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이래도 힙합이 안 멋져?

가짜를 말하는 건 자신 없다. 차라리 욕을 뱉고 말지.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이야기를 가사로 쓰는 지금의 래퍼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3.05
실패한다면 나 같은 애들이 꿈이란 걸 제대로 가질 수 있을까 과연 - 스카이민혁 ‘해방’ 中

스카이민혁

중학생 때 처음 힙합 음악을 들었다. 소위 ‘찌질이’에 가까웠던 나와 달리, 힙합은 솔직하고 쿨했다. 한 인간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음악. 랩이라면 내 결점도 멋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남들이 잠든 야심한 밤에 작업을 시작하고, 클럽 문화를 즐기며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영감을 주고받는 삶은 내가 생각하는 ‘간지’ 그 자체였다. 내 하루 일과는 해가 지고서야 시작됐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는 건 왠지 멋없어 보여 놀듯이 하려고 애썼다. 이 모두가 나에겐 안 맞는 옷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지금 난 오전에 작업이 가장 잘 되는 편이고,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 스타일이 맞지. 그가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해 봤는데 효과가 있었거든. 3시간에서 4시간. 하루 할당량을 정해두고 곡을 만든다. 결과물이 형편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속했다는 거니까. 가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 헛고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강박이 심해진다. 한 일주일 정도 아예 작업을 놔버리기도 했다. 난 곡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저 자유롭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결과물보다 내가 얼마나 이 행위를 했는지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면서 이제야 좀 나답게 사는 삶에 가까워졌다.

재킷은 Ourpas. 후디,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Ourpas. 후디,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음악을 하며 포기를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한다.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고, 해낼 때까지 나랑 계속 싸운다. 이 근성은 내 자부심이기도 하다. 노래에서 늘 노력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력이면 다 된다”는 흔한 말은 하나뿐인 내 좌우명이다. 재능이 없으니 성공할 수 없을 거란 말은 자주 들어왔고 지금도 종종 듣는 말이지만, 글쎄.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일단 재능이 아예 0인 사람은 없지 않나?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치가 있고, 노력으로 빛을 발할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거지. 이건 내 음악으로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증명해 보인 건 정규 2집 <해방>을 통해서다. 사실 이걸 만들면서 날 의심한 적도 있다. 어른들이 얘기하기를 음악은 재능이 없으면 잘 안 풀리는 직업이라는데. 난 누가 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약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더 진짜를 담으려고 했다. 그래서 <해방>에는 열등감, 자격지심 같은 날것의 감정이 팽팽하다. 이 앨범을 두고 폭력적이라고 말한대도 순순히 인정하겠다. 제목이 ‘아버지’인 곡에서도 난 열등감에 절어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솔직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그뿐이다. 누군가 내 가사를 보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난 그런 사람인 걸. 그보다 나와 내 노래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더 견디기 힘들다. 그냥 진짜가 되고, 손가락질을 달게 받을래.

그래 삶이란 것도 내 생각의 반대 상반되게 flowin’ 이제 와서 느끼지만 사실 나도 가고 싶어했을지도 college - NSW 윤 ‘무제’ 中

NSW 윤
<쇼미더머니 11>에 나갔을 때 난 열아홉이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방송에 얼굴이 나간 이후엔 더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만 파고드는 삶을 살면서 내가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내가 가진 것, 이룬 것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 모든 상황을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만 동시에 롤렉스 시계를 사고 싶어 갈등하는 마음 사이에서 저울질한다. 때로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스무 살에 대학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옷 사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CC도 해보는 삶 말이다. 물론 이 상상은 얼마 가지 않아 맥이 뚝 끊긴다. 난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택할 것이라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으니까. 랩은 순전히 내 의지로 택한, 내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6살쯤이다. 원래 난 할 말, 안 할 말을 구분 못하고 막 뱉는 사람에 가까웠지만 랩을 하면서 말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느꼈고, 이제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됐다.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랩으로 감정을 해소해서 그런가? 아, 그렇다고 해서 내 안의 부정을 표출하려는 목적으로 음악을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가사에 옮기기보다, 새로운 판으로 뒤집어보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쓰거든. 그래서 옛날에 쓴 가사를 읽어보면 이마를 탁 칠 때가 많다. 말하는 대로, 쓰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진짜다.

MA-1 재킷은 Resurrection13 by Samplas. 롱 슬리브리스, 팬츠는 Skoot.

MA-1 재킷은 Resurrection13 by Samplas. 롱 슬리브리스, 팬츠는 Skoot.

내 메모장에는 뭐가 참 많다. 순간의 감정 하나 하나가 내 가사가 되기 때문에 까먹지 않으려면 다 적어놔야 한다. 최근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 이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감정들도 다 모아놨다. 요즘은 걱정, 고민이 늘었다. 왜 안 좋은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올까? 그러다 불쑥 “이제 다시 한순간에 뒤집을 차례”라는 가사를 썼다. 적고 나니 의지가 생겼다. 오늘 이렇게 촬영한 경험도 언젠가 내 가사가 되겠지. 난 그냥 랩하는 중딩이었는데 <바자>에서 이렇게 멋진 사진도 찍는구나.
Love My Life.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문장인 동시에, 내 노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 제목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한테 딱 한 곡만 들려줄 수 있다면 무조건 이 곡을 고를 거다. 내 인생이 제일 좋다는 얘기도 맞는데, 그보다 우리 다 같이 자기 삶을 잘 살고 사랑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결국 난 ‘삶’을 말하려는 거다. 진부하지만 가장 무겁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주제. 후회되는 순간도, 까발려지면 부끄러울 일도 참 많지만 그럼에도 내 삶은 나의 자랑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 적어도 거짓이었던 적은 없어서 그렇다. 억만장자가, 송강 형님이 와서 삶을 바꾸자 한대도 난 내 삶을 택할 거야. 인간 이승윤의 삶을 가사로 제일 재밌게 쓸 수 있는, 지구에서 유일한 사람인 내가 좋으니까.

Credit

  • 사진/ 송시영
  • 헤어 & 메이크업/ 박정환
  • 스타일리스트/ 현국선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