투어용 의상을 제작한 바 있다.) 조프는 그들의 디자인을 궁금해했고, 뒤이어 2025년 3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데뷔 무대를 치르게 된다. “보여지는 물리적 증거 없이 무언가를 예견할 수 있다는 건 그의 엄청난 능력이에요.” 마티에르 페칼의 공동 디렉터 스티븐 라즈가 말한다. “한나(로즈)와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우리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도 아니고 그런 비슷한 경험도 없죠. 어떤 큰 브랜드에서 일한 적도 없고 이력서조차 없는 거예요. 우리가 필요했던 건 애드리언 같은 사람이죠. 업계에서 리더이고, 힘을 갖고 있고, 믿을 수 있으면서 우리를 다음 단계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요. 그는 정말 그런 사람이에요.”

조프는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또 새로운 것과 다음을 발견할 방법을 찾고 있다. 그는 언제나 멋진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패션계의 깊숙한 곳에 있는 디자이너의 스튜디오를 주시하고 있으며,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이상이 전형적인 경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지만, 창의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 대화할 때 보면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매우 참신해요.” 런던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취급하는 라우더의 디자이너 올림피아 실레가 말한다. 그녀는 패션으로 전환하기 전 사진과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다룬다는 건 모든 사람들의 꿈이죠. 저는 제가 그곳에 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해요. 그리고 그들을 믿죠.” 내가 어떤 브랜드를 들이는지, 그의 결정에 대한 질문을 하자 조프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매우 본능적이에요. 기준은 있죠. 하지만 비즈니스는 정말 어려워요. 사람들은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 같아요. 저의 주요한 기준은 그들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비전이 있어야 하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봐요.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두려움 없이 할 이야기가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리고 유머가 있어야 해요! 그건 정말 중요합니다.” 조프는 접근 방법이나 특권,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발탁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와 힘을 인정한다. 그의 관리 아래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패션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경험하는 것은 누군가의 지갑 크기가 아닌 상상력의 무게, 무엇을 입을 수 있는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매장과의 거리감과는 상관없이 누구든지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영향력을 느꼈을 것은 분명하다. 반상업주의적인 것들에서 상업적인 지점을 찾는 조프의 능력 덕분에 과거와 현재의 디자이너들은 더욱 과감한 디자인에 몰두할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다.

매장의 직관적이지 않은 구성은 가장 견고한 패션 하우스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파티부터 사진집 사인회, 시 낭독회에 이르기까지,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단지 옷을 취급하는 곳이 아니라 환상을 만들어낸다. “어려운 시대죠. 불안정하고, 힘들고요. 하지만 큰 고통에서 위대한 창조가 나오기도 합니다. 르네상스는 암흑 시대에서 나왔잖아요. 우리는 낙관적이어야 하고 서로를 계속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냥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지에 관해 최고가 되어야 하죠.”

Credit

  • 글/ Lynette Nylander
  • 번역/ 이민경
  • 사진/ ⓒ Dover Street Market, Launchmetrics(런웨이)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